꿈은 빚이 되어: 부모가 되니 보이는 것들

어릴적 꿈을 기억하는 당신에게 (feat.건설 엔지니어)

by Juwon

어릴적 좌절된 꿈들은 우리에게 빚처럼 쌓이고 결국에는 어떤 형태로든 돌아오게 마련이다.

우울감이든, 뒤늦은 재도전이든, 사십춘기든.


빅터(가명) 또한 부모님으로 인해 좌절된 꿈을 기억한다.

지도를 읽거나 통계자료를 외워서 그로부터 추론을 해내는 것이 빅터의 어릴적 재능이자 흥미였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수업과 아무 관련이 없는데도 백과사전 속 한 장 위 빼곡히 적힌 대한민국 지역별 인구수를 달달 외우고서는 머릿속으로 그 숫자들을 한반도 지도 위에 올려보곤 했다. 그러다보면 수업시간에 배운 각 지역의 특산물이라던지 기후 따위의 정보들이 차곡 차곡 그 지도 위에 쌓였다고 한다. 지금도 그 당시의 이야기를 하면 얼굴이 환하게 밝아질 정도로 그는 그것을 자신의 인생 첫 자아 발견의 강렬한 순간으로 기억한다. 백과사전 속 박제된 정보들만 읽고 있는 어린 소년 빅터가 고작 추론해낼 수 있는 가장 적성과 가까운 일이란 '지리학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중적으로 익숙한 한마디의 직업으로 귀결되지 않는 적성, 혹은 수익의 출처가 명확하지 않은 타이틀은 부모님에게는 그저 '뜬구름'이었다.


"절대 굶어 죽을 일이 없는 기술직을 하여라."


아버지는 아들의 부푼 마음 위에 그렇게 묵직한 충고를 내려놓으셨다. 착한 장남이었던 빅터는 자신의 첫 꿈의 풍선을 터뜨릴만큼 아버지의 말씀을 힘껏 끌어안았고 가슴 깊이 새겼다. 이과의 길을 택했고, 전기공학과를 갔고, 건설 대기업에서 전기 시스템을 설계하고 감독하는 일을 한 번도 한눈팔지 않고 해오고 있다. 감사하게도 그 선택은 정말이지 앞으로 굶어 죽을 일이 없는 일이다. 기술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그 대부분은 전기에 더 의존하게 될테니까.


하지만 일이 힘들고 좌절을 겪을 때마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 어릴적 꿈꾸듯 백과사전 속 지도 위로 귀향하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그 적성이 지금이라면 지리학자뿐 아니라 요즘 소위 각광받는 빅데이터나 메타지식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할 인재로 해석되고 인정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상상해보기도 하면서. 풍선처럼 터뜨려 사라지게 한 줄 알았던 그 어릴적 꿈은 오히려 그의 마음의 방 안을 공기처럼 가득 메우고 있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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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내기 아빠가 된 지금, 빅터는 이제 부모님의 당시 심정을 헤아릴 수 있을 거 같다 고백한다. 그들의 젊은 시절 하루가 다르게 솟아났던 굵직한 다리나 쭉뻗은 건물들은 그 목격자들에게 육체적 노동과 가시적 성과에 대한 단단한 믿음을 부여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실로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근면성실함을 유산처럼 받들고 자신의 직업관에 깊이 새겼다.


곤히 잠자고 있는 아가를 내려다보며 그가 나직히 말했다.

"어떤 모습의 아빠가 되겠다고 지금 당장 규정짓지 않으려고. 내 아들이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찾고 또한 그것이 자신에게 갖는 의미를 스스로 해석할 수 있도록, 옆에 서서 지켜보고 그 상황에 가장 필요한 것을 해줄 수 있는 아빠가 되겠다는 게, 유일한 다짐일 뿐이야."


어릴적 좌절된 꿈들은 우리에게 빚처럼 쌓이고 결국에는 어떤 형태로든 돌아오게 마련이다.

아버지가 되었다는 감격의 풍선을 마음의 방 안에 새로이 들인 그는 이제 그 꿈의 기억이 새로운 의미로 자신에게 돌아왔음을 이해하고 있었다.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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