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 <2> 나를 닮은 너를 찾는 여정
샌프란시스코에서 친구를 사귀는 일이 어렵게 느껴진 건 대화를 이어갈 만한 공감대를 찾기가 힘들어서였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친구가 되고싶어 다가갔던 사람들보다 한국에서 길 위에서 나를 스쳐갔을 낯선 사람들에게서 나와의 공통점을 찾는게 더 빠르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어 저도 서초 메가스터디 다녔어요!" 같은 세속적인 친근함의 구실을 찾기가 어려우니 폴란드에서 온 파란눈의 여자와 공통점을 찾을 때까지 끈질긴 신상조사를 벌이거나 바에서 만난 친절한 흑인 아저씨에게 "다음주 제 파티에 놀러와 주세요!" 하고 대뜸 애프터신청을 했다. 그러면서 정작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질문을 해주는 사람 앞에서는 홍당무가 되었다. 새로운 관계 앞에서 나는 지나치게 수줍거나 극단적으로 저돌적이었다. 어느 쪽이었든 자기 전 이불킥을 차는 건 매한가지였다. 한국에서 계속 지냈더라도 성인이 되어 만드는 우정이 마냥 순탄하지만은 않았을 수 있겠으나, 어려움을 허심탄회하게 토로할 죽마고우조차 곁에 없다는 것이 마음을 몇배로 쓰라리게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모두 귀하고 빼놓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이불킥의 순간들이 쓰렸을 망정, 홍당무가 되었을 망정, 혼을 놓을 만큼 민망했을 망정,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을 만큼 외로웠을 망정. 병적으로 수줍어 하거나 무례할만큼 적극적으로 구는 극단의 행위들도 당연한 증상이었다.
그때의 나는 이제 막 사회에 진출한 어른으로서, 샌프란시스코의 낯선 문화와 인간관계코드에 던져진 이민자로서 세상과 싱크를 맞춰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우정을 찾는 여정은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자, 우리가 놓인 세상을 알아가는 방식이었다.
해피 아워(Happy Hour, 이른 퇴근시간 후 직장인들이 가볍게 한잔 하거나 배를 채우는 시간- 음식점들은 호객을 위해 할인행사를 한다)가 주로 열리는 목요일 저녁, 술집과 나이트클럽이 많은 동네 노스비치(North Beach)의 시가 바(The Cigar Bar) 앞에 줄이 늘어서 있다. 내 앞에는 금발 머리 여자들이 이제 막 만난 티를 풀풀 풍기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내 뒤에 어느덧 길게 늘어선 여자들은 어정쩡하게 서서 어색함을 폰 서핑으로 감추고 있었다. 나는 이들에게서 동지애를 느끼며 안도하고 있었다.
“여기서 무슨 일이 있길래 젊은 처자들이 줄을 서있는거요?” 길을 걸어가던 중년 신사가 줄을 향해 물었다.
“여자들끼리 모이는 자리가 있어요. 같이 봉사활동도 하고, 오늘처럼 해피아워도 즐기고 그런 모임이에요. 아저씨는 못들어가요! 호호호” 앞쪽 여자애들이 너스레를 떨며 대답했다.
마침내 입장한 시가 바는 열기와 흥분으로 가득했다. 붉은 벽돌로 둘러 쌓인 파티오(Patio, 건물 내부에 천장이 뚤려있거나 유리 천장으로 되어있는 반야외 공간)에는 유리 천장 사이를 오고가는 줄조명의 반짝임을 가득 채운 날씬한 샴페인잔들이 그 샴페인잔 만큼이나 날씬하고 뽀얀 오늘의 참석자들을 반기고 있었다.
내가 이 여성들의 모임을 찾은 이유는 어떤 깨달음 때문이었다. 이제 나에게는 남자인 친구를 만드는 일이 훨씬 피곤하고 어렵다는 사실이었다. 친목을 주목적으로 하는 모임에서 발생하는 두 이성 간의 대화에는 필연적으로 플러팅 기술이 사용된다. 서로에게 이성적인 매력을 전혀 느끼지 않더라도, 철저하게 예의를 지킨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친목형 모임을 오랫동안 관찰하고 또 참여하며 내린 결론이었다. 약혼을 한 상태인만큼 새로운 대화기술을 써야할 때라고 한다고 생각했다. 그 기술이 뭔지 알기 전까진 여자 친구들을 사귀는게 훨씬 안전해보였다. 파트너가 질투를 느낄까봐 걱정이 되어서도, 남녀관계에 친구는 없다는 철학을 갖고 있어서도 아니었다. 다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밀한 친구를 사귀고 싶었고, 친밀함이 으레 요구하는 잦은 대화나 만남, 혹은 비밀에 가까운 깊은 마음의 공유를 플러팅의 심화과정이나 아니면 '확실하게 해두는데 넌 나에게 이성으로 느껴지지 않아'를 암시하는 짖궂은 농담 같은 것을 생략하고서도 진전시켜나갈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런 롤모델이 주변에 없었다.
결혼식 피로연에서 신부 친구가 축사를 시작하기 전 참석자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그러하듯, 한 여자가 마이크 앞에서 샴페인잔을 포크로 두드려 소리를 냈다. "스핀스터스 클럽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환호를 받은 여자는 열정에 차오른 목소리로 클럽의 역사와, 연대, 우정, 사회 활동과 그를 채우는 아름다운 얼굴들을 열거했다. "스핀스터스는 즐거운 시간과 의미있는 활동을 찾는 싱글 여성들을 위한 특별하고 안전한 공간입니다."
여자의 독백은 끝이 날줄 몰랐고 지루함 속에 의식마저 혼미해갈 무렵, 유난히 '싱글'이라는 단어가 자주 들려오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가만보자... 싱글의 기준이 뭐지? 결혼을 안한 사람? 그럼 나처럼 약혼한 사람은 싱글로 쳐주는건가...? 아니면 애초에 남자친구도 없는 사람?? 결혼을 아예 할 계획이 없는 사람???' 자리를 잘못 찾은 불청객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지만, 설마 여자들 우정 사이에 싱글이고 아닌게 뭔 큰 의미가 있겠나 싶어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각본으로 짜여진 대화였는지 아니면 즉석 Q&A의 시간이었는지 모를 어떤 문답이 진행되던 중 여자가 과장된 웃음을 잃지 않은채 대답했다. "네, 맞습니다. 결혼을 하시는 순간 스핀스터를 떠나게 됩니다."
그 말과 함께, 나도 시가 바를 떠났다.
남녀 사이의 끈적임이 결여된 채 여자들의 웃음과 반짝이는 드레스들로 채워진 파티는 헐리우드 영화에서만 보던 미국 대학교 여학생 클럽(Sorority)를 떠올리게 했다. 어쩌면 이 단체는 대학시절 여학생 클럽을 추억하고 그리워하는 여성들을 위해 존재하는지도. '결혼'이라는 새로운 이름의 졸업의식을 만들어놓은 채 말이다. 아니, 졸업이 아니라 추방인가?
아마 이 날 밤 나의 가장 큰 과오는 단체의 이름인 The Spinsters가 무슨 뜻인지 몰랐다는 것일 거다. 택시를 타고 약혼자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야 사전앱을 꺼내 spinster를 검색했다.
spin·ster /ˈspinstər/
Noun 구식 (흔히 못마땅함) 노처녀, 독신녀(특히 나이가 많고 결혼할 가능성이 적어 보이는 사람) (→bachelor)
또 하나의 과오는 '여성'이라는 공통점 만으로 쉽게 우정으로 이어질만한 다른 공통점들도 찾을 수 있을거라고 믿었던 안일함이었다.
디비자대로(Divisadero) 거리도 노스비치처럼 바와 레스토랑이 많아 젊은이들이 퇴근 후 즐겨 찾는 곳이다. 다만 노스비치가 대형 나이트 클럽과 칵테일 드레스의 향연이라면 디비자대로는 인디밴드의 소규모 공연과 아케이드 바, 그리고 바람막이 자켓이 거리를 채운다.
또 다시 어느 목요일 저녘, 해피아워에 생굴을 1달러씩 팔고있는 디비자대로 거리의 작은 시푸드 레스토랑 겸 바 '바 크루도(Bar Crudo)'에 도착했다. 스핀스터스의 파티가 노스비치의 화려함을 닮았던 것처럼, 이 레스토랑도, 내가 이날 도전하는 여성들의 모임도 디비자대로 거리를 닮아있었다. 아담하고, 수더분하고, 자연스럽게.
아일랜드 출신 여성 이민자와 핀란드 출신 여성 이민자가 공동 설립한 모임 '인터네셔널 우먼스 밋업(The International Women Meetup, 2024년 지금은 없어졌다)'은 번듯한 웹사이트도, 가입신청서도 하나 없이 격주마다 6명 내지 10명 사이의 인원을 정해놓고 레스토랑이나 바에서 모임을 가지고 있었다. 한정된 규모 때문에 RSVP(참석확인)는 빠르게 마감되곤 했고, 그래서 몇주를 실패한 끝에 비로소 참석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 모임이 특별하게 느껴졌던 건 장소의 셋업 때문이었다. 낯선 사람들이 모이는 네트워킹 모임 치고 다같이 작은 테이블에 둘러 앉아 나란히 제대로 된 음식을 먹는 건 그 때가 거의 처음이었다. 한마디로 술모임이 아니라 저녘모임이었다. 소개팅의 자리가 그러하듯 저녘을 위한 만남은 리스크가 크다. 술한잔, 커피한잔 하는 자리는 만족스럽지 않으면 금방 떠날 수 있지만 저녘은 애피타이저, 앙트레, 그리고 디저트까지 기다리고 있으니. 어쩌면 우정이라는 것은, 더 나아가 인연이라는 것은 그렇게 약간의 인내심과 불편함을 필요로하는 건지 모른다. 첫 30분이 마음에 들지 않았더라도 다음 30분은 오해를 풀어가고, 그 다음 30분은 케미스트리를 느낄 수도 있는 법이다.
내 옆에 앉은 다이앤(가명)은 첫눈에도 고상함과 친절함이 느껴지는 독일 출신의 여자였다. 자리가 좁음을 답답해 하지 않아도, 저녘이 2시간에서 3시간으로 길어지고 있음을 불편해하지 않아도 될 만큼 대화가 잘 통했다. 다이앤을 비롯해 오늘 자리를 함께한 여덟 명의 "인터네셔널 우먼" 들은 출신 국가도 직업도 달랐지만 두가지 중요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인터네셔널 우먼"이라는 그룹 이름이 "샌프란시스코 어반 하이킹"(전편 참조) 만큼이나 모호하고 광범위한 하게 들릴지 모를 일이지만 이 두 가지 공통점은 우리를 특별하게 묶어주고 있었다. 하나는 우리가 사랑을 지키기 위해 해외이주라는 모험을 택했다는 것. 또 하나는 그 선택 때문에 현재 커리어에 파괴적인 충격을 감당하고 있다는 것.
스코틀랜드에서 오랫동안 의사로 경력을 쌓아왔던 이는 남편이 미국에서 스타트업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함께 이주를 택하면서 이곳에서 라이센스를 따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고, 마케팅이라는 자신의 일을 사랑하던 이는 남자친구가 실리콘밸리로 발령이 나면서 그와 함께 하기 위해 결혼을 택했지만 이민법상 아직 미국에서 일을 할 수 있는 허가증을 받지 못해 무직의 상태였다. '기회의 땅' 미국, 그것도 꿈의 무대라고 불리우는 실리콘밸리에 닻을 내렸지만 그 때문에 아이러니하게 기회를 놓치거나 더 좁아진 기회의 문을 마주하고 있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의 기회를 지켜주기 위해서 말이다.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설레는 동시에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편했다. 나는 곧바로 그들의 좌절에 공감했고, 위로에 눈물이 핑 돌았고, 희망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바 크루도를 나서는 길, L이 나에게 해주었던 말이 귓가에 울렸다. "체이서(Chaser)가 되자. 원하는걸 쫓자." 나보다 먼저 장소를 떠나고 있던 다이앤을 쫓아가 어깨를 잡고 물었다. "오늘 반가웠어! 너와 나눈 대화가 정말 즐거웠어. 주말에 커피한잔 같이 할까? 원하면 파트너들도 초대해서 말이야." 다이앤의 얼굴에 미소가 퍼졌다. "너무 좋지!(I would LOVE to!)"
3년 후, 그녀는 나의 한국 결혼식에 친구대표 축사를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