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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유신 Scott Park Mar 09. 2020

밀포드 트레킹: 퀸스타운 -> 글레이드선착장(Day1)

마침내 결전의 날이다. 한편으로는 설레고 한편으로는 긴장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동트기 전부터 서둘러서,  퀸스타운에서 테아나우까지 가는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앞으로 4일 동안은 전투식량으로 버텨야 했기에, 어제 저녁때 육해공 음식과 알코올로 마련된 최후의 만찬을 즐겼다. 배가 곯을 것을 예상해서 마구 먹었더니, 아직 소화가 덜 되었는지 배가 그득하다. 


잠시 후 대형버스가 앞에 와서 멈춰 섰다. 이삼십대로 보이는 유쾌한 남자 직원이 버스에서 내렸다. 그는 승객들의 이름을 부르고 티켓을 확인하면서 유쾌하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꽤 기분 좋게 만드는 직원이네.' 그런데 승객들이 다 타고난 다음, 그가 버스에 올라오더니 운전석으로 가는 게 아닌가? 그는 버스 기사 겸 보조였던 것이다.


5분쯤 달렸을까? 다른 정류장에 멈춰 섰다. 추가로 몇 명의 승객이 차에 올랐다. 잠시 후 그 버스기사 겸 보조가 승객들을 마주 보고 안내 방송을 했다. 두 명이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에 잠시 더 기다려야 한단다. 물론 양해의 말도 덧붙였다. 그는 휴대폰을 꺼내 누구에겐가 전화를 걸었다. 눈치를 보아하니 아직 오지 않은 승객과 통화하려는 것 같았다. 좀 문제가 생겨서 그 승객들을 호텔에서 직접 픽업을 한단다. 한국 같으면 어림없었을 텐데. 그 여유가 부러웠다. 이미 차에 타고 있는 다른 승객들 어느 누구도 아무런 불평을 제기하지 않았다. 한참을 더 달리더니 문제의 그 승객 두 명을 태웠다. 그러더니 그 버스기사는 오늘 일정에 대해 브리핑을 시작했다. 이 버스는 퀸스타운에서 테아나우까지 가는 일반 버스가 아니었던 것이었다. 퀸스타운에서 테아나우를 거쳐 밀포드 사운드에 도착해서 크루즈를 하고 다시 퀸스타운으로 돌아오는 일일관광을 운영하는 여행사의 버스였던 것이다. 좌석이 여유가 있을 경우에 교통편만을 제공하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원래는 TrackNet에서 운영하는 일반 버스를 예매하려고 했으나 이미 매진되어서, 이리저리 알아보다가 InterCity에서 이 버스를 예약하게 되었는데 전화위복이었다. 그 기사는 버스를 운전하면서 도로의 양쪽에 펼쳐지는 풍경과 관광지에 대해 유창하고 유머 있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무려 거의 한 시간 동안이나 논스톱으로 말이다. 그는 버스기사, 보조 및 가이드였다. 내가 미래에 관광사를 운영한다면 무조건 그를 뽑으리라. 밀포드 트레킹의 출발이 참 좋다.  


테아나우에 도착해서 제일 처음에 한 일은 피오드랜드 국립공원 안내센터 (Fiordland National Park Visitor Centre - 영국식 영어를 쓰므로 Center가 아니라 Centre)를 찾아가서 밀포드 산장 및 교통편 종이 티켓을 받고 날씨 정보와 코스에 대한 설명을 듣는 것이었다. 또한 밀포드 트랙에 대한 브로셔도 받았다. 밀포트 개별 트레킹을 하려면 반드시 이 곳에 들러야 한다. 그다음에 할 일은? 한 가지 고민이 있었다. 8명으로 이루어진 우리 팀은 밀포드 트레킹을 끝낸 후 퀸스타운부터 크라이스트까지 이동하면서 관광을 즐길 계획이었다. 관광에 필요한 옷과 개인 물품들은 모두 여행용 트렁크에 있었다. 10 kg이 넘는 배낭을 메고 트렁크를 끌면서 트레킹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퀸스타운 숙소에 맡기려고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다행히 안내센터의 바로 길 건너 옆에 있는 Te Anau Lakeview Kiwi Holiday Park 에서 저렴한 가격에 짐을 맡길 수 있었다. 


어제 저녁 최후의 만찬에서 남은 음식으로 만든 주먹밥은 역시 맛있었다. 큰 테아나우 호수를 옆에 끼고 먹어서 더 맛있었을까? 테아나우 호수는 뉴질랜드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이다. 면적은 344 제곱 km이다. 이렇게 하면 얼마나 큰지 감이 잡히지 않을 것이다. 분당 신도시의 면적이 19.6 제곱 km이니까, 테아나우 호수 안에 분당 신도시를 17개 세우고도 조금 남는다. 호주는 가뭄으로 인해 들판이 누렇게 되고 수많은 동물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바로 옆에 있는 뉴질랜드는 이렇게 물이 많다니.  


안내센터 바로 앞에서 테아나우 다운스로 가는 미니 버스를 탔다. 이번에도 버스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그 버스기사는 이삼십 대가 아니라 머리가 희끗한 육칠십 대 할아버지였다. 승객들의 짐을 받아 차례차례 차에 싣고 운전을 하는 그 기사분의 모습을 보며, 저 나이에도 문제없이 일을 할 수 있는 뉴질랜드의 사회 구조가 부러웠다. 우리나라에서도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갈 곳이 없어 경로당에 모이는 게 아니라 당당하게 일할수 있는 자리가 많이 마련될 수 있기를...


테아나우 다운스에 내리자 바로 옆으로 선착장으로 내려가는 길이 보였다. 조그만 페리를 타고 테아나우 호수 양쪽으로 펼쳐진 절경에 감탄하며 한 시간을 가니 역시 조그마한 글레이드 선착장 (Glade Wharf)에 도착했다. 배에서 내린 우리를 제일 먼저 반긴 것은 다름 아닌 길 중간에 놓인 하얀색 소독약 플라스틱 통 두 개였다. 우리의 등산화에 묻어있을지 모르는 병균들을 박멸하면서 트레킹은 시작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g0cdxY8QUI


위의 동영상과 향후 올릴 동영상은 밀포드 트레킹을 함께 한 일행중의 한 명인 Martin Jung (별명: 봉감독)님이 촬영 및 편집을 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동영상을 허락해 주심에 감사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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