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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유신 Scott Park Mar 10. 2020

밀포드 트레킹 : 샌드플라이 댄스 (Day 1)

글레이드 선착장에서 소독약 플라스틱 통을 밟고 나자, 밀포드 트랙의 시작을 알리는 이정표가 보였다. 기념사진 한 장을 찍고 배낭을 고쳐 메고, 한발 한발 걷기 시작했다. 실 같은 것들이 양옆으로 보이는 나무들을 감싸고 있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한 장면 같다. 느낌으로 수만 년 또는 수십만 년은 되어 보인다. 이렇게 풍경이 확 달라질 수 있을까?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태고적으로 순간이동을 한 것 같다.


한참을 걷고 나자 화장실 표시가 보였다. 잠시 쉴 겸 화장실에 들르기로 했다. 배낭을 내려놓고 숨을 고르려고 했다. 맙소사. 어디 있다가 나타났는지 샌드플라이가 단체로 얼굴을 공격했다.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였다. '이게 말로만 듣던 샌드플라이구나' 얼른 얼굴 보호 망을 뒤집어쓰고 양봉업자로 변신했다. 일단 얼굴이 안전하니 훨씬 나았다. 샌드플라이 스프레이도 꺼내서 서로의 팔다리에 뿌려줬다. 샌드플라이와의 첫 만남은 징~했다.


길을 따라 있는 클린턴 강(Clinton River)의 물이 참 깨끗하다. 호주 시드니에서 검은 갈색의 강물만 보다가 한국의 계곡과 같은 깨끗한 물을 보니 내 마음도 깨끗해지는 것 같았다. 오늘 걷는 거리는 5 km밖에 되지 않는다. 안내 책자에는 1시간에서 1시간 반 걸린다고 되어있었다. 한참을 걸었는데도 산장이 눈에 띄지 않았다.  1시간은 족히 걸은 것 같은데 말이다. 한발 한발 걷다 보니 오늘 묵을 클린턴 헛 (Clinton Hut)의 이정표가 보였다. 


산장에 도착하자 우리를 제일 처음 반갑게 맞이한 것은 산장 관리인도 아니었고, 다른 등산객도 아니었다. 이름 모를 새가 울음으로 반갑게 맞이한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샌드플라이였다. 아까 화장실에서 보다 훨씬 많았다. 가만히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쉴 새 없이 얼굴 주위로 양 손을 휘저어야 했다. 잽싸게 등산화를 벗고 산장 안으로 들어갔다. 산장 안으로 들어가니 살 것 같았다. 맘에 드는 벙커침대를 고르고, 세워져 있던 매트리스를 제대로 눕히고, 내 물건을 하나 놓아두고, 침대 번호를 확인했다. 그 후 식당 겸 휴게실 겸 부엌으로 사용되는 공간 앞에 붙어있는 명단에 이름을 기재했다. 숙소와 휴게실은 별도 건물이기 때문에 숙소에서 나와 휴게실로 갈 때마다 샌드플라이를 위해 얼굴 주위로 양 손을 휘젓는 댄스를 선보여야만 했다. 화장실 건물도 역시 별도로 있기 때문에, 화장실 갈 때 올 때 모두 샌드플라이 댄스를 춰야 했다.   


아침 일찍 퀸스타운에서 출발하여 산 넘고 물 건넌 후, 다시 산을 걸었더니 피곤감이 몰려왔다. 서둘러 저녁식사를 해 먹고 나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샌드플라이는 극성이었지만 밀포드 트랙의 원시림은 "와우"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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