듬직한 반려견과 함께 테라스에 앉아 있던 그와 그녀를 처음 본적이 언제였을까. 적어도 오 년에서 칠 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할 듯싶다. 그 시절 나는 지금처럼 흰머리가 많지 않았던 시기였고, 바안에서 조금은 어색한 바리스타였다. 지금보다 말수가 더 없었고, 때로는 포기했던 꿈을 다시 떠올리고 했었다. 그 시절에는 테라스에 심어놓은 라벤더가 여렸다. 카페의 바닥에 깔려 있던 에폭시도 벗겨진 곳 없이 반짝거렸다.
기억에 의하면, 그는 바짝 민 머리에 두툼한 등을 가지고 있었다. 손등에 잔털도 많았다. 얼굴은 늘 햇볕에 그을린 듯 이국적인 모습이었다. 나와 비슷한 점은 수염의 형태였다. 나는 수염의 밀도가 적은 데 귀찮아서 기르는 스타일이었다면, 그는 늘 깔끔하게 면도를 하고 다녔지만, 밀도가 높기 때문에 저녁이면 푸르스름하게 자국이 돋아나는 스타일이었다.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 그의 직업이 무엇인지 알 길은 없었지만, 나는 그를 보면서 그리스인 조르바를 떠올리곤 했었다.
서빙하러 가면 요트와 어울릴 법한 시원한 향기가 났었다. 진한 커피를 좋아하고, 약간은 개구진 표정으로 아내를 바라보고, 때때로 다리를 꼬고 먼 곳을 보는 모습이 조르바를 연상시켰다. 그는 담배를 좋아했는데, 테라스 밖에서 담배를 물고 있으면 구수한 냄새가 바안에서도 느껴졌다. 그런 것들의 총합이 육지보다는 바다와 어울리는 듯했다.
그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그의 아내가 수 년 만에 처음으로 쿠폰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둘은 수년 동안 단골이었지만, 한동안 흔적도 없이 사라졌었다. 가끔 안부가 궁금하기는 했지만, 이내 잊혀졌다. 왜냐하면 그런 손님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오랜 시간 한곳에서 장사하면서 그런 경험이 많았다. 여느 인연처럼 우리는 자주 만났지만, 또 어느 순간 이유도 모른 채 끊어지기도 했었다.
그러다 최근 들어서 그의 아내가 반려견과 함께 우리 카페에 다시 오기 시작했다.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조금 살다가 왔다고 나에게 이야기를 했다. 그와 그녀가 손을 잡고 해안가를 걷는 모습이 그려졌다. 조금은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반려견의 모습도 보이는 듯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그런 삶이 부럽다고 이야기했다. 그의 안부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그녀는 예전처럼 라떼를 마셨고, 리필로 다시 진한 커피를 마셨다. 그러다 문뜩 쿠폰을 만들고 싶다고 했고 남편의 이름을 적었다. 네임펜으로 세글자를 적은 뒤에 카페 벽면에 붙였다.
나는 그의 안부를 물은 적이 없지만, 다섯 번째 쿠폰을 찍은 날 그의 안부를 듣게 되었다. 사실은 그가 일 년 전에 갑자기 저세상으로 가게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들으면서 나는 왜 먼저 묻지 않았을까, 그것이 미안해서 눈앞이 흐려졌다. 건강한 사람이 갑자기 아프게 되었고, 그렇게 갔다고 했다. 이 거리를 보면 더 힘들어서 잠시 바다를 보면서 살았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원래도 말을 잘 못 하는 사람이라서 그날도 뭐라고 말을 하지 못했다. 다만, 그의 이름이 적힌 쿠폰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해야 할 일들이 생겼고, 그녀는 어느 사이에 사라지고 없었다. 황망한 마음에 카페를 둘러보았다. 마치 그녀가 자리를 옮겨 어딘가에 앉아 있다는 듯이. 그러나, 보이는 것은 뭔가 낡아져 가는 것들밖에 없었다. 바닥은 이제 더는 매끈하지 않았고, 책장도 쿠폰이 여기저기 붙어서 뭔가 정리되지 않은 느낌이었다. 이곳저곳 상처가 많은 테라스, 화단에 심은 허브는 무성해져서 관목처럼 보였다.
안부를 듣기 전에, 그는 내 마음에 생생하게 살아 있었는데, 그의 소식을 들으니 오히려 옅어지는 듯했다. 그녀도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 아픔에 걸맞은 어떤 위로를 하지도 못했기 때문이었고, 그것은 내 능력을 넘어서는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내가 할 수 있는 애도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이 별것이 있겠는가. 옅어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 오래도록 기억하는 것, 동시에 이 자리를 지키는 것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녀가 떠난 자리, 그와 함께 앉았던 그 자리를 보면서 내가 떠올릴 수 있는 생각은 고작 그 정도가 전부였다. 그의 안부를 들은 날은 길 건너 천변에 매화가 만개했었다. 그 너머 산에는 마른 나무 사이로 점 찍은 듯 연둣빛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바람도 제법 따뜻했지만, 그 모든 것이 거짓말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