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정비하는 리셋의 시간
퇴사 3일째 아침이 밝았다. 이때부터 감정이 회오리처럼 몰려온다. 전날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문득 “내가 왜 이렇게 됐을까?”라는 생각으로 시작해 처지 비관, 자기 비하, 암울한 미래 상상까지 불안에 불안이 증폭되며 머릿속에 난리가 날 확률이 높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불안을 외면하지 않고 꺼내서 표현하고, 정리하고 직시하는 일이다.
노트를 한 권 만들자
가장 앞에 퇴사 생존 노트라고 적고 매일 5분씩 다음 3가지를 적어보자. 단어 하나 여도 괜찮고, 긴 글을 써도 괜찮다. 스스로가 원하는 방식으로 아래 내용에 대해 적어보면 된다.
1. 오늘 내 기분
2. 오늘 내가 한 일 한 가지
3. 내일 해야 할 일 한 가지
이렇게 3가지에 답만 적어도 불안이 형태를 가진 언어로 바뀐다. 형체를 알 수 없어서 더 나를 괴롭히던 불안을 눈에 보이고, 이해할 수 있고, 정리할 수 있는 형태로 바꾸는 작업인 셈이다. 언어로 바뀐 불안은 통제가 조금 더 수월해진다.
나는 다양한 시간대에 다양한 형태의 글공간을 만들었다. 오전에는 주로 다이어리를 펼쳐 오늘의 할일을 적었다. 이건 직장 생활을 할 때도 늘 했던 습관이었는데 하루의 꼭 처리해야 할 일과 시간 여유가 있으면 해야 할 일을 나누고, 오전과 오후로 구분해 적었다. 이렇게 해두면 내가 뭘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지 않아도 된다. 다이어리에 내 기분과 할 일을 적으며 오늘 하루도 잘 보내 보자고 나 자신에게 이야기 한다. 아! 이 행동이 침대 밖으로 나와 책상에 앉게 하는 신호 역할을 하기도 한다.
오후에는 브런치에 글을 썼고, 저녁에는 5년 Q&A 다이어리를 썼다. 벌써 3년차인데, 질문이 있어 좋고 작년 이 맘때 나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확인하는 재미가 있다. 나라는 사람의 비슷한 결과 시기에 따라 다른 포인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잠자기 직전인 늦은 밤에는 '진짜 일기'를 썼다. 누구도 볼 수 없는 완벽하게 차단된, 어쩌면 나 역시 다시 읽어 보지 않을 것 같은 그런 일기. 감정과 생각을 쏟아 낼 수 있을만큼 충분히 쏟아 냈다. (언젠가 모두 불태워야 하나 싶은...) 이렇게 하루에 여러번 감정과 생각을 글로 옮기면서 나의 불안한 마음도 조금씩 안정을 찾아 갔다. 쓰는 행위를 좋아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새삼 확인하는 것도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사람들과는 살짝 거리를 두자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나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 조언도 독이 될 수 있고, 오히려 마음의 불안을 키우기도 한다. “다음 계획은 뭐야? 이직 준비 하고 있어? 갈 회사는 정했어? 그냥 쉬는 거 좋지.” 등등 악의 없는 말이나 위로를 하려는 말들이 재대로 기능하지 못할 확률이 더 높다. 위로처럼 들리지 않는 말에 굳이 답변하고 괜찮은 척 하느라 에너지를 소모하기보다 잠깐 시간을 가지는 것이 좋다. 사람과의 단절이 아닌, 나를 정비하는 시간을 먼저 가진다고 생각하자. 내 마음 정리가 우선이다.
나는 불특정 다수의 일상을 경험하며 세상과 단절은 피하고, 가까운 사람과의 이야기에는 거리를 두며 마음 지키기에 집중했던 것 같다. 내 일을 타인이 대신 해결해 주지 않는다. 감정의 위로 역시 말 한마디로 해결되지 않는다. 타인의 마음을 오롯히 받기 위해서는 나에게 여유와 여지가 있어야 한다. 내 마음이 내 통제안에 있어서 멋대로 날뛰지 않아야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진다. 이때까지 나를 편하게 두는 것이 도움이 된다. 시간이 지나면 차츰 마음도 안정을 찾는다. 현실을 인지하고, 상황을 이해하고 나면 날뛰던 마음에도 짧은 고요들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이 시간을 점차 늘려나가며, 다시 세상과 소통할 준비를 하면 된다.
몸을 움직여 공간을 정리하자
물리적인 정리가 정신의 안정과 연결되기도 한다. 일단 몸을 움직이면 생각이 줄어든다. 책상 위, 컴퓨터 폴더, 책장, 옷장 한 칸 등 어떤 공간도 상관없다. 이렇게 정돈된 공간은 과거의 나를 비워내고 지금의 나를 위한 공간으로 기능이 달라진다. 나에게 필요한 공간을 만들 수도 있다.
‘버티는 시간’을 지나 나를 다시 정비하는 리셋의 시간으로 바꿔가야 한다. 행정, 생활, 감정이라는 세 요소를 정리하면서 불안도 줄이고 현실을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을 키워야 한다. 누구라도 퇴직 직후에는 혼란스럽다. 특별한 계획을 세우거나 미래를 고민하기 보다 일단 ‘내가 이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라는 감각을 찾는 시간으로 활용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이 시간 동안 자연스럽게 현실을 인정할 수 있고, 새로운 다음을 시작할 준비를 할 수 있다.
“퇴직 후의 첫 일주일, 이 시간은 어쩌면 나를 다시 세우는 첫 걸음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