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동물보다 활동하는 동물로 만드는 게 도움이 되긴 하더라!
퇴사자는 빈 시간을 견디는 법부터 배워야 하는 것 같다. 퇴사를 해서 몸이 쉬고 있음에도 마음은 회사에, 정신은 일에 묶여 있는 느낌이었다. 습관이 무섭다고 오히려 퇴사 직후 기존 패턴에 맞춰 출근 시간에 눈이 떠지고, 회의 시간이 되면 마음이 분주해졌다. 이제 나와 전혀 상관없는 루틴이 여전히 내 일상의 루틴으로 자리잡고 있는 셈이랄까. 그래서 시간의 기준을 나로 되돌리는 과정이 필요했다. 회사를 떼어내도 충분히 하루를 잘 보낼 수 있는 루틴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인 셈이다.
내 하루의 주인은 이제, 나다!
일단, 하루에 한번은 밖으로 나가자. 집에만 있으면 세상이 멈춘 것처럼 느껴진다. 단 10분이라도 동네 편의점 또는 카페까지 걸어가 “세상과 단절된 사람”이 아니라 “다시 내 속도로 세상과 연결되는 사람”임을 스스로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꼭 물건을 사지 않아도 된다. 목적지가 없는 산책도 크게 상관없다. 사람들이 움직이는 세상 속에서 함께 움직이는 시간을 만들면 된다. 나는 하필 한창 한파가 몰아치는 시기에 퇴사를 한 탓에 도저히 외부 운동이나 산책은 엄두가 나지 않아 일단 어딘가로 들어갈 곳을 찾았다. 자주 가도, 오래 있어도,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이상하지 않을 곳. 첫 아지트는 동네 스벅이었다. 책이나 작은 다이어리를 하나 챙겨가서 한두시간 정도 시간을 보냈는데, 그동안 하지 못했던 사람 구경도 하고 의미없는 낙서를 끄적이기도 했다. 4,500원으로 일할 때의 익숙한 공간과 감각을 산 느낌이랄까. 커피가 지겹거나 4,500원이 아까운 날에는 동네 대형 마트에 갔다. 와인 코너 앞에서 하나씩 와인 탐색도 하고, 마트를 한 바퀴 돌아보기만 해도 시간이 훌쩍 흐른다. 사람들 속에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인지하게 만들어서 스스로를 탓하지 않게 하는 것이 움직임의 목적이었다.
식사 루틴은 꼭 챙기자. 퇴사를 하면 식사시간이 가장 빠르게 무너진다. 밥을 먹어야 한다고 정해져 있는 시간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식사는 배를 채우는 행위를 넘어 삶의 리듬을 만드는 일이다. 따라서 하루 중 한 끼라도 제시간에 스스로 차려 먹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것만으로도 하루를 내가 주도했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더불어 나에게 잘 차려진 식사를 스스로 대접하는 것은 내가 나를 존중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나를 가장 우선에 두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의 첫 단추가 될 수 있다. 이 루틴을 만들기 위해 브런치에 식사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나 스스로에게 할일을 만들어 주고, 그 일을 잘 해내는 나를 칭찬하는 과정을 반복할 수 있다는 또 다른 긍정요인도 얻었다. 여기에 콘텐츠까지 남았으니 1석 3조!
알람도 재설정하자. 출근용 알람이 아니라 생활 리듬 알람을 만들어 보자. ‘오전 9시에 일어나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고, 오후 12시에 점심 식사를 한 후 오후 3시쯤 산책을 나간다. 오후 7시에는 운동을 한다’ 등의 큼직한 생활 알람을 설정하면 시간의 구분선이 무너지지 않을 수 있다. 작은 알람 하나가 나를 내 하루의 주인으로 만들어 준다. 너무 촉박한 일정표는 오히려 작심삼일을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어 되도록 하루를 크게 4구역으로 나누려고 했다.
하루가 단순해 졌다. 새롭게 만나는 사람도, 새로운 자극을 느낄 일도 크게 일어나지 않는다. 고요하고 정적이다. 그 고요가 나쁘지 않다. 어쩌면 혼자의 시간이 꼭 필요했던 것일 수 있다. 그럼에도 하루를 계획하고 수행하는 과정을 반복하려고 애쓴 건 머리만 비대한 인간이 되고 싶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생각이 생각을 부르고, 그 생각이 다시 생각을 만드는 생각 감옥에 갇히고 싶지 않았다. 물리적 멈춤을 주지 않으면 끝없이 넓어지고, 철문이 단단해지는 감옥임을 알기에 더더욱. 퇴사를 하면 그렇지 않아도 많았던 생각이 거의 자가복제 수준으로 늘어난다. 그들을 퇴치하는데 움직임 만한 것이 없다. 일단 몸을 움직이면 생각은 순식간에 연기처럼 사라진다.
온전히 내 것이 된 '나의 하루'를 되도록 소중하게 대해주고 싶다는 마음.
그 마음을 일상 루틴으로 표현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