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나의 행정 시스템 정비

알아서 해주던 회사가 없어졌으니, 행정과 친해져야겠지?!

by B의취향

퇴사 다음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처음 든 생각은 ‘모든 알람을 꺼야겠다’였다. 여전히 아침 7시에 요란하게 울리는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는 것부터 살짝 짜증이 올라왔다. 하루쯤은 늘어지게 늦잠을 자도 괜찮다는 자기 합리화를 하며 다시 눈을 감았지만, 어쩐지 잠은 오지 않고 머리만 복잡해졌다. 아무도 나에게 뭐라고 하지 않는, 완전히 자유롭고 평안한 상태인데 내 마음은 난리가 났다. 자유가 오히려 불안을 증폭시켰다.


퇴사 후의 시간은 자유와 불안이 동시에 찾아올 수밖에 없다. “좀 쉬는 거지”라고 말하지만, 현실은 쉼을 모르기 때문이다. ‘내 통장 잔고로 몇 달을 버틸 수 있을까?’, ‘국민건강보험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할부로 결제했던 다음 달 카드 값이 얼마지?’, ‘은행 대출 이자 나가는 날짜가 언제였더라?’ 등등 다양한 상황들이 밀물처럼 나를 덮친다. 지금까지는 굳이 생각하거나 챙기지 않아도 됐던 항목들이 갑작스럽게 존재감을 드러낸다. 숨은 빌런들의 등장이다. 심지어 한 둘이 아니기까지.


모호한 불안은 숫자로 구체화되고,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필수 요소들로 강화되는 모양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지나가 있기 쉽다. 한 것 없이 시간만 갔구나 싶은 마음이 또 다른 불안을 끌어오는 뫼비우스의 띠가 된다. 자책은 덤이다. 그래서 이런 부정의 고리를 사전 차단 하기 위해 퇴사 후 72시간 동안 최소한의 루틴을 만들었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루틴이 아니라, 생존 감각을 유지하기 위한 루틴이다. 내 몸과 머리가 ‘뭔가를 하고 있구나’라고 인지하는 것이 중요했다. 여기서부터 회사원인 내가 가졌던 질서와 다른, 나의 생존을 가능하게 해 줄 일상의 질서가 만들어질 테니 말이다.


일단, 현실 진단과 행정 시스템 정리부터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괜히 있겠는가. 적은 세상이니 이건 뒤로 좀 미루고, 일단 나부터 알아보자. 승률 50%는 챙겨야 하니 말이다. ‘내가 스스로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라는 생각을 마음에 새기고 일단 꼭 해야 하는 행정 처리부터 정리했다. 이런 일은 미룰수록 복잡해지고, 다른 문제를 만들 여지가 있으니 약간 부지런을 떨었다.


1. 퇴직금 확인

퇴직금의 입금 일정을 확인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다. 앞으로 나의 생활을 일정 기간 책임져 줄 돈이기 때문에, 퇴직금에 맞춘 생존 계획 수립이 필요하다. 회사에 따라 14일 이내, 혹은 말일 지급이 일반적이지만 종종 지연되는 경우도 있으니, 꼭 확인을 해야 한다. 근로계약서 혹은 퇴사 시 안내받은 이메일 내용을 바탕으로 퇴직 처리 일과 퇴직금 정산 내역을 기록해 두자. 내 지난 시간과 노동에 대해 정산을 완료하는 것이 완전한 마침표를 찍는 과정이기도 하다. 남은 월급, 성과급, 연차 등이 잘 반영되었는지도 체크해야 하니 퇴직 정산 명세서를 휙 던져두지 말고 꼼꼼하게 봐야 한다. 만약 회사와 나의 기준이나 계산에 차이가 있다면 바로 정정 요청을 해야 하니 절대 미루지 말자.


2. 4대 보험 처리

퇴사일을 기준으로 4대 보험 자격이 상실된다. 회사 내부 처리 일은 다를 수 있지만, 기준일은 퇴사일이라고 보면 된다. 4대 보험 중 건강보험과 국민연금의 경우 퇴직을 했어도 납입 의무가 있다. 이를 상황에 따라 조정하는 것은 개인이 해야 하는 일이다. 임의계속가입 또는 납입중단, 부양가족등록 등 개인의 상황에 따라 선택지가 각기 다르기 때문에 상황 판단에 따른 결정이 중요하다. 건강보험은 앱이나 웹에서 예상 금액을 확인할 수 있고, 국민연금은 전화 문의를 해보는 것이 확실하다. 나는 건강보험은 지역가입자로(아플 때 보험 안되면 진짜 난감에 난감임을 알기에!), 국민연금은 임의계속납입(최저 금액인 100만 원을 소득으로 해 9.5%를 납입하라고 함)을 선택했다. 지금보다 더 늙어갈 일만 남은 나에게 안전장치 하나쯤은 있어야 할 것 같으니까!


우습게도 여기까지 하고 나면 이미 하루가 지나가 있을 것이다. 국민연금공단 전화 연결까지만 일단 1시간은 걸린다고 생각하고 시작하자. 안 그러면 속 터짐 이슈로 포기하게 될 수도 있다. 분명 업무는 훨씬 줄었는데(개인 업무도 업무니까!) 시간은 가속이 붙은 느낌이 들지만, 일단 오늘의 할 일을 마쳤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침대에 누워 유튜브만 보지 않았다는 것이 약간의 뿌듯함을 주기도 한다. 급격하게 다른 하루가 아닌 비슷한 하루(직무는 아니어도 처리해야 할 일을 수행한 것이긴 하니까...!)를 보냈다는 것에서 오는 안도감을 느꼈다. 퇴직 첫날인데 위안, 뿌듯함, 안도감까지 콤보로 얻었으니 이만하면 나쁘지 않았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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