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이제 뭐 하지? 어떻게 살지?'
퇴사를 결정했다. 결정하고 나니 속전속결처럼 진행되어 매일을 매달려 있던 일에서 해방됐다. 매일 마감을 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퇴사와 동시에 일에서 해방됐다는 표현이 제법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해방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사람들이 연말의 아쉬움과 새해의 기쁨을 느낄 때 나에게 찾아온 감정은 공허와 불안이었다.
'이제, 나 뭐하지?'
이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출근 걱정 없이 맞이한 월요일이었지만 출근하던 시간에 눈이 떠졌고, 핸드폰 메시지부터 확인하던 습관도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평소라면 바쁘게 일어나 씻어야 하는데 이제 그럴 필요가 없었다. 멍하게 침대에 누워 있자니 낯선 감각이 느껴졌다. 여유롭다기 보다는 불안이라는 낯선 감각 말이다.
퇴사 전에는 그만두면 쉬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하지만 막상 퇴사를 하니 쉬는 것도 일이었다. 쉬면 안될 것 같은 생각에서 벗어나야 했고, 일하지 않아도 쓸모가 없는 건 아니라며 스스로를 다독여야 했고, 현실적인 계산을 분주하게 하는 머리를 멈추기 위해 애써야 했다. 눈 앞에 닥친 카드 납부 일을 넘기면 통장에 얼마가 남는지부터 생각하다 보니, 내가 그동안 삶을 유지하는데 오직 '일'이라는 연장만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음을 실감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주변에서 부업 할 때 해볼 걸, 주식 투자도 전문적으로 배워볼 걸' 같은 후회가 불쑥 찾아왔다. 역시 후회는 인간의 특기인지 모르겠다.
"나만 멈춘 건 아닐까?"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 여유가 없는데..."
"이 나이에 다시 무언가를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쉬지 않고 머릿속에 떠올랐고, 그때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원인 모를 죄책감이 올라왔다. 쉬고 있으면서 스스로에게 게으르다는 비난을 하며 자신을 통제하고 끊임없이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시간이 많다는 게 이렇게 괴로울 일인가. 딱히 하는 일도, 해야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없는 상태로 시간은 흘렀고, 어느 새 달력 한 장을 넘길 시기가 다가왔다. 그 사이에도 세상은 지나칠 정도로 빠르게 변화했고, 유튜브를 열면 이대로 있으면 곧 망할 사람 첫 순서는 내가 분명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Ai도, 미래 산업도 모르겠는데 '이거 모르면 망한다' 같은 제목은 끝없이 나를 따라왔다.
그렇다고 뭔가를 하지도 못했다. 마음이 피로했다. 마음이 편하지 못하니 쉬어도 피곤했다. '지금 나는 무엇을 해야 하지?'라는 생각에 쉬는 시간마저 계획을 짜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에 헛웃음도 나왔다. 생각을 덜기 위해 주제 없이 메모를 끄적이는 시간이 늘어났고, 한참을 낙서만 하다가 문장 하나를 적었다.
"내가 지금 제일 두려운 건 뭘까?"
불안은 두려움에 기인한다. 이렇게 안절부절하는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었고, 그 바탕에 깔린 생각은 내 인생을 어떻게 책임져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막막함이었다. 회사를 다닐 때는 일단 하루를 버티면 하루치의 대가를 받았기 때문에 마치 자동화 수익 창출 같이 내 인생의 기본값들은 해결되었다. 그 울타리를 벗어나자 모든 결정은 내 몫이 되었고, 자동화 시스템은 붕괴됐다. 그렇다고 금새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직 그럴 힘도, 자신도 없다. 그래서 어차피 어렵기만 한 새로운 목표, 새로운 계획 대신 현실을 버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결심을 했다.
퇴사 후 30일,
생존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퇴사는 용기 있는 선택이라기 보다 피로와 고통을 멈추고 싶다는 간절함의 결과다. 퇴사와 함께 기존의 피로와 고통에서 해방되었으나 새로운 고통이 찾아온다. 끝이라기보다 또다른 혼란의 출발선인 셈이다. 다만 아직 출발 총성이 울리기 전까지 몸풀기도 하고 물도 마실 수 있는 약간의 시간이 남았다(그래서 퇴직금이 중요한지도!). 그 시간을 어떻게 쓰는지에 따라 새로운 달리기의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주저 앉아 있기보다 나를 다시 준비시키는 과정이 필요했다.
"하루를 어떻게 버티지?"
"무엇을 먼저 정리해야 하지?"
"이 불안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지?"
이런 질문들의 답을 찾으며, 현실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도 하나씩 해결해 나갔다. 이 책은 그렇게 보낸 퇴사 후 30일의 생존기이다. "그래서 해피엔딩입니다"같은 결론은 아니다. 그저 하루를 버티며 다시 방향을 찾아가는 생존기록이다. 완벽한 계획보다 하루를 버티는 루틴을 만들고, 세상의 기준과 나의 능력 사이의 괴리를 인정하고 맞춰 나가며 삶의 리듬을 다시 설계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오늘도 여전히 내 삶은 불안하고 위태롭다. 아직도 일도, 삶의 방향도 명확하게 찾지 못했다. 다만 달라진 것은 불안에 잠식당하기보다 불안과 동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상에서 똑 떨어져 나와 당황하고 난감한 상황에서 나만의 생존법을 만든 것이 도움이 되었다. 한달씩 수명 연장을 하게 도와준달까. 퇴사 후 첫 한달의 생존 결과는 이 브런치 북 연재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