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통신부터 카페, 블로그를 지나 인스타그램까지
세상에 모바일이 등장하며 자신의 콘텐츠를 만드는 행위는 일상이 되었다. 전화선을 뽑아 모뎀에 연결하면 삐~ 삐~ 하는 소리와 함께 거센 물소리를 듣고 나면 인터넷 바다에 접속되는 PC통신 시절과 비교하면 정말 엄청난 변화라고 할 수 있겠다.
한 9살 정도 되었으려나 친척형들과 파란 화면 속 멋진 세상을 처음 보았다. 지금은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하겠지만 텍스트와 기호를 통해 만든 멋진 꽃, 토끼 등의 모습은 내 머릿속 추억으로 자리 잡았다. 아무래도 편지를 작성하던 세대이니 만큼 '정성'이란 걸 들였던 게 아닐까?
전화비 고지서가 날아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혼나는 친척형들을 보며 그들의 즐거움이 20만원치 혼나는 것보다 크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다. 아무튼 그 시절 네트워크는 비쌌고, 어려웠지만 그만큼 서로에게 순순하고 또 조금스럽게 다가가는 시절이었다.
( 조 심 조 심 . . )
영화 '접속'을 보면 전도연이 하이텔을 통해 한석규에게 거짓말을 하고 하루 종일 마음을 불편해하는 모습을 보이기에 예로 딱 적절하지 싶다. 참고로 당시 시대 상황과 정서는 이 영화에 너무나도 잘 담겨있는데 PC통신은 90년대 가장 트렌드 한 문화였고 지금보다 확장성은 떨어질지 모르나 단순히 인기로만 보자면 지금의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을 합친 정도는 될 것이라 생각이 든다. 괜히 앨범이 100 만장씩 팔리던 시대가 아니니까 말이다. 인기의 집중도만 보면 솔까 지금과는 차원이 달랐다. (물론 음반 시장의 수익모델이 변했고, 글로벌 환경이 가진 지금과 확장성은 비교가 안되지만)
암튼 IMF 이전 90년대 한국은 문화의 부흥기였다.
영상을 보면 그 시절 감성을 조금 느낄 수 있을까?
지금 보니 재미있는 순간들. . .
그렇게 친척형들 틈에서 PC통신을 하던 나는 고등학교에 들어가며 아버지가 사준 586 팬티엄 컴퓨터를 통해 드디어 혼자 네트워크에 접속하기 시작했다. 당시 음악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나는 음악을 하는 친구가 주변에 있어 각 학교 별 락밴드 공연을 자주 보고는 했는데 그때 락에 관련된 카페를 다음에서 직접 운영했다.
당시 유명했던 Skid row, L'Arc en Ciel 등의 영상을 게시판에 올리기도 하고, 밴드 공연의 소식이나 공연하는 모습들도 사진으로 올리며 약 200명 정도의 회원들과 작지만 공통된 주제를 갖고 글을 남기고, 댓글을 달며, 서로의 지식을 공유하고, 칭찬하고 그랬던 기억이 난다.
실제 인터넷이란 것을 사용하기 시작한 시기. 우리는 공기청정기 만한 본체와 전기밥솥만 한 모니터를 두고 진정 네트워크를 즐겼다. 아이폰4보다 사양이 안 좋을 수 있지만 소리바다에서 말도 안 되는 음원을 긁어모아 윈앰프로 음악을 들으며, 지금은 추억이 되어버린 다음 한메일과 카페를 이용하며 우리 세대는 넷상의 관계를 또 즐거움을 쌓아갔다.
반 친구와 스타크래프트를 하는 날이면 다음날 학교에서 얍삽이다 뭐다 난리가 났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참고로 난 레인보우식스 대회 클랜을 중학생 신분으로 가입해 전용 PC방이 있었으며, 고등학교 시절에는 워크래프트3 세계 랭킹 300위권이었다.
( 라떼는 말이야! )
자,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국내 포털사이트 춘추전국시대(야후, 라이코스, 다음, 네이버 등..)를 지나 승리자가 된 네이버는 다음(daum)을 밀어내고 지금의 유명한 카페들을 배출해 냈는데 예를 들어 중고나라나 맥쓰사가 내가 대표적으로 쓰는 것들이다.
그리고 지식인이란 서비스를 통해 온라인 상담 공간을 마련했는데, 서비스 이벤트로 리바이스 청바지에 대한 답변을 잘하면 선물을 주는 행사에 참여해 고등학교 시절 네이버로부터 타입원 진을 선물로 받은 기억이 난다. 스키니진은 당시 너무 빠른 유행이라 몇 년 뒤에나 그 바지를 입고 다닐 수 있었지만 나에겐 뜻깊은 선물이자 기억이다.
그 와중에 우리의 마음을 훔쳐간 친구가 있었으니 바로 블로그다. 웹(web)과 로그(log)의 줄임말로 일기를 쓰는 공간인데, 뭐랄까.. 점차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이웃을 맺고 우리끼리 놀다가 칼럼, 기사 제의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결국 시장이 커지자 수익으로까지 연결되는 서비스였다. 지금 보면 출판, 방송, 커뮤니티 등 다양한 서비스가 복합적으로 이루어진 미디어 채널이라 볼 수 있는데 네이버가 아직 건재하다 보니 그들의 영향력은 아직도 만만치 않다.
유튜브를 비롯 다양한 미디어 플랫폼으로 인해 예전만큼은 아닐 거라 생각 들지만 네이버에서 맛집, 물건, 콘텐츠 등을 검색한 경우는 이야기가 다르다. 플랫폼의 힘(유입)이 곧 콘텐츠와 연결되는 것 같은데 영화, 음식점, 제품 등 상세 페이지 등등 블로그 리뷰를 연결해 놓아 다양한 접근성도 지녔다.
그렇지만 어느 때 보다 복잡하고 시간이 부족한 우리는 짧은 글(twitter)에서 사진(instagram)으로 갔다가 결국 영상(youtube, tiktok)으로 오게 되었는데 아무래도 텍스트를 읽는 것이 힘들고 또 편집되지 않은 자연스러움을 하나의 멋으로 생각하는 지금의 세대들에게는 역동적인 시각성을 지닌 콘텐츠가 관심을 끌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지금 세대의 특성이 궁금하다면 아래 글을 참고하자#나름괜찮아 #두려워하지마 #그냥눌러
나는 블로그가 기존의 PC통신과 다음 카페를 잇는 낭만의 공간이라 생각한다. 나를 가볍게 말하거나 소비시키지 않는 마치 일기장을 쓰듯 나의 이야기를 쓰는 곳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가벼움이란 글의 깊이나 길이가 아니라 어떤 정서의 무게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 것 같다.
꼭 모두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나의 글.
- 이번에 구매한 카메라는 색감이 너무 좋아요
- 우리 집 고양이에게 먹이는 나만의 간식
- 오늘 아침도 커피 한 잔
그런가 하면
나의 지식을 공유하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 우리가 가죽을 대하는 자세
- 아이패드 프로 4세대 뭐가 달라졌나
- 빈 병 리폼하는 여러 가지 살림 팁
인스타그램에서 중요한 것이 멋과 자랑이라면,
블로그는 나의 소소한 기록이자 낭만이다.
지금 소셜 미디어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가 가장 중요한 시기이고 곧 그만큼 공유와 전달력이 중요하다. 이것은 곧 개인이던 사업체이건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미지로 다가가는 것이 중요한 것인데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발성'이다. 여기에서 다시 생각해보면 굳이 시간을 들여 인적이 드문 공간에 글을 남기는 사람들은 그 자발성의 시작이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쉽게 소비시키려고 쓰는 게 아니라 내가 간직하고 싶은 순간을 남기는 공간. 굳이 인스타그램을 하면서도 블로그를 같이 운영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가벼움은 우리에게 너무 필요한 요소인 게, 나 또한 나이가 서른이 넘고 연차가 쌓일수록 정신적 여유가 부족해지자 인스타그램에 편집된 사진이나 글로 핵심만을 전달하는 형태의 콘텐츠를 생산하고 다른 친구들도 그것을 보고 좋아요를 누른다.
대학교 시절 교내에서 와이파이 잡는 방법을 아무도 몰라 교직원들에게 물어물어 방법을 찾고서는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한 나는 글 소재가 생기면 자료를 우선 다 모으고 하루 3시간 이상 투자하며 애플 관련 제품의 사용기를 올리고는 했는데 당시 네이버에 최상단에 노출될 정도로 인기가 있어 이런 유입을 이용해 한국의 미술을 알리고자 내가 공부하는 미술사 글을 같이 올렸던 기억이 난다.
애플로 관심(유입)을 늘리고 한국의 문화를 알리고 싶은 나였는데 왠지 이제는 그때의 노력은 사치인 것 같은 시대와 서른 살의 내가 되어버린 것 같다. 왠지 나 자신에게 투자하는 시간이 줄어 그런 것 같기도 하지만.. 지금 이렇게 브런치는 하면서 블로그를 운영하지 않는 것은 역시 씁쓸하지만 시대 흐름상 상황적 선택이 존재하기는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몇몇 20대 친구들의 인스타그램에 블로그 주소를 적은 모습이 종종 보이는데, 이렇게 인스타그램을 하지만 블로그를 통해 소소하게 자신을 남기고 있다는 건 그들의 자발성을 깨운 무언가가 블로그 서비스에 있지 않을까? 그 시절 통신 문화를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그들은 역시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고 다양한 취향을 갖고 또 그것을 표현하는 세대이니 말이다.
INTERVIEW
20대 타투이스트 'leere(이은수)님'
인스타를 하면서 블로그를 운영하는 이유
사실 인스타는 나를 굉장히 드러내는 매체라 생각하여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남들이 쉽게 말하는 '오글거린다' 라는 말이 내게도 통할까봐 자제하는 경우도 있고, 그로 인해 속내를 털어놓는 SNS라 생각하지 못 하는 것 같다.
그에 비해 블로그는 조금 더 개방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사람들이 즐겨먹는 먹거리, 화장품 리뷰, 일상 생활 등등 몇 년 전부터 확 일상에 다가온 유튜브 마냥 친근하기 때문인 것 같다. 쉽게 말해 인스타는 근황을 밝히는 과시용 SNS라면 블로그는 일기장 같다. 나의 일상, 주절거리는 시답잖은 말들, 생각, 오늘 하루 등등 편히 접근하기 좋은 것 같다. 나는 이러한 이유들로 블로그를 이용한다.
leere(이은수)님에게 앞으로의 목표는?
타투는 현 나의 목표이자 꿈이다. 나의 생각을 담은 그림이 남의 몸에 평생 남겨지며 보는 내내 즐거움과 흥미를 느낄 수 있다는 점에 대해 굉장히 애착을 갖고 있다. 나는 잊혀지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몇 명이 나를 기억하냐 보다는 나를 스쳐간 내 소중한 인연들이 나를 기억해주었으면 한다. 타투가 이에 대해 가장 비슷하다고 느꼈고, 느끼는 중이다. 타투와 더불어 만들고자 하는 브랜드는 정말 많은데 요즘 일에 치여 이루지 못 하는 중이다. 굉장히 아쉽다. 그치만 달리기가 아닌 느긋한 걸음으로 천천히 내 목표에 다다르고자 한다.
그렇게 낭만은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