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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EOURUSGROUP Nov 01. 2020

Social Chaos

나는 소셜이 지금 시대의 질병이라 생각한다.

소셜은 우리 삶을 어디로 데려가고 있는가?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고,

운동을 하며, 명상이나 캠핑을 나선다.

우리는 지금 심플해지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가족, 친구, 직장 동료, 사회 친구

누군지도 모르는 온라인 친구까지

우리는 너무나도 많은 것들과 연결되어있다.

걸어가다 멋진 모습을 보게 되면 인스타그램 각부터 재게 되는 것 같다. 이럴 때 내가 가상 세계와 항상 연결되는구나 하고 새삼 느낀다.


간혹 운동이나 산책을 갈 때면 스마트폰을 집에 두고 나가는 편이다. 푸르른 하늘과 자연, 조형물까지 온전히 느낄 수 있다. 관계, 시간, 계획, 가상과 동떨어지는 내 방법이다. 우리는 아직 초연결 시대에 맞춰 진화하지 못했으니까.



인지 혁명

약 7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는 매우 특별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무리를 지어 두 번째로 아프리카를 벗어났으며 다른 인간종들을 몰아내고 지구 전체로 뻗어 나갔다.


이들은 무기, 의류, 배 등을 발명했다. 종교와 상업, 사회의 계층화가 일어났다는 최초의 명백한 증거 역시 이 시기의 것이다. 이럴 수 있던 이유는 DNA의 오류인지 그들의 뇌는 인지 능력을 얻게 되었는데 호모 사피엔스는 그렇게 '관계(Relationship)'를 통한 ‘협력(cooperation)’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인지 혁명을 통해 40-50명 정도 되는 사람들 사이에서 수시로 변해가는 관계를 저장하고 추적해 나갔다. 몇 시간이고 수다를 떨며 누가 신뢰할 만한 사람인지 정보를 나누며 작은 무리는 더 큰 무리로 확대될 수 있었다.


여기에 ‘스토리(허구)’가 더해지며 전설, 신화, 신, 종교 등이 등장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말하며 집단적으로 상상하고 지금과 같은 문화, 사회, 정치의 기본적인 형태를 갖추며 국가라는 것을 형성하기 이른다. 


주목할 점은 불과 7만 년 전 우리는 40-50명 정도의 관계만 형성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오늘날 조직의 결정적 임계치도 자연적인 규모로는 약 150명이 한계라고 한다.

책 ‘사피엔스’ 제1부 인지혁명 참고


One, Steve Jobs

선사시대 말(言)이 우리를 모이게 했다면

중세시대 말(馬)은 역사의 속도를 빠르게 했고

지금은 실시간적으로 모든 것이 ‘연결’ 되었다.


스티브 잡스는 일찍이 서로 다른 것이 연결되는

지금의 디지털 세상을 머리에 그렸다.

"이러한 소통 방식은 위계적, 지리적 한계를 무시하는 조직을 형성할 뿐 아니라 경영자 입장에서도 아까 말씀드린 바 있듯이 조직 내 모든 생각들, 의견 차이들, 그리고 의사결정들을 모니터링하고 관리하는 데 있어 기존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새로운 개념입니다."
Steve Jobs, 1990.

서로 다른 것을 연결하는 것.

소비자와 브랜드를 연결하는 것.

기계를 넘어 트렌드를 만들어 내는 게 애플이라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들은 더 광범위하고, 더 빠르고, 더 정교하게 세상을 바꿔나가고 있다. (예를 들어 에어팟, 애플워치는

지금 세대들에게 패션의 일종이자 팬덤 현상같다.) 나는 이런 현상을 단순한 트렌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술과 결합된 하나의 사회문화 현상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너무나도 연결되어 버렸다. 처음에는 번호를 저장하고, 통화하고, 문자를 주고받았지만 지금은 우리 뇌를 일부 대신하는.. 한 개인의 데이터를 모두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한다. 저 엄청난 데이터는 지금 누구에게 가고 있을까?

Apple iPhone
카오스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Two, Mark Zuckerberg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미국 하버드 대학생이 자신의 동문을 관리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였는데 그게 '페이스북'이다. 그는 이것을 전 세계 대상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로 확장했고 21세기의 대표적인 기업 중 하나가 되었다.


권력 집단에 실증을 느낀 내가 2012년 온라인 업계에 처음 발을 들이며 가장 좋아하는 문화가 ‘수평’이었고, 다른 하나는 고객을 ‘사용자(User)’라고 부르는 것이었는데 이번에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Social Dilemma)'를 보고 알았지만 내가 좋아하던 용어인 ‘사용자(User)’를 부르는 또 다른 서비스가 있었는데 바로 ‘마약’ 이였다.

계속 눈이 가고 손이 가기 마련이다.

첫눈에 반한 이성을 매일 만나는 것처럼

스크롤을 멈출 수 없다.


아침에도 보고, 점심에도 보고, 퇴근길에 봐도 내일 또 보고 싶은 것처럼 몇 가지 특정한 행동을 하게 만들도록 강력하게 설계된 것이다.


그들은 인간의 내면 깊은 곳을 고려해 프로그래밍한다. 심리(psychology)적으로 말이다.

Social Network Service
카오스는 여기에서 완성됐다.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아이폰과

전 세계를 연결하는 네트워크 서비스 페이스북이 만났다. 전 세계 모든 이의 데이터가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다. 인간이 간섭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마치 신과 같은 영역이다.


우리가 무엇을 할지, 어디에 갈지, 무슨 생각과 감정을 갖는지 까지 그들은 우리를 점점 더 잘 알아가고 있다. 우리가 클릭한 모든 것들, 우리가 보는 영상과, 눌렀던 좋아요의 데이터를 통해 그들은 점점 더 신에 가까워지고 있다.


우리가 웃고, 즐기고, 소통하는 전반의 문화가 누군가에게 만들어지고 있는 그런 시대에 놓여 있다.

온라인 서비스를 만들 때 나는 단지 어떻게 하면 목적(결제)에 빨리 다다르게 할지, 어떻게 하면 이탈 없이 서비스 내에서 머무르게 할지 그것만 고민했던 것 같다. 웹의 기본 약속을 지키고, 서비스 내 공통된 UX를 지향하고, 쉽고 편한 사용성을 갖추면 된다고 생각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것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애플, 구글, 페이스북, 유튜브 등의 서비스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영행을 끼칠지 가늠할 수 없다.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우린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각종 알림과 SNS 이용에 노출되어 있으니 말이다.


특히 온/오프라인 내 엄청난 관계 활동이 이루어지는 청소년들은 신체적/정신적/사회적으로 미 성숙하기에 그 영향력이 더욱 크다고 생각된다. 다구나 이들은 정말 전에 없던 인지와 대응 수준을 경험하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New Systemic

산업혁명과 함께 대량생산이 되는 시기의 기술은 순수했다. 단순하게 사고파는 것에서 끝났으니까. 누가 독점을 하더라도 그것은 현실 가치의 거래에서 끝이 났다. 하지만 소셜 사업의 물건은 '전 세계 인간'이다. 우리 자신을 판매하고 있는 것과 다를 게 없다. SNS를 소비하면서 뒤따르는 지불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미디어, 소셜, 쇼핑몰 등은 모두 데이터를 연동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쇼핑몰에서 눈여겨본 제품이 연신 광고로 노출되는 게 그런 예이다. 이렇게 콘텐츠를 보는 것 만으로 실제 수익이 발생한다. 우리의 데이터는 실시간으로 공유/판매되고 있다.


보통은 자사 보유 데이터 + 업체를 통한 타깃형 광고만 가능하겠지만. 구글, 페이스북, 네이버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광고/콘텐츠/결제 사업을 통해 연결된 모든 콘텐츠, 기업, 쇼핑몰의 데이터를 이들은 갖고 있다.

플랙폼의 광고, 쇼핑, 결제로 인한 데이터 공유화

그렇게 콘텐츠를 보는 것 만으로 나의 관심사가 드러나고, 이런 데이터가 모여 ‘나’라는 사람을 만들게 된다. 누구에게 관심이 있는지, 어떤 콘텐츠를 좋아하는지, 지금 차를 사고 싶어 하는지 등을 잘 안다. 무의식 적인 것을 고려라면 나보다 더 깊이 알 수도 있다. 그렇게 광고가 노출된다.


광고 노출 케이스

기본적인 타깃형 광고

나의 라이프 및 관심사에 맞춘 광고

구매 및 관심 제품의 지속적인 광고


위에 케이스 만으로 내가 소비 충동을 느낄 광고는 꽤 많다. 내 소득 수준보다 약간 무리한 외제차라던지, 이번에 사려고 했던 코트, 전자기기, 비타민 등이 유튜브 사이사이 광고로, 구글 애드로, 인스타그램 스폰서 배너로 노출된다.

단편적인 소비 연결 예시

콘텐츠의 소비는 광고의 소비로 또 구매의 소비로 연결된다. 즉 우리는 단순히 콘텐츠만을 소비하는 게 아니다.


천하를 얻고자 한 유비, 조조, 손견은 각자 최고의 책략자를 옆에 두었다. 삼고초려하여 얻은 제갈량이 최적의 보급과 운용할 수 있는 이동체계를 설계했던 거처럼 소셜은 기업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선견지명’을 갖고 기업에게 최고의 수익성을 돌려준다. (실제 전쟁은 전투만큼 보급과 운용이 매우 중요하다. 진의 통일, 삼국지 역사를 보면 그렇다.)


—————

앞서 말한 과거 선조들이 '신화'를 통한 믿음(제국건설의 기초)이 지금 현대에는 '데이터'로 옮겨진 것 같다. 하지만 데이터를 근간으로 한 전반의 디지털 네트워크는 우리의 의지를 조종하고 나약하게 만들이게 나로서 주체를 갖는 게 아닌 시스템에 의해 조종당한다.


제국과 네트워크 시스템 모두 조종하는 것 같지만, 민주주의를 통해 얻은 우리 현대인의 자유는 이렇게 다시 어떤 것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는 게 아닐까?

또한 이런 시스템에 의해 조종되고 움직이는 것이 나는 개미나 꿀벌의 행동 패턴과 유사한 게 아닐까 나는 생각해본다. 즉 우리가 하는 모든 기술적 진화는 자연을 따라가는 듯하다. 일정 수신호에 따라 움직이고 네트워크 체계를 이룬 모습 말이다.


중요한 점은 여왕개미는 권력이 없지만 (여왕개미는 인간의 프레임을 통해 나온 수식어일 뿐이다.) 소셜은 보이지 않는 권력을 쥐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반복된 전쟁과 절대권력은 근대를 접어들며 민주주의를 맞이했다. 권력에서 자유로 넘어온 이 시점 과연 우리는 과거 권력의 시절만큼 크리에이티브를 실현하고 있는가?


2016 AGI OPEN SEOUL 세미나에서 스테판 사그마이스터가 이런 말을 했었다.

‘바우하우스의 지지자들이 요즈음 만들어지는 이러한 기능적인 건물들을 걸작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정말 전 세계를 대량 생산으로 찍어내는 것이 아닌 이상 옳지 않다. 그들은 또 그들이 인도해했던 것처럼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인 파리도 깎아 내려고 한다. 매년 많은 수의 학교, 정부, 개인 빌딩들이 이런 식으로 정형화되어 가고 있다.


개인적으로 ‘Less is more’를 말한 미스 반 데어 로에를 매우 존경하지만, 가우디의 건축을 보고 가슴 깊이 느낀 그 감정은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깊은 가우디의 예술성에 깊이 감복한 것이라 생각된다. 나의 바르셀로나 답사는 동심 그 자체였고 어느 때 보다 큰 감동을 일으켰다. 가우디의 건축은 당시 시대/지역적 부흥과 독립적인 예술성이 만나 탄생했다고 생각이 든다.

인간은 자유를 얻어 효율과 효과를 가장 먼저 생각했고 그러면서 지금과 같은 시스템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는데 우리가 생각할 부분은 집단지성은 '인간의 진보인가 아니면 퇴보인가?'이다. 인스타그램을 일상시 하고, 유튜브로 공부를 하고, 게임을 즐기는 것의 아주 깊은 본질에 다가섰을 때


지금의 디지털 사회는
과연 우리를 발전시키고 있는가?

이 대목에서 난 지금의 디지털 연결망과 창의성의 관계를 따져보고 싶다. 우리가 꿈꾸는 시대는 Tim Berners-Lee(internet), Steve-Jobs(Samrt Phone), Mark Zukerberg(Facebook) 안에 있는 것인가?


나는 지금의 소셜을
시대의 질병이라 생각한다.

우리의 인지능력을 훨씬 벗어난 Network(관계)는 사람의 일상에 다양한 형태로 그것도 아주 기민하게 질병으로써 침투하고 있다. 정치, 교육, 사회, 문화 모두 흔들리고 있다. 특히 국가의 선거에 영향을 주어 민주사회의 근간을 흔들어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도 지금 시대의 흐름이기에 이것은 부정할 수 없다.


지금 우리가 부정해야 하는 것은 '지금의 디지털을 이대로  것인가?’이다. 시대의 질병을 개개인이 발견하고, 함께 아파하며 고치려고 덤벼 들어야 한다. 


새로운 IT 기업들이 시대와 함께 변화하고 있을까? 아니다. 그렇지 않기 때문에 대중, 정부, 매체의 비판과 감시를 받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단순히 경영인 개인의 도덕성과 윤리성의 문제일까? 경영자가 유능해서, 또는 무능해서 일까? 아니면 이 사회와 기업 사이의 괴리일까?


확실한 건 그들은 전 세계 사람들을 위해 사회적, 도덕적, 윤리적 책임 그리고 실질적인 업무 프로세스를 만들어야 한다. 주주들의 부를 극대화시키는 것만큼 사회적이고 환경적인 활동을 해야 한다.


이것을 외면한 채 시간이 흐르고 리소스가 정말 넘쳐흐른다면 영화 '매트릭스'와 같은 모습은 펼쳐지지 않을 거라 장담할 수 없을 것 같다.


우리가 자주적으로 독립했다는 말은 인간이 믿음의 세계에서 생각의 세계로 넘어왔음이다. 철학적 사유를 하기 위해서는 익숙한 것들과 결별하고 고독을 자초해야만 한다. 디지털, 온라인, 기계를 버릴때 만이 분명 새로운 창발의 시대가 열릴 것 이다.

마지막으로 지금의 이 혼란(질병)을 우리 개개인이 철학적이고 독립적인 모습으로 이겨냈으면 한다.


[참고문헌]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2015

소셜 딜레마, 넷플릭스, 2020

철학적 사유의 시선, 최진석, 2017

이케아, 북유럽 스타일 경영을 말하다, 앤더스 달빅, 2013

페이스북 관련 기사, BBC KOREA, 2018

스티브 잡스 영상, 유튜브 '스테이지 5' 채널,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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