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혼자 이별을 준비하고 있던 나는 강타회의 코미디 같은 신년모임을 계기로 마음을 바꿔먹고 당분간 계속 모임을 나가기로 했다.
나는 기대와 불안이 뒤섞인 마음을 가지고 다음 모임에 참석했다.
회식자리에서 얼굴을 익힌 덕에 낯설움은 덜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코트의 공기는 어색했다.
신임총무 S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예전과 달리 누군가 페어를 구성해 줬고 난 게임에 참여할 수 있었다.
과대망상에 어느 정도 벗어나 스스로의 실력을 자각한 상태였기에 불안했지만 그래도 원만한 게임을 꿈꿨다.
하지만 나의 바람과는 달리 게임은 일방적으로 끝나 버리기 일쑤였다.
나의 빈약한 서브는 상대방의 먹잇감이 되기 충분했고 그마저도 툭하면 더블폴트로 실점했다.
상대가 받아준 평범한 공조차도 제대로 넘기지 못하는 내 모습에 또다시 좌절했다.
무엇보다 힘든 것은 함께 게임하는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페어는 물론이거니와 상대편조차도 나 때문에 싱거운 게임을 하게 만든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들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사람들의 성품과 성향은 제각각이다. 코트 안에서는 개인별 성향차이가 더욱 눈에 띄기 마련이다. 페어의 실수에도 괜찮다고 격려해 주는 이부터 상대에 대한 비아냥이 몸에 밴 이, 말없이 표정과 행동으로 불편하게 만드는 이, 끊임없이 잔소리를 해대는 이까지...
물론 그저 적당히 매너를 지키며 평범하게 공을 치는 사람이 가장 많긴 하다.
강타회 회장은 유난히 잔소리와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었다. 그와 페어를 하게 되면 게임의 시작부터 끝까지 온갖 잔소리와 타박을 들어야 했다. 승부욕도 강해서 게임에 지게 되면 뾰로통한 얼굴로 인사도 한 체 만 체 나가버리기 일쑤였다. 실수투성인 데다 페어가 되면 게임에 지는 일이 다반사인 나는 그와 페어가 되면 미안함과 민망함 그리고 고마움과 불편함의 경계에서 감정의 널뛰기를 해댔다.
그럼에도 테니스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 어떤 운동보다도 재미있고 내일이면 나아질 거라는 근거 없는 기대감을 주는 운동이었다. 하지만 코트 내에서 사람들과의 관계는 좁혀지지 않았다.
난 3년간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다.
강타회에는 흡연자가 많았는데 게임이 끝나면 우르르 나가 담배를 피우며 지난 게임을 품평했는데 혼자만 멀뚱히 있기가 뭐해서 그 무리를 따라다니다 보니 다시 담배를 물게 된 것이다.
보통은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한다고 하는데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 돼버렸다.
사진: Unsplash의J. Schieman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