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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캣 Nov 29. 2018

육식조선 肉食朝鮮 02

가리구이

가리*를 맛나게 만드는 법은 이렇다. 먼저 가리를 두 치 삼사 푼 길이씩 일정하게
자른다. 이를 잘 드는 칼로 가로결로 잘게 안팎으로 저미고 세로로도 저미고
 가운데를 타 좌우로 젖힌다. 여기에 가진 양념을 한 다음
새우젓국으로 간을 맞추고 주물러 재어 두었다가 굽는다

          


그 날 아침엔 때 이른 살얼음이 개천** 여기저기에 살살 끼기 시작할 정도로 꽤 추웠다. 이른 새벽 치성을 드리고 오간수교를 건너 이문*** 근처의 처소로 돌아가던 무녀 백지는 다리 아래에 이상한 물건이 있는 걸 발견했다. 매일 지나는 다리인 데다가 아주 사소한 변화라도 알아차리는 섬세한 감각을 지닌 무녀인 백지에겐 그 날 아침 다리 밑의 변화가 크게 거슬렸다. 뭐지 저 물건은? 잠시 다리 위에 서서 그 요상한 물건을 쳐다보니, 그것은 커다란 독. 눈이라도 쏟아질 듯 희뿌연 하늘을 향해 곧추 선 잘 만든 독이었다. 백지는 조금 더 가까이 내려가 보기로 했다. 꽤나 비싸 보이는 물건인 데다 반듯하게 뚜껑도 덮여 있는 게 그런 곳에 버려질 물건으로 보이진 않았다.  


*갈비
**오늘날의 청계천
***里門_마을에 표시한 일종의 경계문. 오늘날의 이문동 근처 

    

무녀만의 직감이 발동한 백지는 치맛단을 걷어 부치고 다리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다리 아래는 토사의 퇴적이 심해서 철야 기도로 기력을 빼앗긴 백지가 걷기엔 결코 쉽지가 않았다. 게다가 겨울 같은 가을날인데도 불구하고 양안 민가에서 흘러나오는 온갖 오물이며 냄새가 코를 찌르고 있었다. 잠시 후, 드디어 어슴푸레하던 독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도 시시각각 밝아오는 아침 해는 백지가 그 물건 앞에 다다랐을 땐 꽤나 형형했던지라 백지는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가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깨진 곳 없고 금도 없어... 하... 왜 이리 어지럽지?”     


하나, 가까이 갈수록 백지는 머리가 아프고 구역증이 올라오더니 급기야는 바닥에 속을 게워내고야 말았다. 어젯밤 치성 드릴 때 제물로 썼던 쇠머리 때문인가 싶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물건은 좀처럼 쓰지 않는 그녀였지만 어제 모신 할배신은 워낙에 날고기를 밝히는 지라 특별히 주문해 올린 터였다. 피를 너무 흘렸나, 오전 중으로 팥을 삶아 마셔야겠다 싶던 순간이었다. 독. 잘 생긴 독에서 흘러나오는 살기가 생생하게 백지를 감쌌고, 그녀는 곧 자신이 보게 될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있었다.      




한 식경 후. 한성부 좌윤* 최정보는 무녀가 시체가 담긴 큰 항아리를 발견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최정보가 보낸 세 명의 참군과 나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무녀는 사라지고 사람들만 모여들어 웅성거리고 있었다. 감히 뚜껑을 열어볼 엄두도 못 내는 마을 사람들은 잠이 덜 깬 듯 하품을 하거나 구시렁거리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참군이 도착하자 부리나케 그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마침내 참군이 독 가까이 다가가자 이른 아침의 솔찮은 구경거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모인  호기심 많은 수십 개의 눈이 일시에 항아리로 쏠렸다. 


*左尹 : 한성부를 총책임지던 한성 좌윤을 보좌하는 좌윤과 서윤 김훈 중 하나

     

“어이, 다들 비켜나시오. 거 참, 가까이 오지들 말라니까!”     


몸집이 큰 참군* 하나가 험악한 얼굴로 사람들을 막아서는 사이 호리호리한 또 다른 하나는 저만치에 있던 돌을 낑낑거리며 끌고 와 항아리 옆에 갖다 댔다. 그리곤 옷 춤에서 허연 천 쪼가리를 꺼내서는 얼굴에 둘러 입과 코를 막았다.   


*조선시대 한성부(漢城府)·훈련원(訓鍊院)에 두었던 정 칠 품(正七品) 관직   


“젠정헐, 조반 먹은 게 목구멍까지 올라와부렀다니께... 웩!”    

 

돌 위에 올라가던 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가까이 갈수록 냄새는 점점 더 심해졌고 급기야 항아리 뚜껑을 찔끔 열어본 그는 잽싸게 뚜껑을 닫고 도망치듯 내려와 일꾼들을 불렀다. 덩치 큰 일꾼 셋이 겨우 들 정도로 독은 묵직했다. 마침내 커다란 황소가 이끄는 우마차가 독을 싣고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자 이제껏 멀찌기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그 뒤를 우르르 쫓아갔다. 지체 높은 양반 댁 대청마루에서나 봄직한 비싼 항아리에 담긴 시체는 하루에도 죽은 이를 수십 번씩 보는 이곳 사람들에게도 희한한 사건이었고 구경꾼들의 열기는 좀처럼 식을 줄 몰랐다.     




참군이 도착하자 곧 서윤 김훈이 달려와 이를 알렸다. 하지만 보고서로 수북한 책상 앞에 앉아 문서를 검토하던 최정보는 고개도 들지 않고 건성으로 물었다.   

   

“그래, 죽은 이는 누구였느냐?”

“그것이, 사람들 말로는 그 마을 이는 아니라 했습니다. 저희가 일일이 시체를 확인하게 하였으나 아무도 누군지 알아보질 못했습니다.”     


시체, 시체, 온통 시체뿐이었다. 살인에 역병, 병노한 부모의 숨이 채 끊어지기도 전에 내다 버리는 자들까지 더해져 온 한성이 무명의 시신으로 넘쳐날 지경이었다. 오늘 사건은 항아리라 하니, 누군가 역병 들린 가족을 담아 버린 거겠지. 장례를 치르고 매장할 여력조차 없는 이들에겐  그나마 최선의 장례라는 걸 최정보는 알고 있었다. 살인사건은 아닐 것이다,라고 그는 생각했다. 아니, 믿고 싶었다. 


“발견 당시 상황을 소상히 말해 보거라.”

“열서넛 정도의 사내아이였는데 목에 칼이 깊숙하게 박혀 있었고 발가벗겨져 있었습니다.”   

  

최정보가 고개를 들었다. 발가벗겨서 가족의 장례를 치르는 경우는 없다.      


“발가벗겨졌다? 항아리 속이나 근처에 옷이 없었느냐?”

“예. 샅샅이 뒤져보았으나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이미 발생한 사건만으로도 머리는 꽉 차 터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가볍게 여기기엔 상당히 기분 나쁜 구석이 있었다. 아침저녁으론 여전히 물독에 살얼음이 끼는 날씨에 홀라당 발가벗겨져 죽은 것도 그렇고, 또 다른 데도 아닌 목에 칼이 박혀 있다는 것도 찜찜했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최정보는 사람을 보내 인근에서 가장 솜씨 좋은 대장장이를 불렀다. 더불어 한성부 소속 오작인을 불러 급히 시신을 살펴보되 시체에 손을 대지는 말고 사인을 알아내라 일렀다. 여느 평민 살인사건과는 다른 복잡한 지시가 내려지자 한성부도 바쁘게 움직였다. 조선의 하급관리들은 수동식 톱니바퀴 같아서 가만히 두면 한없이 굼뜨다가도 누군가 톱니바퀴에 연결된 손잡이를 빠르게 돌리기만 하면 휘리릭 바람처럼 움직이는 민첩함을 보이곤 했다. 평소 자신들의 늑장을 눈감아주던 대장이지만 갑자기 휘몰아치듯 지시라도 내리면 그들은 곧바로 기름 잘 먹인 바퀴가 되어 순식간에 굴러갔다. 그 날, 눈치 하나로 목숨을 떼었다 붙였다 해야 하는 하급관리들은 좌윤의 목소리에 드리운 무게감을 감지하고는 번개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덕분에 최정보 앞에는 한식경이 채 안 돼 대장장이 금생과 오작인 조현노가 손과 머리를 조아린 채 대령했다. 

     

“아이가 왜 죽었느냐?”     


최정보는 먼저 조현노에게 물었다.   

   

“천 돌*에 칼을 맞아 즉사한 것으로 보입니다.”

“주저한 흔적이나 칼질을 두세 번 하지는 않았느냐?”

“예. 정확히 한 번에 꽂아 넣었습니다.”

“능숙한 자의 솜씨라는 것이냐?”

“예. 칼이 박혀있는 각도의 예리함으로 볼 때 분명합니다.”

“그래, 알겠다. 수고했다.”     


*앞정중선상에서 흉골병(胸骨柄)의 경절흔으로부터 위로 5푼 뒤는 우묵한 곳에 위치한 임맥(任脈)의 혈(穴) 자리


최정보는 이번엔 대장장이 금생에게 물었다.      


“칼만 보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떤 쓰임새로 쓰였는지 알 수 있느냐?”    

 

일목요연하게 최정보의 질문에 대답한 조현노와는 달리 금생은 커다란 눈알을 굴리며 식은땀을 질질 흘렸다. 아무래도 한성부 부참판의 갑작스러운 부름에 짐짓 놀란 듯 보였다. 하긴 이 자리가 어딘가. 말 한마디로 능지처참을 당할 수도, 숨이 끊어질 때까지 곤장을 맞을 수도 있는 곳이다. 금생은 최정보의 질문에 궁색한 눈빛을 연거푸 보내는 것으로도 모자라 마침내 그 자리에 쓰러져 머리를 땅에 부딪더니 질질 짜기 시작했다.     

 

“소인 성냥이* 질 삼십 년에 일자무식이옵니다. 이런 소인이 뭘 알겠습니까요. 그저 불쌍하고 가련한 천한 것이니 한 번만 용서해 주신다면⋯”

“이름이 무엇이더냐?”    


*무딘 쇠 연장을 불에 불리어 재생하거나 연장을 만드는 일 


예상을 빗나간 갑작스러운 질문에 금생은 한껏 부풀린 슬픈 감정이 담긴 곡소리를 뚝 그쳤다. 이름? 이제껏 이리도 지체 높으신 분이 자기의 이름을 물어본 적이나 있었나? 아니다. 그건 고사하고 저런 높으신 분들에게 천한 아랫것들의 이름이란 건 당최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닌가. 쇠똥보다도 불필요한 자기의 이름을 묻는 이유가 무엇일까? 급기야 금생의 얼굴은 파랗게 질리고 숨이라도 넘어갈 듯 공포가 차올랐다.      

오줌이라도 지릴 것 같은 금생이 안쓰러웠는지 판관* 하나가 최정보의 귀에 대고 급히 속삭였다. 최정보는 판관의 말을 듣는 동안 고개를 몇 번 끄덕이더니 좀 더 부드러워진 얼굴과 목소리로 여전히 바들바들 떨고 있는 대장장이에게 다시 물었다.    


*한성부 소속의 종 5품 관리

  

“금생아.”

“예예... 나으리.”

“겁먹을 것 없다. 난 지금 네게 도움을 청하고 있는 것이다.”

“예? 소, 소인이 어찌... 하늘 같은 나으리를.... 도, 도울 수 있겠습니까요, 천만부당하십니다요. 아이고...”    

 

하지만 금생은 최정보의 말에 오히려 더 기절할 듯 자지러지더니 급기야 그 자리에 풀썩 까무러쳤다. 하지만 이런 일엔 이력이 난 판관이 다가가 몇 마디 건네자 달아난 혼줄이 돌아온 건지, 아니면 달아난 척 한 건지 다시 금생은 바로 눈을 뜨고 다시금 머리를 조아리기 시작했다.     


“금생아. 지난 일은 나도 마음이 아프구나. 그런데 오늘 네 아들만 한 아이의 사체를 발견했다. 그러니 네가 그 아이를 죽인 흉기를 좀 살펴봐주었으면 좋겠구나.”

“제, 제가 아는 거라곤 없는 무식쟁이라... 그치만... 아이, 랍구쇼?”

“그렇구나. 오늘 일로 인해 너와 네 식솔들에겐 그 어떤 나쁜 일도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내 약조를 할 것이다. 아는 것을 가능한 소상히 이르도록 하거라.”

“흐흐흑⋯. 나리⋯. 제 아들은⋯ 아무 죄가 없었습니다요⋯ 흑흑⋯.”    

 

금생의 어린 아들이 살인누명을 쓰고 교형을 당한 건 지난해. 어린아이가 살인이라니, 그것만으로도 말이 안 될진대 게다가 죽은 이는 남촌^에 거주하는 형조 정랑 이시중의 늙은 아비로 나이 칠십을 넘긴 고령에 각혈을 하던 중환자였다. 문제는 아이에게 씌워진 살인죄의 이유가 너무도 황당한 것이었다. 노인네가 죽기 며칠 전, 금생의 아들이 그 집 앞을 지나다가 걸음을 멈추고 요상한 말을 했는데, 그 후 노인네가 갑자기 숨을 거두었다는 것이다. 상을 당한 이시중은 진노한 끝에 아이를 잡아다가 매를 때린 후 ‘노인에게 죽음의 저주를 내렸다’라는 억지 자백을 받아냈고 결국 아이는 아비가 보는 앞에서 끈으로 목을 졸라 죽임을 당했다고 했다. 


*조선시대, 남산을 중심으로 종로 남쪽을 일컫던 말. 북촌이 주로 지체 높은 양반들이 거주했던 데 비해 남촌에는 지체가 낮은 양반들이 모여 살았다. 

     

“어제 죽은 이 어린아이의 죽음을 우리가 알아내야 하지 않겠느냐. 네 아들처럼 억울하게 죽은 아이일 수도 있다.”

“아이고 불쌍한 내 새끼... 밥도 한 번 배불리 못 멕였는디.... 그 어린것이 무신 저주를 내렸다고... 무당도 아니고... 아이고오 아이고오.”  

   

아들 같은 아이가 죽었다는 말에 꾹꾹 참았고 눌렀던 설움과 애통함이 금생에게서 터져 나왔다. 그동안 요망한 천한 놈의 아비라는 이유로 눈물마저도 삼켜야 했던 그였다. 하지만 최정보의 인자한 시선과 따뜻한 목소리에 한 겨울의 논바닥처럼 얼어붙고 갈라졌던 대장장이의 마음은 한 풀 바람이 잦아들고 가라앉은 듯 눈물을 닦고 참군이 내민 칼을 바라봤다. 한 번 쓱 보고 나서 금생은 놀라는 기색도 없이 시선을 거두더니 눈물 콧물이 범벅진 얼굴을 손등으로 쓱 닦으며 최정보에게 고했다.    

  

“족보씨*입니다요. 제가 만든 건 아닙니다요.”    

 

조선 초기 백정들이 사용하던 칼


금생의 말과 함께 최정보의 눈이 빛났다.      


“방금 족보씨라 했느냐?”

“예. 만든 지 꽤 된 늙은 족보씨입니다요. 피 꽤나 먹었을⋯.”

“흠 그래?”

“예. 그런데 나으리. 제 어린 아들놈은 진짜 아무 짓도 하지 않았습니다요. 노망난 노인네가 제 아들한테 막말은 했고 아들놈은 뭔 소릴 하나 그저 듣기만 했다 했습니다요. 저주라니요, 글 한 자 모르는 무식한 어린 제 새끼는 저주의 저자도 쓸 줄 모르는 그냥, 그냥 핏덩이였습니다요. 그런데도 그 어린것의 목을.... 흑흑 메달다니요... 제가 그날 밤 이시중의 집으로 달려갔을 때 녀석은 죽어가면서 제게 마지막 말을 남겼습니다요. 억울하다고⋯ 흐흐흑⋯.”    

 

아이의 목에 박힌 족보씨는 그의 눈엔 그저 흔하디 흔한 칼이었을 뿐, 금생은 다시 아들 얘기로 넘어가면서 꺼억꺼억 울음을 토해냈다. 아이는 차마 눈도 감지 못한 채 죽었노라고 했다. 그렇게 죽어간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견뎌낼 수 있는 아비는 없다. 목숨 줄이 간당간당하던 노인네에게 말실수를 한 것 가지고 교살이라니⋯ 그것은 분명 순장의 또 다른 뒤틀린 재현이었다. 그랬다. 아직까지도 어린 목숨을 제물 삼아 죽은 이의 혼을 달래려는 어리석은 이들이 있다니. 임금마저도 백성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권좌에서 물러나는 시대에 한낱 한직을 차지하고 있는 참하관 관리의 일그러진 효심으로 아무런 죄 없는 소년이 목숨을 빼앗기고 그 가족들이 평생을 아픈 기억을 갖고 살아가야 한다는 게 최정보는 믿기지가 않았다.   

   

발가벗겨진 채 목에 칼을 맞고 독에 넣어져 버려진 소년도 억울한 죽음이었을 것이다. 금생은 살인에 사용된 칼이 백정들이 사용하는 족보씨라 했다. 최정보가 아는 한 백정들은 함부로 살생을 하는 이들이 아니었다. 

‘소를 도살할 때조차도 소의 영혼을 위해 엄숙하게 제를 올리는 게 그들이다. 그런 그들이 아무런 이유 없이 소년의 목숨을 빼앗았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다.’ 

최정보는 대장장이와 오작인의 증언을 토대로 살해 가능성을 두 가지로 좁혔다. 

‘범인이 백정들이 사용하는 칼을 훔쳐 살인 흉기로 사용한 것이다. 혹은 백정들이 어떠한 이유로 피치 못해 소년을 살해한 것이거나.’

하지만 전자는 가능성이 매우 희박했다. 백정들이 누군가? 그들은 잠을 잘 때에도 칼을 손에 쥐고 잘 정도로 칼을 아낀다. 그런 그들이 칼을 도둑맞다니⋯ 최정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갓 죽은 시체에서 머리가죽만 벗겨가는 인두피* 수집광부터 아들을 낳은 산모의 피 뭍은 기저귀를 훔쳐간 노파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건을 접해본 최정보다. 하지만 백정이 칼을 도둑맞았다는 소린 듣도 보도 못했다. 게다가 망설임 없이 단 칼에 찔러 넣은 솜씨로 봐선 아이를 죽인 건 백정임이 분명했다. 두 명의 죄 없는 소년이 죽었다. 혹시 금생의 아들과 다리 밑에서 발견된 아이의 죽음에 연관이 있는 건 아닐까?      


*人頭皮 : 사람의 머리


한성부 남부 검시실이 덩치 큰 대장장이의 울음과 사건에 몰입하는 최정보의 집중으로 점점 더 무거워져가고 있을 때, 참군 하나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와 급하게 최정보의 곁에 있던 판관에게 뭔가를 알렸고 서윤 김훈은 다시 민첩하게 최정보의 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뭔가를 전달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최정보의 양미간에 급 주름이 잡혔다. 순간 흐느끼던 금생도, 금생을 달래던 또 다른 판관도, 그리고 소식을 들고 온 참군도⋯ 모두의 호흡이 멈췄다. 그 순간, 최정보의 입에서 나온 말 하나하나는 누군가의 목숨을 살릴 수도, 또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저 양미간의 주름이 말해주고 있는 것이었다. 최정보는 늘 그랬다. 뭔가에 대한 판결을 내릴 때마다, 짙은 숯댕이 눈썹 사이에 있는 미간에 잔뜩 주름을 만드는 버릇이 있는 그다.     

 

“네 아들은 몇 살이었더냐?”     


하지만 최정보의 입에서 나온 건 사건과 그다지 무관한 듯 보이는 그저 그런 말이었다. 숨쉬기를 멈추고 최정보의 입을 주시하던 눈동자들이 일제히 한숨을 내쉬었다. 사건의 결말이 나는가 보다 기대했던 이들이 기약 없는 퇴청을 예감하며 내쉬는 이 한숨들을 뚫고 울음소리가 급 삐져나왔다.     

 

“흐흐흑⋯. 나리⋯ 우리⋯ 동구는⋯ 열⋯ 네 살이었습니다요⋯. 살아⋯있었다면 열⋯다섯 살이 되었을⋯겁니다요⋯ 흐흐흐흑흑흑⋯⋯나리⋯. 우리 동구⋯. 우리⋯ 동구⋯.”     


열네 살. 동구. 금생은 다시 오열을 시작했다. 좌윤은 고사하고 그 어떤 한성부  관리도 일개 대장장이에게 이런 질문을 하진 않았다. 금생에겐 최정보가 죽은 아들의 나이를 묻는 그 순간 그간의 억눌렀던 설움이 터지면서 다시 한번 울음보가 터진 것이었다. 


‘열네 살, 十四⋯. 열네 살, 十四⋯. 열네 살, 十四⋯.’      


하지만 정작 최정보의 머릿속엔 숫자 하나가 맴돌 뿐이었다. 금생의 사연이 딱한 건 사실이나 그런 사사로운 일에 지체할 감정은 없었다. 금생의 울음소리가 점점 더 커지자 최정보는 얼른 판관을 시켜 금생에게 쌀 다섯 되를 쥐어 보내주라 일렀다. 금생은 울음을 뚝 그치곤 자리에서 일어나 절을 수십 번도 더 하고 한성부를 떠났다. 뒷모습마저 두툼한 대장장이가 꼭 껴안은 작은 쌀자루가 죽은 아이의 목숨 값도 아닐 진데. 목에 줄이 감긴 체 버둥거리며 죽어간 소년의 얼굴이 그 아비의 뒷모습에 겹쳐 보이는 듯하여 최정보는 다시 미간을 찌푸렸다.  

    

“열네 살, 十四⋯. 열네 살, 十四⋯. 열네 살, 十四⋯. 십과 사라⋯.”     


독에서 발견된 죽은 소년은 수원에 사는 준행이라는 아이였다. 나이는 열네 살. 소작농인 부모를 둔 평범한 아이로 시체로 발견되기 하루 전에 집 근처에서 실종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아이가 발견된 곳은 청계천 다리 밑. 열네 살 아이가 스스로 수원을 떠나 사대문 안까지 왔을 가능성은 없었다. 그렇다면 수원 근처에서 죽임을 당한 후 옮겨졌다는 게 된다. 혹은 산채로 납치된 후 개천 근처에서 살해됐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아이는 납치된 후 살해된 것이 분명해 보였다.      

왜? 누가? 가난한 부모를 둔 준행이를 납치하고 죽였을까? 그것도 족보씨를 굳이 사용해서? 백정들 짓이라면 왜? 알려진 것과는 달리 백정들은 살생에 대해 나름의 원칙과 금기를 정해두고 엄격하게 지키는 이들이다. 소나 돼지를 죽이는 그들에게 살생이 아닌 선성한 일을 하는 것. 그런 그들이 사람을 죽였다? 그것도 죄 없는 소년을?      

“이건 단순 살해가 아니다⋯. 뭔가 큰 목적이 있어⋯ 혹시 제물? 금생의 아들처럼? 열네 살짜리 남자아이를 제물로 원하는 그 무엇?”     


순간. 새카맣고 작은 벌레들이 우글거리는 듯한 최정보의 복잡한 머릿속 어딘가에서 문장 하나가 홀연히 나타났다.      


십은 종과 횡의 길이가 같은 글자다동서를 뜻하는 횡과 남북을 뜻하는 종이 결합된 글자그래서 완성을 의미하는 숫자인      

하늘을 지키는 네 수호신즉 옥으로 만든 탑을 들고 있는 이(), 검을 들고 있는 마(), 두 자루의 검을 들고 있는 조()와 못이 박혀 있는 곤봉을 들고 있는 온(). 그 어떤 지상의 용맹과 무기로도 이길 수 없다는 그들을 이기는 자는 세상을 얻으리라     


“十과 四라. 완전한⋯승리⋯?”    

  



성균관에서 수학할 때부터 동기생들 사이에서 장도릉*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최정보였다. 여느 유생들처럼 공자나 맹자를 읽기보다는 노자와 장자를, 성균관의 주요 시험 범위인 대학이나 논어를 읽는 틈틈이 시경**에 빠져드는 그를 향한 동기생들의 놀림 반 질타 반 애칭이었다.    


* 張道陵_후한(後漢) 시대 패국(沛國)에서 태어난 인물로 황제(黃帝)와 노자(老子)를 교조로 삼은 중국의 토착종교인 도교를 세웠다. 장도릉은 초기에 오경(五經)을 공부하다가 만년에 장생도(長生道)를 배우고 금단법(金丹法)을 터득한 뒤 곡명산(鵠鳴山)에 들어가 도서(道書) 24편을 짓고 신자를 모았다. 이때 그의 문하(門下)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모두 5두(斗)의 쌀을 바쳤기 때문에 오두미도(五斗米道) 또는 미적(米賊)이라고도 불렸다. 장도릉이 죽자 아들 형(衡)과 손자 노(魯)가 그의 도술을 이어 닦았다
 
**춘추 시대의 민요를 중심으로 하여 모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집

  

“아니, 이미 쭈그러든 경전 따윌 읽는다고 누가 자넬 알아주기라도 할 것 같은가? 제발 세상 돌아가는 것 좀 읽게. 우리가 읽어야 할 건 지나간 세상이 아니라 지금의 세상이라 이 말일세.”   

  

절친 동기생 김홍중은 늘 그렇게 말했었다. 맞는 말이었다. 선비의 일이란 무릇 지금의 세상을 읽어야 한다는 것. 하지만 지금을 읽으려면 더불어 옛날을 읽을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 최정보의 생각이었다. 그런 신념으로 묵묵히 읽어두었던 역경이었다. 그리고 그중 한 구절이 지금, 금생이 한 바탕 울고 나간 텅 빈 한성부 남부* 검시실에 앉아 있던 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이다. 책이란 이런 것. 일단 읽고 머리와 마음에 담아 두면 꼭 필요한 바로 그때 번개처럼 나타나 번득이며 뭔가를 말해주는 것이다.    


*南部_한성부를 구성하는 5부(동, 남, 서, 북, 중)의 한 곳  


“금생의 아들이 죽은 게 언제였는가?”

“지난해 시월 초나흘이었습니다.”

“정확히 넉 달 전이군.”    

 

분명 뭔가가 있었다. 그저 한 아이가 죽었다.라는 식으로 넘기기엔 이번 사건은 심하게 냄새가 난다고 최정보의 직감이 말하고 있었다. 열넷. 열과 넷. 백정. 남자아이. 교살과 천돌에 정확히 꽂아 넣은 칼. 최정보의 머릿속은 이제 몇 개로 압축된 사건의 조각들을 이리저리 꿰어가며 모양을 맞춰나가고 있었다.  

    

“나리. 저⋯.”     


생각에 푹 빠진 최정보의 눈치를 살피던 판관이 조용히 최정보를 불렀다.     

 

“응? 무슨 일이냐?”

“그, 그것이.”     


이미 밖에는 음력 2월의 이른 저녁이 시작되고 있는지 어둑어둑했다. 어디선가 석쇠에 고기를 올려 굽는 냄새가 희미하게 전해져 왔다. 윤달이 있는 해라 유난히 길고 지루한 겨울이 계속되고 있는 데다가 해괴한 살인사건에, 전국적으로 내려진 우금령에 갑자기 몰아친 전염병까지 온 나라가 열에 달떠 있는 지금. 그런데도 우금령이 미치지 않는 한쪽에선 연일 고기 잔치가 열리고 있었다. 가족이 쓰러지고, 가족처럼 키우던 가축이 쓰러져 오열하는 사람들의 콧속으로 들어와 텅 빈 그들의 위를 자극하는 고기 굽는 냄새. 최정보 또한 굳이 고기를 마다하지는 않지만 요 몇 달간은 가축과 사람들의 수많은 사체들로 당최 육식이 당기질 않을 정도였다. 저들은 기나긴 금육의 시대*에 대한 한풀이라도 하는 걸까. 지금의 이 역병은 논을 갈던 소건, 밭을 일구던 소건, 우마차를 끌던 소건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저들의 육탐에 대한 벌이다⋯라고 최정보는 생각했다. 


*불교를 숭상, 육식을 금하던 고려시대를 말함

     

“하청하실 시각이 지났습니다.”     


생각에 잠기느라 판관이 옆에 있는 것조차 잊었던 최정보는 급하게 생각에서 빠져나왔다. 그렇지. 모두들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구나. 


“그래, 수고했네. 난 좀 더 지체할 것이니 이제 그만 돌아가게.”

“그게 아니라⋯ 내일이 거골장 유백증의 아들 발인이라 오늘은 가보셔야 할 듯합니다.”

“유백증? 그 자의 아들이 죽었다고?”

“예.”

“큰 쪽인가 작은 쪽인가?”

“작은 아들이옵니다. 큰아들은 이미 몇 해 전에 죽었습니다.”

“아, 그랬던가. 그런데 무슨 일로?”

“술을 마시곤 갑자기 발작을 일으켜 숨이 끊겼다고 합니다.”

“젊은 나이에⋯ 그 작은 아들이라면 아직 혼례도 안 치른 그 녀석 아닌가?”

“예. 그렇습니다. 나리께서 가셔야 할 자리 같은데 오늘이 마지막이라⋯.” 

    

최정보는 유백증의 작은 아들, 유황을 만난 적이 있었다. 지난해 찾아갔던 유백증의 집에서였다. 유황은 젊고 건강했고 한성에서 제일 부잣집 아들인 그의 미래 또한 탄탄해 보였다. 그런데 그가 죽었다?    

 



그 날은 제법 쌀쌀한 시월의 어느 이른 오후였다. 평소 최정보와 친하게 지내던 도승지 김도술이 갑자기 찾아왔다. 미리 전갈을 띄운 것도 아니어서 최정보는 의외였는데 김도술이 대뜸 하는 말에 더욱 놀랐었다.      


“이보게. 운암. 나랑 갈 데가 있으니 일어나시게.” 

    

영문도 모르고 일어선 최정보가 김도술을 따라간 곳은 남촌의 복작거리는 골목이었다. 김도술은 말주변은 없으나 한양 이곳저곳 구석구석 발이 닿지 않는 곳이 없을 만큼 분주한 자였다. 굳이 그와 친분을 유지하는 것도 그런 김도술의 오지랖에 종종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굳이 이러쿵저러쿵 하지 않은 채 묵묵히 그 뒤를 따라가 보면 쏠쏠한 재미를 보았던 터라, 그날도 최정보는 별 말없이 그를 쫓았다. 글 읽기나 업무에 대한 고민보다는 숨어있는 산해진미를 찾아내 맛보는 것을 낙으로 삼고 살아가는 김도술의 기름기 가득하고 펑퍼짐한 뒤태가 눈에 들어왔다. 흰 눈이 희끗희끗 날리기 시작하던 남촌의 나지막한 담들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덩치 큰 김도술의 푸짐한 살집이라니. 그건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엉터리 그림처럼 보였다. 겨우 목숨을 부지할 만큼의 푸성귀만으로 살아가는 가난한 백성들의 쪽마루에 차려진 호사로운 권세가의 상차림과 을 보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최정보에게 있어 그 두 모습은 그가 속한 두 세상의 민낯이기도 했다.    

  

“휴, 다 왔네. 여길세. 어서 들어가시게나.”  

   

붉게 상기된 얼굴의 김도술이 숨을 몰아쉬며 도착한 곳은 남촌에서는 보기 힘든 제법 큰 규모의 집이었다. 화려하게 치장되거나 위세가 있어 보이는 집은 아니었지만 집안 곳곳에서 풍겨 나오는 기름진 냄새와 그 사이를 부산하세 오가는 일꾼들의 숫자로 보아 언뜻 보기에도 부잣집이 분명했다. 그것도 집안 어딘가에 알차게 돈이 될 만한 물건들이 차곡차곡 쟁여 있을 알부자의 집.      


“어서 오십시오. 왜 이리 늦게 오셨습니까? 다들 한창이십니다.”   

  

김도술이 왔다는 하인의 말을 듣고 마당까지 뛰어나온 이는 깡마르고 검은 피부의 노인네였다. 솜을 두어 누빈 명주 두루마기를 무릎 아래까지 길게 내려오게 입고 있었고 머리에는 중갓을 단정하게 쓴 그에게 김도술이 입을 헤 벌리고 그의 손을 덥석 잡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아이고 유골장! 내 늦어 미안하이. 절친을 모셔오느라 말이지. 자, 여긴 한성부 좌윤 영감이시네. 인사드리게.”     

김도술의 말에 노인은 깍듯하게 예를 갖춰 최정보에게 인사를 했다. 유골장? 그동안 여러 지인들로부터 수없이 들은지라 그 이름은 익히 알고 있었다. 유골장이라면 고기 하나로 고위층의 마음을 휘어잡은 조선의 숨은 실세가 아닌가. 최정보는 당연 그가 교활하고, 사뭇 경박하며 자신이 가진 천한 재주로 돈을 좇는 자일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막상 눈앞에 나타난 유백증은 전혀 달랐다. 무엇보다 그에게선 고기 비린내가 나질 않았다. 돈도 많아 보이지 않았다. 반듯하게 허리까지 굽혀 인사하는 그에게선 메마른 나무 냄새가 났다. 지방 한적한 마을 작은 집 마당에 서 있는 늙은 대추나무 같은 사내. 봄이면 잎을 돋우고, 여름이면 꽃을 피우며 가을이면 빼곡히 열매를 품었다가 겨울이면 앙상한 모습으로 눈 속에서 버티는 옹골찬 사내.  

     

“인사드립니다. 유가 백증입니다. 누추한 제 집을 친히 찾아주시니 이 은혜 꼭 갚겠습니다.”

“은혜라니. 괜찮네.”     


혀에 착착 감기는 감언이라면 물리도록 들어온 최정보였지만, 유백증에게 그런 알랑거림은 없었다. 아니 그보다는 고기 따위에 양반이고 체면 따위를 벗어던진 체 달려드는 무리를 향한 희미한 조소가 담긴 듯한 말투였다. 참으로 방자한 거골장이 아닌가 싶었으나 최정보는 자신도 모르게 유백증을 향해 가벼운 목례를 한 후 애써 거리를 두며 한 걸음 물러났다. 한성부 좌윤이 한낱 거골장에게 맞인사를 하다니. 평소 같으면 비아냥거림을 던지고도 남았을 김도술은 본체 만 체 뭐가 그리도 바쁜지 최정보를 잡아끌고 점점 더 고기 향이 짙어지고 있는 안채로 향했다. 

‘이거야 원, 거미줄에 걸린 파리 꼴이 아닌가.’

뒤통수에 달라붙는 유골장의 진득한 시선이 느껴진 건 괜한 자격지심 때문이었을까. 하나, 이곳까지 와서 되돌아가기도 뭣한 데다 솔직히 그 맛을 모르면 사내가 아니라고 큰 소리 뻥뻥 치던 김홍중의 말이 맘에 걸리기도 해 최정보는 짐짓 억지로 끌려가는 듯 김도술을 따랐다.    

  

“아, 이 얼마만의 철립위*란 말인가!”     


*鐵笠圍_쇠 난로를 둘러싸다라는 뜻으로 조선의 양반들이 눈 내리는 음력 시월 초하룻날마다 열었던 ‘고기 먹는 날’을 지칭하던 말. 정식 명칭은 난로회


잠시 후, 김도술이 조선 제일의 명창이라도 된 듯 함성을 내질렀다. 코를 자극하는 황홀한 냄새, 까만 밤하늘로 꼬불꼬불 꼬리를 흔들며 올라가는 자그마한 불씨들과 그 주변에 둘서넛씩 둘러앉아 정신없이 젓가락을 놀리는 수많은 사내들을 본 순간. 최정보는 줄곧 자신을 쳐다보던 유백증의 시선 따윈 까맣게 잊고 말았다. 김도술이 왜 그리도 허겁지겁 달려왔는지 알 것 같았다. 


난로회였다. 그 날, 유골장의 집에서는 한성의 지체 높은 양반들이 죄다 모여 고기를 구워 먹는 난로회가 열린 것이다. 안채와 바깥채는 물론 안뜰까지, 시뻘건 숯을 가득 담긴 화로가 빼곡하게 피워져 있었고, 그 위에선 갖은양념으로 맛을 풍미를 더한 소고기들이 시뻘건 석쇠 위에서 익어가고 있었다. 고기 굽는 냄새로 가득한 그곳엔 얼마인지도 모를 사내들이 지위를 막론하고 앞 다퉈 고기를 먹고 있었는데 갓을 벗어던지고 소매를 걷어붙인 자, 두루마기를 아예 벗어버리고 저고리 차림으로 고기를 먹는 자, 심지어 바닥에 떨어진 고기를 다시 주워 허겁지겁 입 속으로 밀어 넣는 자까지. 그곳은 마치 지위와 가문, 나이에 상관없이 모두가 고기 앞에서 육식동물로 존재하는 평등의 장소였다. 남촌의 낮은 돌담 안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최정보는 껄껄 기가 차면서도 처음 보는 신기함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이보게 도술. 유골장이란 자가 이 집주인인가?”

“어? 뭐? 아! 내가 자네한테 유골장에 대해 말한 적이 없던가?”

“그렇다네. 오늘도 무작정 나를 이리로 끌고 오기만 했지 아무런 말도 안 해주지 않았나.”

“그래? 미안허이. 서둘러 오느라고. 저 자들이 이 귀한 고기들을 다 처먹기 전에 왔어야 했거든. 자네가 이해하게.”     


김도술은 이미 최정보는 안중에도 없었다. 안뜰 구석진 곳에 비어있는 화로를 발견하자마자 부리나케 달려가더니 갓을 뒤로 젖히고는 상 위에 있는 젓가락으로 고기를 집어 먹기 시작했다.    

  

“허허, 이 사람 도술. 천천히 좀...”     


절친 따윈 더 이상 필요 없어진 김도술 덕분에 뻘쭘해진 최정보가 어찌어찌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빈자리를 찾아 앉아 고기 몇 점을 먹고 있을 때였다.

      

“내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네만 기대 이상일세.” 

    

그 맛과 향에 홀려 막 새로 구워진 고기 한 점을 입 안으로 넣으려던 참이었다. 언제 왔는지 김홍중이 맑은 청주가 담긴 주발을 턱 소리가 나도록 상 위에 올려놓으며 맞은편에 앉았다.  

    

“언제... 왔는가? 내 마침 가려던 참이네.”     


최정보가 다급히 입을 다물며 젓가락을 내려놓으려 하자 김홍중이 잽싸게 손가락으로 고기를 낚아채 입 안으로 쏙 집어넣고는 중얼거렸다.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으니, 우리 고상하신 선조들께서는 어찌 그 험악한 금육의 시대를 견디셨을꼬.”

“허허, 이 사람. 그건 내 것... 여기 넉넉히 있으니 더 구워 드시게나.”

“왜? 자넨 더 안 먹겠다? 이거 왜 이러시나. 이보게 운암. 한성부 좌윤 나리도 속을 채워야 명판결을 할 수 있는 법일세. 어이! 여기 고기 한 접시 더 내오게나!”  

   

호들갑을 떨며 지나가는 여종에게 고기를 더 가져오게 한 김홍중은 차르르 소리가 나도록 고기를 구워 최정보 앞으로 밀어주며 말했다.      


“쯧쯧, 자 푸짐히 드시게. 자주 오는 기회가 아닐세.”

“나는 됐네만...”

“어서 드시라니깐. 왜 술이 없어서 그러시나? 이보게! 여기!”

“아, 아니. 됐네. 술은 무슨. 이거면 충분하네.”    

 

그제야 김홍중은 씩 웃더니 소매춤에서 꺼낸 대나무 이쑤시개로 잇새를 천천히 쑤시며 말했다. 

    

“그래, 자네 유백증은 만나 보았는가?”

“그렇다네. 인사는 나눴네.”

“쯧쯧, 그 말 뽐새로 봐선 진정 인사만 나눈 게로군. 하긴, 자네가 여기 나타난 것만으로도 놀랄 일이지. 난로회에 최정보 나으리가 출도 하시다니.”

“뭐, 이런저런 시찰을 위해 온 것이네만.”

“하하! 됐네! 그냥 아무 말 말고 고기가 드시게. 오늘이 끝나면 일 년 후에나 가능할 일이니.” 

    

마주 앉은 이가 김홍중이 아니었다면 일찍 그곳을 나왔을까? 글쎄다. 최정보는 그렇다고 말할 자신이 없었다. 고기는 기가 막혔고 유백증이 내오는 찬들이며 후식으로 나오는 떡에 식혜까지 모든 것들이 완벽했으니까. 한양 어느 곳에 그런 음식을 매일 파는 주점이 있다면 고된 한성부 생활이 조금은 위로가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까지 들게 만드는 화로가 있는 밥상이었다.   

   

“난로회는 말일세. 한성 제일의 거골장 유백증이 일 년 중 고기 맛이 제일이라는 이즈음에, 도살한 소들 중에서 가장 좋은 육질을 쏙쏙 골라내 고기 잔치를 여는 날이란 말일세. 알겠나? 지금 자네 뱃속으로 들어간 그 소고기는 나라님만 드신다는 바로 그 귀한 부위란 말이네.”     


그렇다면 이곳에 있는 자들은 고기를 취함에 있어선 임금과 동격이란 말인가? 차마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그 말이 어쩌면 김홍중이 하고 싶었던 말은 아닐까. 그제야 최정보는 자신을 사로잡은 건 비단 고기뿐만이 아니라 일반 백성은 물론 웬만한 양반들조차 꿈도 못 꾸는 이런 자리에 앉아 있다는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랬던 거다. 가진 거라고는 고기밖에 없는 유백증이 이 자리를 만든 이유. 조선을 쥐락펴락하는 권세가들만 참가할 수 있게 하여 배불리 먹이는 그의 난로회는 조선 최고의 권력가들을 위한 그의 사은회였던 것이다. 수라상보다 화려하고 노골적인 고기 잔치는 나라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는 본능적인 쾌락이었고 일단 맛을 본 자들은 절대로 빠져나가지 못할 중독성까지 지닌 맛의 족쇄였다. 김홍중에 의하면 여기에 지난 몇 년간 극심한 역병은 유백증이 베푸는 난로회의 가치를 더욱 상승시켰다고 했다. 역병으로 인해 전국적인 소고기 품귀현상이 나타나면서 내로라하는 권세가들마저도 질 좋은 소고기를 만나기가 어려워졌다는 것. 그로 인해 유백증이 지닌 힘 또한 동반 상승하게 되었다는 것이 화로구이에 술까지 잔뜩 먹은 김홍중이 벌게진 얼굴로 둥그스름해진 배를 두드리며 들려준 말이었다. 

     

“벗이여, 배부르다고 절대 먼저 일어서진 말게. 잔치가 파한 후 유백증이 특별히 마련한 기념품 증정이 있을 것이니.”

“증정품?”

“그렇다네. 기대해도 좋네.”     


입 안에서 살살 녹는 게 고기라기보다는 잘 만든 유과 같은 살덩이들로 배를 채운 최정보는 그제야 고개를 들고 집안을 살폈다. 유백증은 조용하지만 민첩하게 아수라장에 가까운 난로회를 총지휘하고 있었고, 사이사이 깔끔하게 차려입은 청년 하나를 일일이 데리고 다니며 인사시키고 있었다. 이미 배가 부른 사내들은 유백증에게 건성건성 고개만 까닥였지만 유백증은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예를 갖춰 모든 화로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리. 제 자식 놈입니다. 유가 황. 유황이라 합니다.”

“...”     


깍듯한 아비와 달라 유황이라는 젊은이는 심드렁한 얼굴로 억지 절을 하는 게 아무래도 아비의 억지스런 행동 따윈 관심이 없어 보였다. 저다지도 절실한 아비에 이다지도 관심 없는 아들이라니. 최정보의 눈에 그 부자는 기름과 물처럼 겉도는 상극으로 보였다. 

‘자식이 아비를 잡아먹을 상이로구나.’   

  

“배운 것 없고 미천하나 혹시라도 나라를 위해 요긴하게 쓰실 일이 있으시다면 언제라도 이놈을 기억해 주십시오.”     


유백증이 인사를 끝내면 하인 하나가 종이끈으로 잘 동여 맨 두툼한 종이 꾸러미를 들고 쪼르르 달려와 내밀었다. 그것이 기념품이었다. 최상급 소고기가 덩어리째 들어있는 김도술의 굵고 퉁퉁한 두 팔로 간신히 끌어안을 정도로 크고 묵직했다. 저 많은 고기가 다 어디서 왔을까? 경탄할만한 일이었다. 장정 스물은 족히 배부르게 먹일 그 엄청난 크기의 고깃덩어리야말로 십 년 넘도록 유백증이 조선 제일의 거골장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비결이었다.  

    

유백증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집구석구석까지 꼼꼼하게 훑고 있던 그때, 까만 밤하늘에서 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한겨울인데도 봄꽃처럼 보이는 눈이라니, 그건 아마도 배가 든든한 덕분일 게다. 추위 따윈 파고 들 곳 없는 기름지고 부유한 그곳에서 최정보는 어느 화공이 그린 쓸쓸한 수묵화 같은 풍경을 감상 중이었다. 

‘이곳이 조선의 어느 한 곳이라고 그 누가 믿을 것인가. 바로 저 옆에서 지금도 백성들은 쌀 한 말에 자식을 팔고 있는데. 지금 난 이곳에서 고기 몇 점에 홀려 늙은 왕거미에게 사로잡혀 있구나.’


배는 부르나 서글픈 뒤끝이 있는 고기 밥상이었다. 최정보의 뱃속을 가득 채운 건 소고기가 아니라 부끄러움과 수치심이었다. 권력의 더러운 옷자락이라도 잡아보려는 유백증과 그의 손자뻘로 보이는 무지한 젊은 아들 유황이 그날 최정보의 눈에는 지옥의 입구에 서 있는 망자로 보였다. 인생의 온갖 풍파를 온몸으로 받아낸 깡마른 노인과 이제 막 세상을 향해 첫 발을 내디딘 잘 생긴 젊은이가 맞닥뜨릴 세상. 그 세상은 결코 꽃길이 될 수 없었다. 그게 어떤 곳인지를 너무나 잘 아는 최정보에게 유황이라는 앳된 사내는 무시무시한 괴물의 입 안으로 이제 막 걸어 들어가려는 안쓰러운 또 하나의 유랑객일 뿐이었다.      




그렇게 유황을 만난 게 불과 두 해 전이었다. 그런데 유골장의 그 작은 아들이 죽었다니. 최정보는 서둘러 한성부를 나와 남촌으로 향했다. 목이 졸려 죽은 금생의 아들과, 발가벗겨진 채 죽은 준행, 그리고 유백증 둘째 아들의 급사. 최정보는 유황이 무덤에 묻히기 전, 그를 만나야 할 것 같은 강렬한 느낌이 들었다. 왜그런지는 그곳에 가보면 알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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