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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s Apr 02. 2023

햇살 속에 네가 있어

그저, 사랑만이

나의 첫 고양이 ‘애기’는 새끼고양이이던 2003년 7월 14일에 내게 와, 2018년 4월 17일에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애기가 떠난 후 4주기 무렵 시작한 글을 5주기를 앞두고 마침표를 찍는다.  

세상에 보여주려는 목적이 아닌, 내 고양이를 향한,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한 추모의식으로 시작한 이 글을 쓰면서 또 한 번의 봄을 맞이한다.      


글을 쓰는 동안 때때로 울었고, 울음 끝엔 종종 멍해졌고, 매 순간 저미듯이 심장이 쓰렸다. 그러면서 찾아온 가장 큰 변화는 이제는 애기의 사진들을 웃으며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리하여 더 잘 추억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의례는 정말로 내게 꼭 필요했던 것 같다.               




애기의 사진을 이제야 겨우 웃으며 펼쳐볼 수 있게 되었지만 내게는 또 하나의 펫로스가 예약되어 있다.


2009년 11월에 내게 온 둘째 고양이 보리의 나이가 어느덧 13살 반.

애기를 키웠을 때에 비해 반려동물 건강관리에 대한 환경이 많이 달라지기도 했고 또 애기를 예상치 못하게 잃은 트라우마도 있고 하여, 보리는 몇 달에 한 번씩 꼭 정기검진을 받게 할 만큼 노심초사하며 키우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시간은 흐르고 있음을 안다.

아주 가까운 미래에 또 한 번의 이별을 겪게 될 것을 알고 있다.      




사람의 경우 만성질환이나 말기질환 환자를 간병하는 가족이 환자의 다가올 죽음을 예측하면서, 그리고 죽음 전부터 일어나는 변화와 상실을 경험하면서 여러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를 예기애도(anticipatory grief)라 한다.      


예기애도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도 겪을 수 있다. 키우는 동물과 깊은 정서적 애착관계를 맺은 반려인이라면, 반려동물이 노령기에 접어들거나 회복불능의 질환을 앓게 되면 예기애도를 겪을 수밖에 없다.

반려동물이 아직 한창 어린 나이일 때도, 많은 반려인들은 언젠가 다가올 이별을 상상하며 문득문득 아득한 슬픔을 느낀다고들 말한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예정되어 있는 이별이란, 그리고 그 이별을 속수무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건, 참담하고 슬픈 일이다.




보리의 나이가 애기가 떠난 나이에 점차 가까워져 감을 인식할 때마다 마음속 모래시계에 가속도가 붙는 것만 같다. 욕심껏 움켜쥔 모래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만 같다.   

금쪽같이 반짝이는 보리와의 현재의 매 순간들은, 미래에 그토록 한 순간이라도 되살리고 싶을 과거이리라. 애기가 살아있을 때 그러했듯이.     


보리마저 떠나고 나면 나는 완전히 무너져 내릴 것이다.

보리마저 떠나고 나도 나는 멀쩡히 살아갈 것이다.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날 것이다. 곧.

그게 너무 무섭고, 또 무섭다.      


하지만 누군들 안 그럴까. 이별이 예정되어 있고 그걸 알면서도 멀쩡히 사는 것. 유한한 삶을 사는 지구상 생명체라면 누군들 피할 수 없는 운명. 누군가와의 이별들을 사는 동안 겪다가, 마침내 자신의 삶과도 이별하는 것.  

우리는 누구나 예기애도 상태에 놓여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고양이 한 마리 죽은 것 가지고 언제까지 매달릴 거냐고?

내 귓가엔 누군가의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늘 맴도는 듯하다. 내게 이 세상은 아무래도 ‘적’의 이미지인가 보다. 늘 혼자 창을 들고 행여나 적으로부터 공격받을까 두려워하며 보초를 서고 있는 기분이다. 사는 내내.     

 

그렇지만 단호하고 당당하게, 두 눈 똑바로 부릅뜨고 대답할 것이다.

내 숨이 멈추기 직전까지 나의 고양이를 그리워할 거라고. 마음속 가장 안쪽에 있는 방에 숨겨두고 있을 뿐, 내 반려동물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은 생생하고 온전하기를 멈추지 않을 거라고.

이게 나라는 인간이라고. 비록 못나고 초라한 삶을 살아왔지만, 내가 선택한 생명을 향한 애착과 사랑으로 세포 하나하나까지 가득 채워진, 이런 내가 나라고.     


나의 고양이는 어쩌면, 사랑이라는 아주 멋진 무기를 내게 선사했다. 내가 휘두를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는 걸 보면.

그것만이 나를 생존하게 하는 걸 보면.                




다시 봄.

다시, 꽃과 햇살이 찬란한 계절.

찬란한 봄볕 속에 꽃무더기처럼 낮잠을 자고 있을 내 작은 아기. 나의 고양이, 애기.  

네가 떠난 계절에, 햇살 속에서 오늘도 너를 만난다.

오늘도 너를 사랑한다.


      

2015. 봄.


2003.7.14. 네가 내게 온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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