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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s Oct 04. 2023

가장 예쁜 순간은 사진에 찍히지 않는다

시대에 뒤처진 자의 변명일지라도

인스타, 유튜브, 블로그, 틱톡... 사진과 영상으로 표현하고 어필하는 것이 대세가 된 시대에는, 키우는 동물들도 콘텐츠 소재가 된다. 동물들의 귀엽고 재미있는 모습은 남들에게 보여주고 '좋아요'를 받기에 참 적절하고도 손쉬운 소비재이다.  


나 또한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면서 보리의 사진을 가끔 올린다. 

하지만 '일상=사진 찍기=보여주기'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젊은 세대와는 확실히 비교가 많이 된다. 나는 '일상->사진 찍기'까지 많은 장벽이 있고, '사진 찍기->보여주기' 까지도 많은 장벽이 있어, 이 셋이 동시에 이루어지지가 않기 때문이다. 키오스크 앞에서 얼음 상태가 되는 노인들처럼, 인스타그램 등의 SNS들은 내게 어색하고 이물스러운 문물이다.    

이렇게 뒤떨어져가는 건가 싶지만, 꼭 세대 문제, 나이 문제라기보다는 개인의 성향과 현재의 삶의 상태도 함께 작용하는 것 같다. 싸이월드 시절의 젊은 나였다면 인스타그램에도 금세 적응했을 테니까. 보여줄 것이 아주 많은 삶을 살고 있었더라면 더 많은 것을 자랑하고 싶었을 테니까. 


지금의 나는 나에 대한 뭔가를 남기고 싶지도, 남긴 것을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도 않은 삶을 살고 있다. 

유일한 예외가 보리라는 존재다. 남들에게 보여주려는 목적이 아님에도 보리의 사진만큼은 휴대폰 안을 가득 메우고 있다.  


그러나 찍는 순간마다 안다. 이건 그냥 덧없는 사진일 뿐이야. 

보리의 가장 예쁜 순간은 결코 사진에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2023. 9월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공연을 보러 갔을 때 비슷한 종류의 딜레마를 경험하곤 한다.

지금 이 순간을 내 휴대폰에 소유하고 싶은 '욕망'과,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담는 건 불가능하기에 그저 내 눈과 귀와 심장으로 순간들을 흠뻑 향유하자 싶은 '내려놓음' 사이에서 손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갈등한다.

내 경우엔 찍는 걸 포기했을 때 덜 후회했다. 사진이나 영상을 찍느라 놓친 찰나들에 대해 더 후회가 됐다. 


기록은 기억의 도구이긴 하지만, 동시에 기억을 왜곡시키게 마련이다. 

죽은 고양이 애기를 회상할 수 있는 도구가 애기의 수천 장의 사진이긴 하나, 추억을 완성시키는 건 정작 사진에는 찍히지 못한 그 모든 순간의 숨결, 소리, 감각, 느낌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살아생전 찍은 수천 장의 사진들 중 단 한 장도 애기는 아니다. 진짜 기억은 내 안에만 있기 때문에.   


보리의 사진들 중에도 마음에 드는 사진은 한 장도 없다. 있을 수 없다. 

이 생명의 사랑스러움을 담아낼 수 있는 인간의 문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2023. 10월


보리는 내가 부르는 목소리에 제 두 눈을 힘주어 까암빡 감으며 대답할 때 가장 예쁘다. 그럴 때면 윙크를 잘못 배운 사람처럼 한쪽 눈이 어설피 찌그러지고, '헹' 하는 목소리엔 칭얼거림이 잔뜩 묻어있다. 


보리는 아침에 일어난 나를 걸음걸음마다 발 밑에서 차일 듯이 바싹 쫓아다니며 고개를 한껏 들어 내 얼굴을 쳐다보고 '와아? 와아?' 하는 특유의 목소리로 울 때 가장 예쁘다. 그럴 때면 새끼의 요구에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어미 동물처럼 나는 분주한 마음으로 서둘러 간식을 꺼낸다.  


보리는 품 안에 폭 안겨 그릉거리다가 자꾸자꾸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을 맞출 때 가장 예쁘다. 마치 '거기에 있는 거지?'라고 확인하듯이, 자꾸, 자꾸, 거듭, 거듭 내 눈을 쳐다보는 짐승을 내려다볼 때마다, 뭉클한 사랑을 심장 가득 느낀다.  


보리는 내가 부직포 밀대에 부직포를 갈아 끼우기 위해 쪼그리고 앉았을 때 가까이 다가와 자기 몸을 비비다 별안간 발라당 누우며 나를 쳐다볼 때 가장 예쁘다. 부직포 말고 자길 보라는 듯이. 그럴 때마다 보리의 귀여운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재간이 없다. 


보리는 하품을 할 때 마치 인간이 일부러 '귀여운 척'을 하듯이, 나 들으라는 듯이, '하아아앙' 하고 소리를 낼 때 가장 예쁘다. 그럴 때마다 보리에게 물어본다. 오구오구, 이런 건 어디에서 배웠어? 


보리는 또

...


2023. 9월




그 무엇으로도 영원히 담을 수 없는 너를 기억하기 위해, 내 온몸의 감각이 카메라이자 영상기기가 되길 원해. 

이 아깝고 소중한 순간들이 내 몸의 세포 하나하나에 각인되길 원해. 


그 무엇으로도 출력할 수 없는 사랑의 장면들이 내 삶의 전재산이 되길 원해. 


2023.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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