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있을 때 우린 두려울 것이 없었다.
커뮤니티는 기본적으로 관계(Relationship)와 활동(Activity)이 적절한 균형을 가져야 한다. 관계에만 치중할 경우 동아리 수준에서 그치고, 활동에만 집중할 경우엔 일이 되어 회사처럼 되어버린다.
이 균형을 어떻게 맞춰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작은 경험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것을 공적 영역에서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에 대해서 다양한 시도를 했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소셜 어벤저스’ 프로그램이다.
원래는 '시민역량강화사업'이었으나, 이름만으로도 노잼이어서 마블코믹스의 '어벤저스'를 모티브로 하여 사회를 변화시킬 시민 영웅을 훈련시키는 컨셉으로 기획했다.
이 프로그램은 크게 두 분류로 나뉘고 각각 다섯 가지의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있었다.
하나는 변화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다섯 가지 공동체 교육 프로그램으로 마을조사, 마을미디어, 마을홍보, 마을의사결정, 공동체학습 으로 이루어졌었고,
다른 분류는 공동체 활동가들의 '의미있는 작당 모임 사업'으로 청년공동체 청년고리, 소셜공간 디자인학교, 마을 문화마당, 사람도서관, 리빙랩 프로젝트로 이루어졌었다.
실제로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시민들에게는 어벤저스 영웅임을 증명하는 회원카드를 발급해줬는데, 일반적인 교육 수료증보다 더 효과적이었고 재미있어들 했다. 개인적으로는 참여자들을 큐알코드가 찍힌 카드를 통해 실시간으로 현황을 파악하고, 향후 네트워킹을 하기 위함이었다.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지역에서는 '사람'이 가장 큰 자원이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 내가 가장 중점을 두었던 것은 청년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었다.
제목에서처럼 10만까지는 오버고, 청년활동가를 천명 정도는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당시 관에서 지원하는 대부분의 프로젝트가 공동체를 만들라고 세금을 지원하고 끝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나는 모든 프로젝트를 단순 예산 지원이 아니라,
직접 함께 동거동락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같이 기획하고 실행까지 해나가겠다는 과도한(?) 열정이 있었다.
벌집 3.0을 운영하던 친구들을 중심으로 그동안 지역에서 결성된 크고 작은 청년들의 모임을 함께 전수 조사했다. 40여 개의 크고 작은 청년공동체를 발굴했고, 그중에서 16개의 단체를 한자리에 모아 함께 연합체를 구성하게 되었는데 청년과 청년, 그리고 청년과 사회를 이어준다는 의미로 ‘청년고리’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 당시 유행했던, '쇼미 더 머니'에서 Bobby가 부른 '연결고리'가 우리의 팀워크를 잘 다져줬다.
"너와! 나의! 연결! 고리! 이건! 우리! 안의! 소리!" 피스....죄송)
그리고 세 가지 방향으로 사업을 진행했다.
(수십개의 프로젝트와 커뮤니티가 돌아갔지만, 3개를 중점적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단체들 간의 활동이나 청년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공유하는 개방형 온라인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3개월 만에 1,600여 명이 가입할 정도로 그 수요가 높았다. 온라인에서는 주로 단순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청년들의 모임이 이루어지도록 만들었고, 오프라인에서는 제대로 된 정보가 교환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을 했다.
두 번째로는 온라인으로 연결된 청년들이 직접 오프라인에서 만나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것이었다. 처음으로 청년들이 직접 본인들이 처한 문제에 대한 '말'을 시작한다는 뜻에서 '청춘옹알이'라는 컨셉으로 컨퍼런스와 오픈테이블을 개최했다. 우리는 수십 번 TEDx를 개최한 노하우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류의 컨퍼런스를 기획부터 실행하기 아주 쉽게 할 수 있었다. 지역에서 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청년들이 한자리 모여,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에너지가 발산되었다.
세 번째로 보다 밀도있고 정기적인 소통을 위해, 우리가 선택한 것은 '로컬매거진'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나이를 떠나 생각보다 온라인 소통에는 한계가 많았고, 온라인으로 만들어진 에너지를 오프라인에서 구현하는 것에 한계가 있어서 일회성 행사가 아닌, 밀도있는 소통을 할 수 있는 채널을 하나 더 구축하기로 한 것이다. 매거진은 도구였고, 이 도구를 통해 보다 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직접적으로 만날 수 있었다.
우리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정보의 제약을 가진) 지역 청년들에게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한다는 의미로 ‘보라’는 충청도 방언을 차용해 '보슈(BOSHU)'라는 로컬 매거진을 만들었다. 대전에는 '타슈'라는 공용자전거가 있었기 때문에 쉽게 바이럴되기 쉬었다.
총 네 차례에 걸쳐 2,000여 군데에 배포하면서 온라인으로 충분히 나누기 어려웠던 주제에 관하여 밀도 있고 심층적인 소통을 할 수 있었다.
이후 '보슈'팀과 '청년고리'에서 리서치를 담당했던 친구들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대전 청년 보고서’를 출간했다.
우리는 거의 두달간 인포그래픽에 관한 스터디를 했고, 일년에 한번씩 2회에 걸쳐 이 보고서를 출간했다. 공무원이나 정치인들이 청년들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에 확실하고 보기 쉬운 인포그래픽으로 쉽게 만들어내는 게 목표였다.
이전에는 청년 관련 자료가 없기도 없을뿐더러, 설령 있다 하더라도 이해하기가 어려운 통계와 용역보고서 위주였는데, 인보그래픽으로 만들어진 잡지같은 보고서를 통해 많은 곳에서 우리 자료를 차용하기 시작하면서 대전의 청년문제에 대한 공감도가 점점 확산되기 시작했다.
누가 어떻게 가져다 쓰던, 출처를 표기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공감대를 확산하는 것 자체가 목표였다.
이미 지난 수개월동안 보슈 매거진을 통해 배포처를 확보해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보고서의 배포도 한결 수월했다. 비슷한 또래의 청년들도 잡지처럼 카페나 미용실에서 이 보고서를 무심코 읽으면서 같은 청년문제에 공감하고 인지하기 시작했다.
'청년고리'는 16년부터 비영리 민간사회단체가 되어 독립적이고 자생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이후 만들어진 '대전 청년 정책네트워크'에서도 다양한 활동을 하며, 지역청년들의 현안을 알리고 개선하기 위한 거버넌스 구축에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보슈'는 최근 아이덴티티를 젠더 이슈로 바꾸었다고 들었는데, 이 또한 지역에서 아주 중요한 시도라고 생각한다.
'소셜 어벤저스 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하게 진행했던 사업 중에 '리빙랩 프로젝트' 가 있는데, 이 또한 최근 진행된 행정안전부의 '주민 체감형 디지털 사회혁신 활성화사업'의 대표사업으로 소개되었다.
(이것은 다음편에 다루고자 한다.)
2년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함께 했던 친구들과 정말 즐거운 추억들을 많이 만들었고, 무엇보다도 확실히 지역에서 다양한 시도와 흐름이 생기고 있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나는 이 친구들이 하고 싶은 프로젝트를 제대로 실천할 수 있도록,
사업적으로는 인큐베이팅하고, 관계적으로는 퍼실리테이팅했다.
도움의 형태는 달랐지만, 그래도 '작지만 의미있는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거창한 성공이 아니라 작은 성취감이었고,
그 작은 성취감의 반복이야말로,
앞으로 험난한 인생을 살아가는데 즐거운 추억으로 자리매김되어,
삶을 버텨내는 근육이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이 친구들과 함께 했던 추억 덕분에 큰 힘을 얻고 있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