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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영환 Aug 28. 2018

⑥ 한 '청년'을 키우는 데에도 온 마을이 필요하다.

새로운 기회 그리고 마을공동체

그동안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들과 아티언스 페스티벌 과 같은 프로젝트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던 와중에 2013년에 들어서면서  '공익적 시민활동을 지원하는' 시민단체와 공무원 워크샵을 함께 기획할 기회가 생겼다. 


대전시는 전국에서 최초로 사회적자본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고, ‘사회적자본 키우기 선도 도시’를 정책 슬로건으로 내세워 사회적 경제와 마을공동체를 아우르는 정책을 운영할 계획이었다.

당시에는 '사회적자본'이라는 말이 생소했기 때문에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을 최소화하면서 공무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했고, 나는 TED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운영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요청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나는 공무원 교육에 부정적이었다.

그동안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강의(특히, 80여명의 중고등 교장선생님들 앞에서의 강의 이후로, 한동안 강의를 나가지 않았다)의 선입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을활동가분들이 현장 코디네이터로 함께 해주셨고, 담당부서 공무원분들이 직접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호흡을 맞춰나가면서 조금씩 오해가 풀리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1,000명이 넘는 공무원들과 소통할 수 있었고, 300여 명의 공무원들과 세 차례나 다 같이 모여 원탁토론을 하면서 아주 가까이에서 함께 고민을 나눌 수 있었다. 이후에는 보다 더 긴밀하게 주민들의 곁에서 일하고 있는 대전시 전체 77개의 동장들과 수차례 걸친 정책 워크숍을 진행해 나가면서, 현장의 열정 있는 공무원들을 새롭게 만날 수 있었다.
공무원에 대한 편견이 깨지고 오히려 공직사회의 생태계와 그 안의 다양한 이면을 이해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1,000여명의 공무원들과 '사회적자본'에 관한 정책 워크숍을 함께 했다 

 

몇 개월 뒤, 이 경험 덕분에 나는 용기를 갖고 대전광역시 사회적자본지원센터의 사업지원팀장이 되어,

3년 동안 마을 및 청년 공동체와 공유경제, 그리고 도시재생 업무를 맡았다.

수많은 공무원들과 선배 시민사회활동가들에게 어떻게 주민들에게 다가가고, 무엇이 실제로 주민을 위한 것이며, 그들과 정말로 함께 일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주 가까이에서 생생하게 배울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나에게 힘이 된 건 마을의 주민들이었다.

주민분들은 나를 언제나 '새신랑' 같다며 이뻐해 주셨고, 나는 그렇게 받은 고마움을 보답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수준에서 최선을 다했다. 덕분에, 센터 식구들과 함께 3년이라는 시간 동안 480여 개의 공동체를 발굴하고 5,800여 명의 시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말이 6천 명이지 정말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돌아다녔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순간순간들은 지금 떠올려보아도 참 따뜻하고 감사했다. 

나는 '마을'에서 태어나 자란 세대라기보다는,
랜선으로 '공동체'를 경험한 사람에 더 가까웠지만,
마을(도시) 안에서 무엇으로 사람들이 연결되고,
공동체를 통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주민들 속에서 배울 수 있었다.  

3년동안 480여개의 공동체와 5,800여명의 주민들과 함께 했다.


현실에서 480개의 공동체를 발굴하고 만나기 위해서는, 밤에는 이런 행정작업들이 끝도 없었다.


마을공동체, 공유경제, 도시재생 이라는 세가지 사업은 이름은 다랐지만, 그 본질은 결국 비슷했다.




물론, 아쉬운 점도 몇 가지 있다.

첫째는 우리가 보통 행정이라 부르는 영역에 속한 사람들(공무원 및 정치인)과 일반시민들 사이의 언어는 굉장히 다른데(처음엔 이 둘 사이의 언어가 다르다는 걸 인지하는데만 일 년이 걸렸다), 이를 번역하고 통역하는 게 나의 일이었지만, 나는 행정(심지어, 정치의 언어는 더 복잡)의 언어가 일반적인 사람들의 상식과 맞지 않기 때문에 이것이 틀렸고 개선되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너무 많은 감정과 에너지를 썼었다.

다름을 인정하고, 그 맥락 속에서 각기 다른 두 가지 언어로 소통해도 서로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했어야 하는 게 아니었나 하는 아쉬움이 든다.


두 번째는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정책을 바라보지 못하고 단기적인 성과에 치중했다는 것이다.

당시에 담당했던 마을공동체, 공유경제, 도시재생이라는 세 가지 정책 아젠다를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구현했어야 했다. 마을공동체로 하여금 도시의 활력과 따뜻함을 불어넣어주고, 공유경제를 통해 건강한 선순환 체계를 가지며, 도시 안에서 우리 삶을 재구성하는 도시재생으로, 보다 거시적이고 린(Lean)하게 접근했어야 했다.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었지만, 회계연도 안에서 일 년마다 성과를 요구하는 행정시스템의 관성을 극복할 용기가 없었다. 각 개별 사업의 이해관계가 너무 복잡했고, 사업단위마다 담당부서가 달라 나의 역량으로는 극복할 수 없다고 지레 겁을 먹고 소극적으로 대응했던 순간들이 후회가 된다.


마지막으로는 나에게 쏟아지던 '애정(자기 주변에 있는 사물 또는 사람에 대한 친근감을 바탕으로 이들과 밀접하게 관련되었다고 느끼는 정서)'을 솔직하게 마주하지 못했다.

나를 둘러싼 정치인들. 공무원들. 동료들에게 '공감'보다는 '결과'로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 것 같다.

주민들에게는 인간미 있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올바른 청년으로 보이고 싶어 했다.

애정 어린 조언과 관심을 의심했고, 나의 프레임으로 해석하고 똑똑한 척했다.


밀레니얼  세대인 내가 도시안에서 '물리적인 것이 아닌, 정서적인 마을'을 인식하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고, 그 안의 '공동체'라는 것을 '사람과 사람이 아닌 정책과 제도로 만들어가야 하는 현실'에서 늘 어색하고 조급해했다.


그 와중에, 더 많은 여유와 애교를 좀 부려볼 걸 하는 소심한 아쉬움이 남는다.


결국, 한 '청년'을 키우는 데에도 온 마을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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