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아티스트가 되려고 했다.
엊그제,
하필이면 내가 대전에 갈 때, 태풍 솔릭이 경로를 바꿔 대전 지역을 관통한다는 기상특보를 들었다. 서울역에서 엄청난 비바람을 뚫고 걱정 어린 마음으로 기차에 올랐다.
하지만 대전역에 내리는 순간, 정말 너무나도 평화로운 날씨와 산들바람. 그리고 잠자리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이 정도로 아무것도 없는 조용한 동네에서, 6년 전쯤 아주 작은 돌멩이 하나를 던져 본 이야기다.
벌집 2.0이 시작되고 1년쯤 뒤에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기획할 기회가 생겼다.
대전에는 카이스트와 대덕연구단지 등 다양한 과학기술 자원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러한 특성을 반영해 예술과 과학을 융합한 프로젝트였다.
우리는 이 페스티벌에서 가장 중요한 개막식을 맡았다. 나는 노네임을 통해서 그동안 왕래하던 다양한 아티스트들과 함께 예술적 감수성을 공유하고 있었고, 한동안 홍대에서 지내며 사운드 디자인도 배우고, VJ로 클럽에서 공연할 기회를 갖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벌집에는 영상기술을 잘 다루는 친구와 다양한 기술에 능통한 메이커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 셋을 주축으로 벌집의 모든 멤버들과 자원봉사자들이 달라붙어 함께 준비해 나갔다.
우리는 예술과 과학의 융합인 만큼,
이 프로젝트에 최대한 다양한 기술들을 접목시키고 그 안에서 모두가 신나게 락페스티벌처럼 즐길 수 있도록 기획했다.
파이널 공연은 서울에서 활동하며 인연이 된 '이디오테잎(IDIOTAPE)'이라는 일렉트로닉 밴드와 협업을 했다.
우리가 활용할 기술들과 미디어아트에 관한 내용을 프로젝트 홈페이지에 소개했다.
우리의 융복합 프로젝트에는 세 가지 포인트가 있었다.
첫째는 전통적인 음악을 전자신호로 재해석하여 새로운 음악을 만드는 것이었다.
아리랑을 전통악기가 아닌 미디 컨트롤러로 연주하고, 이어서 EDM을 리믹스하여 새로운 음악을 만들었다.
이디오테잎을 선택한 이유도 그들의 드럼 비트가 사물놀이의 휘모리장단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둘째는 빛을 이용해 무대를 만들되, 무대이자 하나의 건축물, 그리고 반응하는 오브제가 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르 꼬르뷔지에'의 빛에 대한 해석에 심취되어 있었는데, 그동안 친구와 나는 연구해왔던 프로젝션 맵핑 기술을 적용하여 빛으로 무대를 만들기로 결정하고, 나는 무대 설계를. 친구는 퍼포먼스에 필요한 기술들을 개발해 나갔다.
무대 설계는 구글에서 제공하는 3D 오픈소스 툴로 설계했는데, 르 꼬르뷔지에가 그랬듯 필로티를 세우고 그 위에 모듈러를 적용하여 무대를 디자인했다.
그리고 르 꼬르뷔지에가 롱샴 성당을 시간에 따라 빛이 들어오는 각도가 변하면서 공간이 변화하도록 설계한 것에 착안하여 우리는 그 모듈러를 프레임으로 여기고 다양하게 변화하는 빛을 투과시켜 이 빛의 색과 움직임이 음악의 비트에 따라 반응하도록 했다.
우리는 예산상의 문제로 무대를 제작하는데 여러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공연하는 장소의 특성을 활용해서 그 장소에 있던 무빙쉘터가 우리 무대의 또 하나의 구조물이 되어 ‘무대 안의 무대’가 되도록 설계했다.
착시를 이용해 그 무대가 하나의 특정한 오브제가 되도록 다양한 이미지를 투과시켰는데 예를 들면 하나의 거대한 주크박스처럼 보이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선 빛을 각각 다르게 투과시키는 소재로 무대 전체를 덮어야 했는데, 예산문제와 해외에서 배송 오는 시간을 고려할 때 도저히 구현할 수가 없어서 조급해하던 찰나, 중앙시장을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찾아낸 특수 농작물 건조용 테프론 메쉬로 대체할 수 있었다.
셋째는 사람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인터렉션 기술을 적용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두 가지 기술을 적용시키기로 했다.
하나는 키넥트를 활용해 무대 위 연주자의 움직임을 무대 전체에 투영시키는 것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피지컬 컴퓨팅 요소가 들어간 인터렉티브 오브제 제품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공연에 직접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전자음으로 재해석된 아이랑이 끝나면서 EDM으로 리믹스되는 과정에서 첫곡이 ‘Raise your hands’였는데, 이 음악에 맞춰 내가 손을 흔들면 이를 키넥트가 인식하고 무대 전체에 걸쳐 확대 투영된 30m짜리 내 손이 따라 움직이도록 했다. 사람들은 눈앞에 그 거대한 손을 보고 같이 반사적으로 함께 손을 흔들었다.
우리는 개막식에 입장하는 사람들에게 'Beat Fire Fly'라는 특수 제작된 야광봉을 나눠줬는데,
이 장치에는 두 가지 특별한 기능이 있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반딧불이를 생체모방(Biomimicry)한 제품으로 처음에는 다른 패턴으로 반짝이던 수백 개의 야광봉들이 점점 하나의 패턴으로 동기화되어 동시에 반짝이게 되는 기능이었다.
실제로 반딧불이는 혼자 있을 때는 자유롭게 빛을 발산하지만 다른 무리들과 함께할 경우 수백수천 마리가 동시에 같은 박자로 빛을 반짝이는 동조현상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사람들이 다 각자 따로 입장하지만, 함께 이 페스티벌에 모여 가까워지면, 그 야광봉을 가진 사람들이 동시에 빛을 발산하면서 하나 됨을 느끼게 해주는 장치였다.
또 다른 기능은, 무대 위 드럼에 충격 감지센서를 설치하고 드럼을 칠 때마다 반경 500m에 눈에 보이지 않는 적외선을 송출해줘서 이 적외선에 반응하는 LED가 드럼을 칠 때마다 불이 번쩍하고 들어오는 기능이었다.
드러머가 쿵! 쿵! 칠 때마다 수백 개의 야광봉에서 불이 번쩍! 번쩍! 빛났다.
청각적인 반응뿐만 아니라, 시각적인 반응도 유도하는 인터렉션 장치였다.
드러머는 드럼이 부서질 정도로 빠르게 연주했고, 불빛은 빠른 템포로 휘황찬란하게 빛나서 샤이키 조명처럼 움직였다.
물론, 무리하게 욕심을 내어 제대로 구현 못한 부분들도 있었고,
한정된 시간과 예산 범위 내에서 하려다 보니 아쉬운 부분들도 있었지만, 우리를 믿고 지원해준 주최 측 관계자분들과 벌집 멤버들이 함께였기 때문에 성공리에 마무리할 수 있었다.
수백 개나 되는 야광봉을 시간 내에 완성하는 게 어려워서 멤버 모두가 달라붙어 밤늦게까지 납땜질을 하는 등 가내수공업의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런 모두의 노력 덕분에,
아래 영상과 같은 시간을 함께 누릴 수 있었다. 지금도 저 순간을 떠올리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 프로젝트를 담당했던 대전문화재단은 한국지역문화지원협의회에서 가장 창의적인 최우수 성과사업으로 선정되었고, 개인적으로도 BMW(그렇다. 요즘 그 불타는 자동차회사)의 글로벌 영 이노베이터에 선정되는 행운도 있었다.
무엇보다 아무것도 없고 조용한 도시라고 치부되던 곳에서
우리 협업의 결과물로 천명이 넘는 사람들을 동시에 들썩이도록 만드는 성취감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하기 어려운 진귀한 경험이었다.
얼굴도 모르는 많은 분들이 페이스북 메세지로 고맙다고, 고생했다고 연락을 주셨고,
대전으로 오고 나서 처음으로 이사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분도, 이제야 대전이 왜 과학의 도시인지 알게됐다는 분들도 계셨다.
지금이야 프로젝션 맵핑이나 락페가 흔하지만,
당시에 이런 다양한 미디어아트를 결합해서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기도 하고,
(이제는 무릎이 안 좋아 락페는 꿈도 못 꾸지만ㅋㅋ)
함께했던 사람들과 그때의 열정과 에너지로 무언가 더 재미있고 간지나는 것들을 꼭 다시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
[벌써 10년] ① 첫 창업, 이름 없는 공간. 노네임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