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은 털털하게
털에 대해 글을 쓴 이후로는 제모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여름의 시작쯤 글을 쓰기 시작했으니, 올여름은 털을 한 번도 밀지 않은 것이다.
그동안 나의 털들은 잘려 나가고 뽑혀 나가고를 반복했다. 하지만 올해 나의 털들은 1년을 온전히 내 몸에서 함께 했다. 이는 초등학생 이후로 처음이다. 30살이 되어서야 온전히 제모에서 해방됐다.
팔, 다리, 겨드랑이는 물론 손가락, 인중 제모까지 하지 않았다. 겨드랑이는 예전에 레이저를 받은 덕에 많이 자라지 않아 가능했고, 자외선에 취약한 나는 긴 옷을 많이 입긴 했지만 반소매 옷을 주로 입었다. 처음에는 큰 용기가 필요했지만 회사 사람들도, 친구들도 털에 대해 물어보는 이가 없었다.
서른 번째 여름은 나에게 특별한 여름이 되었다. 제모가 필수가 아닌 여름을 처음으로 살아본 것이다. 털털한 나로 살아가면서 원래 제모를 하느라 바쁜 아침 시간에 책을 읽고, 모닝 페이지를 쓰며 생산적이고 여유로운 아침을 맞이했다. 내추럴한 나의 모습과 조금 더 발전한 내 모습이 좋았다. 끝을 모르고 자랄 것 같던 털들도 적당한 길이가 되니 멈춰서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가장 긴 털들은 3cm까지 자랐지만 그 이상은 자라지 않았다. 털들이 빼곡하게 자리를 잡을수록 자존감은 올라갔다.
가끔 제모를 하고 싶은 충동이 들 때마다 무엇 때문에 하고 싶은지 되물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중요치 않다고, 진짜 내가 필요해서 하고 싶은 것인지 물었다. 매년 사던 제모기도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화장실 수납장에 고이 모셔두었다. 그동안 나는 내 자존감을 깎아 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과거 유럽으로 여행을 갔을 때 백금발의 여인의 팔에 가득한 털이 햇빛에 비쳐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그 자신감을 동경했던 것 같다. 나도 언젠가 저렇게 다닐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선 아직 그런 용기를 내기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여름을 털털하게 보내면서 내가 내 자신에게 너무 갇혀 있었구나 생각했다. 올여름 내내 나에게 털이 많다고 지적하는 사람들은 없었고, 지하철, 마트, 서울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활보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사람들의 무관심에서 오히려 자존감을 얻은 것이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 중에서도 나처럼 털이 많은 여자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고, 숨기고 있는 분들이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말 못 할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분들에게도 괜찮다고 하면서 나의 팔을 내어 보이고 싶다. 까칠하고 길게 덮인 털을 보면서 조금은 위로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 말이다.
모(毛)가 어때서, 지금의 내 모습이 좋고 괜찮다면 된 것이라고
그 자체로 아름답다고 당신은 물론 나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