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는 조금 늦게서야
빈 여백 앞에 앉았습니다.
9월도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네요.
오늘은 어떤 하루였나요?
남은 하루는 어떻게
보낼 예정이신가요?
혹시 제 편지를 기다리셨나요?:)
끼니는 잘 챙기고 계시지요?
단출하게라도 끼니는 놓치지 마시고,
어느 하루는 오롯이 당신만을 위해
맛있고 푸짐한 한상을
차리시면 좋겠습니다.
스스로의 노고를 치하하는 의미에서요.
저는 어제 사랑하는 사람의 권유로
카레를 만들었답니다.
있는 재료가 양파뿐이라서
양파 카레를 만들기로 했지요.
다른 재료도 없이 무슨 맛이냐,
싶겠지만 양파의 달짝지근함이
그 나름대로 매력적인 카레랍니다.
재료가 간단하다고 만드는 과정도
간단한 것은 아닙니다.
양파로 카레를 만들 때는
양파를 오래오래 볶아야 해요.
인내가 필요한 요리죠.
우선 양파를 얇게 채 썰고
냄비에 열심히 볶아야 해요.
오래오래.
그렇게 양파를 볶아 갈색으로 만듭니다.
보통 캐러멜 라이징이라고 하는데,
예전에 보았던 어떤 유튜버는 이 과정을
'양파의 땀을 뺀다'라고 표현하더군요.
너무 귀엽지 않나요?:)
마음에 드는 표현이에요.
갈색빛이 돌면 물과 고형카레를 넣고
조금 더 끓여주면 된답니다.
중요한 것은 양파를 오래
볶아주는 것이에요.
들어가는 재료가 많이 없는 만큼
양파로 풍부한 맛을 내기 위함입니다.
한 눈 팔지 않고 불 앞에 서서
양파의 땀을 빼기 위해
젓고 또 젓습니다.
말했듯이, 갈색이 감돌 때까지 볶으려면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려요.
20분은 넘게 저어주어야 합니다.
오래 볶아줄수록 풍미가 좋아져요.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양파를 볶다가
문득, '나 같네' 하는
생각이 스쳤어요. 뜬금없지요?
원래 깨달음은 늘 예상치 못한 곳에서
얻는 법이니까요:).
갈색빛이 날 때까지 꾸준히 저어주는
그 과정이 마치
언제 마주할지 모르는 결과를 위해
오래오래 글을 만들어내는
과정과 비슷하다고 느꼈습니다.
오래 시간과 정성을 들여
준비해야 하는 것은
비단 글쓰기만이 아닐 겁니다.
취업도 취미도 삶도.
모든 것이 약한 불에 뭉근하게
끓여지면서 완성되는 것 같아요.
오래 정성을 들일수록 그 풍미가
더 높아지는 것도 비슷합니다.
오래 정성을 들여 준비할수록
높고 멋진 곳에 도달해 있을 테니까요.
지금 겪는 모든 고생들이
더 좋은 향과 멋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더 힘이 납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양파를 볶고 있는 거예요.
더 좋은 결과를 위해서 말이죠.
까도 까도 끝이 없는 양파가 삶이라면,
양파를 볶는 과정은 우리가
삶을 대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해봅니다.
저도 오래 쓰고 오래 읽다 보면 언젠가는
제가 쓰는 글에서도 저만이 낼 수 있는
분위기와 맛을 낼 수 있겠지요.
글을 쓰다 용기를 잃을 때가 잦았는데,
양파를 볶다가 문득
용기가 얻은 날이었습니다.
당신께서도 무언가 준비하고 계신다면,
끝이 보이지 않는 길에 지쳐계신다면,
양파 카레를 해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홀로 마음에 새기는 거예요.
나만이 낼 수 있는 능력을 내기 위해
열심히 내 능력을 약한 불에서
오래 끓이는 중이다, 하고 말이죠.
아무쪼록 용기가 생기는 주말이
되시면 좋겠습니다.
생겨난 용기는 어디에든 쓰셔요.
언제나 그렇듯 굳이 큰 일에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침대에서 일어나 세수를 하러
가는 길에도 필요한 것이 용기니까요.
부디 좋은 하루가 되셨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좋은 주말이 되시기를
더불어 바라겠습니다:).
그럼 이만-.
20. 09. 25. 금. 아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