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결혼 소식을 알리다
한국 사회에서 결혼은 가족과 가족의 결합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이것이 상견례나 혹은 신랑신부가 각각 양가를 방문하였을 때 일어나는 일 정도로만 생각했다. 나는 정말 순진한 신부였던 것이다. 가족과 가족의 결합이라는 말은 결혼을 마음먹은 그 순간부터 시작되는 일이었다. 시어른들이 어떤 분이실지를 모르니 시어른들을 뵙고 인사드리는 것이 더 두려웠지, 우리 부모님은 항상 나를 믿어주셨으니 결혼도 내가 결정해서 하면 되는 일인 줄 알았다.
"엄마, 나 결혼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 그런데 요즘 사람들이 식장 잡기가 어려워서 식장부터 잡고 하나씩 한다던데?" 딸의 말에 전화 너머 엄마의 소리가 귓구멍을 때렸다. 아니 아무리 시대가 그렇다고 하지만 예비 신랑 한 번 보지도 못하고 식장 예약부터 하냐고. 그리고 결혼식을 서울에서 할 지 어디에서 할 지 정하지도 않고 덜컥 식장부터 잡으면 어떡하냐고, 내 한 마디 이후에 엄마의 열 마디가 따라왔다. 첫 번째 말씀이야 예비 신랑 정말 반대한다고 결혼 무르게 되면 무료 취소기한에 맞춰 식장 취소하면 될 일이 아닌가. 그리고 두 번째 말씀은 정말 생각지 못했다. 양 쪽의 본가가 경상도이긴 하지만, 지금은 신랑과 신부가 모두 서울권에서 생활하고 있으면 당연히 서울에서 결혼하는 게 아닌가, 엄마의 반응은 정말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이었다. 가끔 보면 딸은 엄마를, 엄마는 딸을 세상에서 제일 잘 모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중에 먼저 결혼한 선배 유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런 일은 정말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딸의 결혼식에 로망이 많은 어머니들 중에서 식장의 샹들리에 때문에 계약한 식장을 바꾼 적도 있다는 이야기도 함께. 가족이라면 당연히 서로를 제일 잘 알 것 같았는데 사실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사실이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 같기도 하다. 초반에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깨달은 것은 부모님들께도 자녀의 결혼식은 정말 중요한 행사이니만큼 꼼꼼히 물어봐야 한다는 것. 예비 사위나 며느리에 대한 대화는 당연히 충분히 해야겠지만, 결혼식에 대한 대화도 충분히 했어야 한다는 사실을 너무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지금껏 아들딸을 예쁘게 키워서 새로운 가정을 꾸릴 수 있도록 수고하신 그 노고에 대하여 부모님도 축하받을 수 있는 중요한 자리일텐데.
단순히 한국 사회는 이래, 라는 것이 아니라 '결혼식'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를 다시 재정립하면서 나와 신랑과, 부모님 혹은 시부모님과의 결혼식에 대한 대화가 조금 더 수월하게 흘러갔다. 대화를 하면 할수록 부모님도 딸의 첫 결혼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나도 다짜고짜 "나 결혼할거니까 식장부터 잡을게."라고 해 버렸으니 듣는 엄마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얘가 뭐라는 거야, 싶으셨을 거다. 그 이후로 결혼식장의 위치와 시설, 결혼식 순서, 결혼식 준비 과정 등 구체적으로 질문하기 시작했다. 양가 부모님들께서는 감사하게도 준비하는 신랑신부의 거리가 본가와 멀기 때문에 신랑과 신부의 의견에 전적으로 따르겠다고 지지해주셨다. 본격적인 결혼 준비는 양가 부모님들께 인사를 드린 후 시작하기로 했다.
그 대화가 있고 한달 후, 양가 부모님께 각각 결혼을 생각하는 사람을 소개시켜 드리는 날이 되었다. 신랑은 면접을 보든 뭘 하든 전혀 긴장하지 않는 성격인데도, 이렇게 긴장되는 날은 살면서 처음이라고 했다. 처음 뵙는 자리니만큼 예쁘고 멋있게 차려 입고, 떨리는 마음과 함께 작은 선물을 양 손에 쥐고 기차에 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