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의 로망에 대하여
결혼식을 준비하기로 마음 먹으면서 서로의 결혼식에 대한 생각을 물어봤다. 하고 싶은 결혼식이 있는지, 이것만큼은 꼭 하고 싶다던가 혹은 이것만큼은 꼭 하기 싫다던가 그런 것들이 있는지 하고 말이다. 무던한 예비 신랑은 자기는 딱히 하고 싶은게 없다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고 한다. 내가 어떤 결혼식을 원할 줄 알고 그렇게 말하는 건지. 나에 대한 신뢰가 아주 충만한 예비 신랑이다. (이러니까 나랑 결혼하겠다고 마음먹은 걸까!)
시간을 거슬러, 몇 년 전 나는 초등학교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 차 프랑스에 간 적이 있다. 친구는 중학교 때 호주에 가서 생활하다가 거기서 프랑스 남자를 만나 남자 쪽 프랑스 시골에서 결혼식을 올린다고 한다. 친구는 고맙게도 나에게도 소식을 알려주었고, K-직장인인 나는 다행히 휴가 조절이 되어서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 친구가 결혼하는 곳은 12시간의 비행으로 파리를 간 후 떼제베를 3시간 타고 님(Nimes)이라는 곳을 간 다음 거기서 택시를 타고 한두 시간 들어가야 나오는 산속 시골이었다. 현지 택시 기사마저 여기는 어디냐고 혀를 내두를 정도인 곳. 그 곳에서 고운 화장을 하고 머리에 생화 장식을 꽂은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우리 손을 부여잡으며 이 곳의 테이블 장식 하나, 마당의 자갈 하나하나 다 자기 손으로 고르고 깔았다며 신나서 재잘거렸다. 둘러보니 우리의 이름도 손수 적혀 있었고, 하나부터 열까지 손이 안 간 것이 없을 것 같은 아기자기하고 정성이 가득한 파티장이 눈에 보였다. 원래 여기 방식대로 하는 결혼식은 식사를 밤 열두시부터 해서 밤새 노는데 그렇게 못한다고 9시부터 식사를 달라고 요구했다는 신부의 귀여운 투정도 들렸다.
시청(이라고 하지만 동네 동사무소보다 더 작아보이는)이라는 곳에서 혼인 서약을 하는 장면을 다 같이 지켜본 뒤 파티장으로 갔다. 핑거푸드를 먹으면서 같이 간 친구들과 오랜만에 본 신부와 함께 수다를 떨기도 하고 스리슬쩍 서양식 파티 문화에 익숙한 것처럼 모르는 사람들에게 말도 살짝 건네보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니 어느 덧 저녁. 해가 질 무렵 하객들이 하얀 냅킨을 신나게 흔드는 그 사이로 신랑 신부가 환하게 웃으며 입장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식 시작. 우선 신랑 신부가 서로에 대한 사랑의 표현을 담았는데 얼마나 달달하던지. 그리고 신랑과 신부의 지인들이 한 명씩 나와 신랑신부를 축하하기 위한 편지를 읽는 시간과 쉬면서 대화하고 춤추는 시간이 번걸아가며 있었다. 다섯시에 시청에서부터 시작한 결혼식은 어느덧 열두시를 지나고 있었다. 프랑스의 밤샘 결혼식을 감당하기엔 여독을 이기지 못해서 신부에게 양해를 구하고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친구의 결혼식이 몇 년이 지났는데도 그 여운이 계속해서 남아있다. 결혼을 축하해주기 위해 전 세계 각지에서 프랑스 산 속 시골까지 날아온 친구들, 그 긴 시간동안 결혼이라는 기쁜 일을 다 함께 축하해주던 그 즐거운 파티 분위기, 영어와 불어, 한국어 등 친구들의 마음이 스며들어 있는 편지 낭독까지. 30분만에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해치워버리는(?) 한국의 결혼식만 보다가 이런 결혼식을 보니 정말 이것이야말로 내가 원하던 축제이자 파티가 아닌가.
다시, 이제 내가 신부가 되어 결혼식을 준비하는 시점으로 돌아와보자. 당연히 신랑에게도 프랑스식 결혼식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직접 다녀온 결혼식의 느낌이 어떠했는지 - 그 결혼식이 아직까지도 감동으로 남아있다는 것과 함께함의 기쁨까지. 그렇지만 말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우리 나라 결혼 문화가 그러하지 않다는 점과 그래서 내가 저런 결혼식을 하고 싶으면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다 발품을 팔아야 한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로망은 로망으로 남기고 일반적인(?) 결혼을 하되 그 안에서 소소히 우리만의 것들을 담아내는 결혼식을 준비하기로 했다. 이제 우리의 과제는 우리만의 것을 어떻게 녹여낼 것인가, 1년짜리 팀플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