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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창우 Mar 10. 2023

수상한 책방 55.

오만한 인간


 가수 윤하가 부른 노래 중 몇 곡은 내가 자주 듣는 노래다. <<사건의 지평선>>을 들으며 마치 내 이야기를 털어놓는 기분에 사로잡혔던 때도 여름이었다.


 사랑하는 데 준비가 필요할까? 남들은 그렇게들 말한다. 갑자기 일어나는 마음이란 없다고? 내 마음 어딘가에 웅크리고 있다가 튀어나온다?


 그래, 그런 것 같기는 하다. 이 노래를 들으며 떠올려지는 입술이 너무도 냉정하고 높낮이 없는 목소리를 만들어낸다. 그 음절이 자동 생성된다.


   내가 너를 사랑하나 봐.

   그런 말을 쉽게 하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을 아는데 안 들은 거로 할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길을 아래로 돌려야 했다. 귓가에 들려오는 우주 목소리가 있고 어딘지도 모르는 방향으로 걸어가는 내가 있다.


이재인은  무언가와 싸우는 것 같다고 할까. 무언가는 스스로 알아낼 일이지.
고르디우스 매듭은 평생 붙들고 있어도 풀리지 않아.


 이 순간이 떠올라 사고 정지 상태로 재현 목소리가 들리는 휴대폰을 붙들고 있는 게 힘들었지만, 통화를 끊고 나서 몇 날을 분노하고 있다. 무엇에 느끼는 감정인지 모를 순수한 분노다.


 <<사건의 지평선>>을 들으면 어김없이 튀어나오는 이런 순수한 분노가 담긴 순간은 내 의지가 통하지 않는다. 의지가 먹히지 않는 상태에서 사방으로 출렁이는 마음은 방향을 잃게 마련이다.


 다행스럽게도 엉뚱한 말을 즉흥적으로 내뱉지 않고 재현이 가고 있는 여행길 이야기를 들으며 긴 시간 대화를 나눈다. 다음을 기약하는 마음으로 안부를 전하고 순간으로 이어지는 이런 과학기술 진보까지 너스레를 떤 날이다.


 내 인생을 두고 상업적 타협은 하기 싫다는 말은 하지 말아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목적이 돈 벌기는 아니라 하는 말에 재현에 반응은 정윤과는 달랐다. 이재인은 그렇게 살아도 될 거라고 말해주는 데 지금 생각해도 잠시 울컥해진다.


 사실은 그에게 우주에 대해 묻고 싶었다. 근질거리는 입술을 지그시 누르며 무사히 끝난 대화이긴 하다. 우주 연락처도 알고 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얼마나 멍청한 짓인가. 거부한 대상을 두고 연연하는 나.


 처량한 감정 탐구에 푹 빠져있는 이재인은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에서 다아시를 우주에게 대입한다. 우주를 처음 만났을 때 그 눈빛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다. 사람들은 이런 것을 짝사랑이라고 하던데  언어로는 외사랑이다. 내 마음을 담은 외로운 사랑.


 오만한 모습만으로 존재감이 드러나는 사람이 우주다. 굳이 제목을 붙여 본다면 첫사랑. 내 마음을 빼앗긴 첫 만남에서부터 시작된 운명. 그런 대상이다. 이상하게도 재현이 소식을 전하고 나서야 첫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다는 진부한 이야기에 주인공이 되어 버린 나를 본다.  


 저녁 기운은 여름을 지나쳐 앞서간다. 계절 감각은 길 가 나무가 먼저 일깨워준다. 초록잎으로 더 무성해지기보다는 추락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책방 공모사업으로 정신없이 지나가는 여름이 어느새 가을채비를 재촉한다. 나는 가을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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