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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창우 Mar 09. 2023

수상한 책방 54.

가지 않은 길

 책은 언제나 벗으로 남아서 너를 지켜주거든.


 엄마가 생일 선물로 주는 변함없는 한 가지는 책이다. 특별한 날이면 책을 선물해 준다. 나는 그것이 선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지나왔다. 그런 마음을 우리들이 알거나 말거나 엄마는 축하카드 대신 책 속지에 글을 써서 주셨다.


 엄마가 책 읽기를 하지 않는다면 이상할 정도로 내게는 언제나 책을 읽는 엄마 모습이 더 많이 남아있다. 그런 모습이 내 삶에 적잖이 영향력을 주었다. 늘 내 주변은 책이 가득했고 늦게까지 책을 읽는 엄마가 사물처럼 존재했다.


   여기 맞죠? 맞는구나. 안녕하세요.


 검은 가방을 둘러 맨 청년이 웃는다. 뜻밖에 방문객이 전해주는 따뜻한 기운에 조금 놀란다.


   생각보다 빠른 대요?

   촬영으로 미팅 있어서 나왔다가 지나던 길입니다.

   반가워라. 점심은 해결했어요?

   그럼요. 책방이 무척 예뻐요. 소박하고 아기자기하네요. 멋지다.

   고마운 얘기네요. 커피 내리는 중인데. 책방에 아이스커피는 어렵고요.

   저도 아이스커피 안 마셔요.


 첫 번째 공통점 하나. 따뜻한 커피를 마신다. 우리는 통성명을 하고 책이야기로 냉기에 금방 식어버린 커피를 마신다. 두 번째 공통점은 문학책을 주로 읽는다. 세 번째로 영화를 좋아한다. 오랫동안 만나온 사람처럼 우리는 신나게 웃고 떠들며 시간을 보낸다.


 말 낮추라는 그는 남궁 씨다. 남궁 문. 드문 성씨에 외자 이름이 어쩐지 잘 어울린다. 법학도라 해서 가진 편견을 발견한 날이기도 하다. 상상력을 발휘할까 싶었던 그는 영화감독이라는 수식이 더 어울리는 사람이다.


 사적인 이야기를 나눌 상황은 아니지만 그가 새롭게 발견한 길이 잘 열리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단편영화 공모 준비 중이라면서 영화 제작 이야기를 할 때면 두 눈에서 빛이 난다.


   재인 씨는 오래된 영화 좋아해요?

   무성영화부터 흑백영화까지도.

   그렇다면 재인 씨도 나처럼 현실도피자네요.

   그게 그렇게 연결된다고요?

   미래에 눈을 돌리는 사람은 지구영웅을 찾죠.

   호칭이 걸리적거리는데 감독씨라 할까요? 문 씨라고 할까요?


 그는 활짝 웃으며 문 씨가 좋겠다고 한다. 더 좋은 것은 높임말은 빼자고 하지만 내가 잘 안 되는 부분이다. 안전거리라고 할까. 내게 높임말은 적당하게 벌리는 흔들리지 않는 감정에 필요한 안전한 거리감이니까. 문아, 문이. 다 안 어울린다. 열려라 문?


   문 씨는 이번으로 끝나는 영화촬영인가요?

   그러려고 했는데 내가 정말 미쳐가고 있나 봐요.

   지난 마을영화제에 나온 김감독이 말한 대로네요.

   내년에 복학하려고 생각했는데 길어질 것 같아요.

   영화 보는 것과 만드는 것은 정말 다르겠죠?

   다르죠. 영화 보는 것은 편집된 결과물이고 영화 촬영은 가는 길이 달라요.

   마음먹기는 오래전인가 봐요?

   부모님 말씀을 잘 따르는 게 자연스러웠던 나이를 지나고 보니 내가 없었어요. 법학은 재미도 없고 무엇보다 감흥이 없는 분야였어요.

   갈 길을 빨리 알아차리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재인 씨는 철학 전공자라고 들었어요.

   십 대에 잽싸게 마음을 바꾸었는데도 대학에서 얻은 게 별로 없더라고요. 졸업장 받은 결과만 남았네요.

   와, 다들 비슷하게 지나는군요.

   이 나라에서 별 거 있나요?

   책방으로 사업까지 하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니죠.


 문 씨와 보내는 동안 책방 모든 사물이 살아 움직이는 순간을 누린다. 유쾌한 대화를 나누고 그는 손을 흔들며 한마디 남기고 떠난다.


   재인 씨도 나만큼 구닥다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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