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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창우 Mar 17. 2023

수상한 책방 56.

환상통

 장맛비라고 해야 하는지 가을을 재촉하는 자연의 몸부림인지 모를 비가 며칠 동안 계속이다. 비가 오는 날은 역시 로맨스 소설이 제격이다. 결말이 행복할 수 없는 구조의 <첫사랑>이란 제목의 소설과 그 주제가 깊이 박힌 작품들을 굳이 골라 읽는 중이다.    


 작품 제목을 첫사랑으로 쓸 수밖에 없는, 첫사랑만 줄 수 있는 느낌이기에 그 제목으로 발표하겠구나. 투르게네프 작품 <<첫사랑>>과 사무엘 베케트가 쓴 <<첫사랑>>을 읽으면 그 안에 스민 감정이나 정서는 아주 다르다. 괴테 작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은 원서로 읽어보고 싶은 욕망만 키운다.  


 문학은 작가가 살고 있던 공간과 시대 배경에 따라서 다르게 읽히나 보다. 첫사랑이라는 말처럼 감정도 개인마다 다르게 기억되고 있거나 윤색하거나. 아무튼 비슷한 주제에 책을 읽을 때마다  그 감정은 현재 내 마음에 비추어 다가온다. 다른 누군가를 비껴가면서 드러나기도 하는.    


 이제야 그 감정이 첫사랑이라는 범주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우주가 먼저 떠오르기보다는 재현을 떠올리면 그림자처럼 우주라는 존재가 슬그머니 드러난다. 여행길에 보내주는 재현이 소식을 받고부터 우주가 등장한다. 마른 감정선이 다시 꿈틀댄다.    


 사랑해. 한 순간 내뱉은 세 글자, 새파랗게 놓인 순간은 세기를 넘어 이어지는 감정선이다. 결과적으로 실패라거나 실연 이후에는 적용하지 못할 법칙들이 생겨난다. 문학이나 영화에서 극적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대체로 현실과 맞물릴 때 비극으로 끝나기 마련이다.        

   

 내 부모에게도 첫사랑은 있지 않을까. 들어본 적 없지만 궁금해진다. 아빠 이야기는 듣지 못하겠지만 엄마에게는 묻게 될 날이 올 것 같다. 안부 전화에 추석 명절쯤 귀국한다는 언니와 같이 책방으로 온다고 한다. 여행 삼아 오겠다며 근처 숙박 시설을 챙겨두라고.


 부모의 첫사랑 그 비밀을 품고 2세 대에서 마주치는 사랑. 내가 좋아하는 작가에 포함되는 설흔. <<세 번째 사랑의 법칙>>을 가볍게 읽는다. 십 대에 이런 책을 읽어야 했다. 별로 달라질 것은 없지만, 이 책 어디에서도 달달한 사랑 느낌은 거의 없다.


 아마도 첫사랑은 사람들이 품고 있는 바람을 가득 담아둔 마음이었나 보다. 여전히 첫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고 마치 이루어지면 망가질 수 있다는 전제가 마련되어 있는 단어. 지나와 생각해 볼 때 달콤하다기보다는 아린 마음이 더 크기에.


 어쨌거나 고전이라는 작품들에서 지혜를 배울 기회가 있기나 할까 싶은 현실에서 아등바등하지도 않고 살아나고 있으니 그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그런데도 책 한 권 팔 가능성이 없는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은 왜 이리도 넘치는지. 주은 씨와 기획하고 있는 웹진 만들기로 활력이 생기고 있지만 바쁘기만 하다.


 현재 나를 기운 나게 하는 활기와는 별개로 그동안 가진 마음에서 통증이 일어난다. 첫사랑이란 말을 내뱉는 순간부터 결국, 내가 만든 환상에서 시작되는 아픔이 이렇게 쉼 없이 내리는 비 오는 밤이면 무턱대고 나를 들이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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