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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창우 Mar 19. 2023

수상한 책방 57.

못난 사람


   책방올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어요.

   무슨?

   영화 한 편 찍어야겠다는.

   여기에서요?

   네.

   뭐, 그렇게까지야.

   뭐든 앵글로 맞춰져요. 공간도 사물도 사람도. 거의 전부라고 해야겠죠.

   그런가요.

   재인 씨는 어떻게 바라보세요?

   딱히, 그저 보이는 대로 봐요.

   어? 그거 무척 어려운 일인데.

   내게는 가장 쉬운 일이에요.


 우리는 커피를 내리는 동안 쉼 없이 이야기를 한다. 이번에는 목적 없이 자발적 움직임이라며 문 씨는 웃는다. 그와 같이 하는 순간은 담백하다. 더 생각해 보거나 애쓰지 않아도 이야기가 풀린다.


   법학이야기 좀 해줘요.

   1학년 시절만 계속되면 할만해요.

   하. 나도 그랬던 것 같긴 하네요.

   법 고전 시리즈가 교양인데 나는 그것만 흥미를 끌더라고요. 루소부터 거든요. 사회계약설.

   나도 1학년 때 루소에 빠지기는 했어요. 에밀.

   아직도 생생한 구절이 있는데 재인 씨도 알걸요. 베카리아라는 철학자. 법학에서는 아주 중요한 사람이거든요.

   처음 들어요.

   베카리아가 책을 집필하면서 19세기에는 위험한 책이었는데 "압제자는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라 괜찮다"면서 출간을 했대요.

   2세기 전에 한 말이 변함없는 것을 보니 헛웃음이 나오네요.

   그렇죠? 법학은 특히 그런 것 같아요. 나와 맞지 않다는 것을 대학 들어가서야 확인했어요.

   대부분 그렇잖아요. 전공 살린다는 의미는 애초에 불가능한 나라에서 애꿎은 맘고생만 하는 거죠.


 다르지만 같기도 한 그와 나는 오랜 친구처럼 가릴 필요 따위 없이 다 펼쳐놓는 기분이다. 그는 가을을 기대하고 있는 계절이라며 산에 다니는 것을 즐긴다고 한다.


 단풍나들이가 아니라 가을 산에서 들리는 소리에 빠져든다며 같이 가자는 말도 서슴없이 한다. 충분히 오를 수 있는 높이와 숲이야기와 동물, 새소리와 물소리. 그는 빠르게 입술을 움직인다.


   재인 씨는 꿈이 있어요?

   나는 허우적대는 중이죠. 꿈을 가진 적이 없어요. 꿈 없이 사는 거예요. 이대로 사는 게 좋아요.

   재인 씨는 작가가 딱인데.

   네?

   소설 쓰지 그래요. 아니면 시나리오도 좋고.

   재능이 없더라고요.

   쓰려고는 했어요?

   네. 철퇴를 맞았지만.

   재능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런 이유로 맞은 철퇴라면요.

   그래요?

   천재 소리를 듣고 유명해져야 재능인 것 같지만 실상 아니더라고요. 특히 영화판은 그랬어요.

   나는 되기 싫은 것만 정확하게 알기는 해요.


 우리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린다. 영화 촬영 막바지라 편집 끝나면 공모하고 그다음은 아직 미정이라고. 가을 산행 일정이 잡히면 일단 연락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문 씨는 웃는다. 뒷모습이 멋진 사람이다.


 미친 이집트인들. 재현은 그렇게 말했다. 사후세계에 모든 걸 낭비하다니. 그는 현재를 잘 살아가려고 긴 여행을 선택한 것일까. 운명적 사랑을 만나는 것은 인생에 단 한 번이고 그 사랑 하나면 삶은 충분히 지속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홀로 환상에서 깨어나는 순간 내 세계는 혼란스러워진다. 모든 일들이 어수선하게 펼쳐지거나 머릿속은 엉킨 실타래 같기만 하다. 중요한 것은 환상이 아니라 그렇게 놓아두려 했던 이재인이라는 못난 사람이다. 나를 알아차리는 일이 이토록 고단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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