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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창우 Mar 07. 2023

수상한 책방 52.

운명의 장소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엄마에게 내 운명의 장소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때 엄마는 누구나 그런 장소를 찾아다니지만, 운명이란 얄궂어서 절대 쉽게 보여주는 게 아니라고 내 말 끝에 덧붙였다.


 집에서 지내는 것이 불편하지 않은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은 책 읽기와 영화 보기였다. 가장 많은 시간을 내게로 온전하게 쏟아부을 수 있는 기회는 코비드 덕분이었다. 어쩌면 그 시기가 내게는 운명의 시간이 되어 주었다고. 그다음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돌아볼 기회와 실행할 수 있는 용감함까지 가질 수 있게 해 준 시기였다.


 그 시기 읽은 산문집 <<운명의 문 앞에서>> 저자 모리스 마테를링크는 세 부분으로 나누어 묻고 답하기로 책을 구성한다. 첫 번째 질문은 삶을 마감한다는 것이 그렇게 큰 불행일까? 작가의 생각을 접하며 그동안 내 안에 깃든 생각이 조금씩 살아 움직이는 것을 알아차렸다.


 두 번째, 삶은 왜 삶일까요? 이 질문에 대해 생각하면서 지금 내가 질문을 던지고 있다면 우리 모두는 철학자이기도 하다는 막연하던 생각이 더욱더 굳건해졌다. 마지막은 법에 대해 이런 말을 한다.


사람들이 선하다는 전제하에 법을 만든다면, 나쁜 사람은 득세하고 착한 사람은 망하고 말 것이며, 반대로 사람들이 악하다는 전제 하에 법을 만든다면,
정작 악한 사람은 요리조리 법망을 피해 다니고 선한 사람만
그 법을 충실히 따르며 고생할 것이다.

 

 현대인이 처한 이 상황은 아주 오래전부터 늘 화두였나 보다. 자연이 주는 선물이 고갈된 후가 아닐지라도 이미 우리는 자기 손으로 자신의 운명을 도탄에 빠트리고 있었다. 그런 생각이 나를 따라다니면서 내 서울 탈출은 실행될 수 있었다.


 어떤 장소를 내 운명이라 여기는 마음은 내 몸과 마음을 지켜내기 위한 의식 같은 것이다. 매일 새로운 날이 시작하는 것이라고 나에게 말하는 내가 있다. 마주한 순간은 쉽게 지나간다. 흘낏 지나친 그 순간이 나를 데려다 놓는 장소에 머물게 되기까지 선택도 순간이다.


 순간이 이어지면서 삶을 이룬다. 내일을 기대하지 않는 마음을 뒤로하고 살아가는 일도 괜찮다. 더위에 나무 그늘을 빼앗기려 하지 않는 늘어지게 자리 잡은 길냥이. 자전거를 그늘에 두려는 할아버지 마음. 어느 것 하나 스스로를 위하지 않는 것은 없다. 내가 그늘에 앉을 때 에야 다른 게 보인다.


 여름날 천국 같은 책방에서 보내면서 세상은 더 분명하게 보인다. 내 눈으로 보는 것은 한산한 거리이지만 내게는 보이지 않는 세상이 빠르게 지나간다. 그 한순간마저 진실과는 동떨어진 사실이다. 실상 잘려나간 조각들을 찾아내는 일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역사에 기록된 것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어리석은 시절을 되풀이하기 싫다.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과연 선의도 순간이지 싶어 무기력해지는 나를 가끔 발견한다. 기껏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동네에 책방을 열고 살아있는 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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