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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창우 Mar 08. 2023

수상한 책방 53.

비밀


 비밀은 고통스럽다. 비밀을 누군가와 나눌 때 줄어드는 게 아니라 두 배로 늘어난다. 털어놓으면 놓여날 고통은 아니었던 것이다. 비밀은 홀로 감당하며 지켜내다가 비밀스러움을 스스로 벗어던지면서 힘없이 드러난다. 해가 지고 다시 떠오르면 새날이 되는 것처럼.


 좋은 일은 시간이 걸린다. 나쁜 일은 빠르고 강력하고  무차별하다. 변화가 원으로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중심에 내가 있고 그렇게 점 하나가 원을 만든다고. 지금은 아니다. 잘 포장된 상자라고 내용까지 보장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생각해 보면 사람 관계도 누군가가 친구로 남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 친구로 있는 거다. 자주 만나야 하기보다는 마음이 이어져 오기에 친구로 있게 한다.  사람 중 하나에 마음이 살아 움직인다면 가능하다. 둘 다 마음을 놔버렸다면 관계는 끝이다. 뜻밖에도 간단했다.


 비밀 하나를 알았다고 대상을 전부 아는 것은 아니다. 재현 옆에 누가 있을까. 동반자 없이 홀로 걸어가는 여행을 생각하면 한없이 작아지는 나를 만난다. 용감하지 않은 나는 작은 책방에서 상상력을 발휘한다. 재현은 늘 떠나가는 사람이었고 불쑥 나타나기도 했다.


다가오는 변화를 막아낼 도리가 없었어. 내가 원하는 변화는 아니었거든. 선택하고 싶은데 현재 한국에서는 가능하지 않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았지. 지금 내가 여기 서 있는 이유야. 책방은 여기에도 있으니까 이재인을 상상해.
아마도 딱 맞는 공간이겠지.


 재현이 보낸 그림엽서에 글을 읽으면서 그가 고스란히 내게로 들어온다. 나와 비슷한 이유로 실행한 발걸음이다. 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거의 표면적이다. 겉으로 드러난 것들로 그를 알고 지낸다. 좀 더 내밀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시절 이후 그가 내게 말을 건다.


 서로에게 시간을 내어주지 않은 이유 또한 있다. 이십 대 초반 우리는 자기 자신조차 버겁게 짓누르며 버텨내던 때였나 보다. 사회초년생 자리를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에게 내어 주어야 했다. 그런 이유로 삶은 원이 아니라 나선형으로 변할 기회를 준 것 같기는 하다.


   이재인은 화장을 왜 안 해?

   게으르거든.


 뜬금없이 재현이 묻던 날에 집으로 돌아와 스킨과 로션이 전부였던 내가 선희 화장품을 덕지덕지 바르던 날이 생각난다. 화장한 나는 이재인이 아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너무 낯설었다. 화장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화장 안 한 있는 그대로 나를 봐줄 사람이면 된다고 스스로에게 속삭이던 나는 여전하다.


 그가 품은 비밀은 무엇일까. 그도 나만큼 양파 같은 사람이다. 한 겹 벗겨내면 또다시 나타나는 외피. 거의 대부분 속을 열어놓지 않고서도 우리는 멀쩡하게 잘 살아간다. 비밀은 그것이 드러날 때 유효한 힘을 지닌다. 가슴에 품은 비밀과 그것을 둘러싼 거짓말조차 충분히 감추고도 일상은 별 탈이 없다.


 드디어 카카오톡 보이스로 그를 부른다. 연결이 되던 그렇지 않던 재현 목소리가 듣고 싶은 밤이다. 무슨 얘기를 할까 생각하지 않는다. 내 귓가로 들리는 그 목소리에 반응하는 나를 알고 싶다. 서로 기억하는 순간은 무엇일까. 그 긴 세월 우리 만남은 숫자로 셀만큼 적다.


   어ᆢ

   끊을까?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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