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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세라도 좋다

엉성하게 살아내기

by 이창우

허영심.


그것은 지금 내가 부릴 수 있는 허세에서 나온 감정이기도 하다. 책방 서가를 둘러보며 둘쑥날쑥 엉성하게 자리 잡은 책들을 바라보며 갖는 마음이다.


십 대부터 나를 지켜온 책을 이제는 내가 지켜주리라는 단순한 마음이 눈에 들어온 책이름에 걸리적댄다. 그 이름을 빼어내 책을 들춰보는 순간 다가오는 감정은 거부감이다.


빈 상자를 가져와 그 이름을 담으면서 책방에 있는 하루마다 이름 하나씩을 지우기로 한다. 이 마음이 오래가려나 싶은 변덕도 있을 내가 며칠째 7권의 이름을 보기 싫다는 이유로 빼내고 있다.


이건 또 어떤 마음인지 굳이 알아보려 하지 않는다. 덜어낼 것은 때가 있다더니 아마도 그런 때인가 생각하기로 한다. 그나저나 이 행위가 묘하게 쾌감을 준다.


시월 연휴, 책방에 와 지난날 책과 가까웠던 순간을 떠올리면서 미소 짓는 그들에게서 그리움을 본다. 아주 익숙한 책 이름을 소리 내면서 만나는 순간에 만날 감정이다.


아직까지 내 공간에 책은 무사히 있던가 하는 물음표가 그들 머리 위에 붙어 있다. 종이책은 지난 시절 기억 속에 한 장면으로 남아있는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시간이 멈춘 마을에서 책방은 현재이다.


빨간 머리 앤과 길버트를 떠올리거나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기억나게 해주는 다정한 공간이다. 꽃들에게 희망을 주는 나비처럼 누군가에게 내일을 건네는 희망이다.



엉성한 나는 오늘도 허세를 부린다. 내게만 좋았을지도 모를 숱한 순간들을 떠올리면서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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