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바라보기
이십 대 그대는 지역에서 나름 인지도가 있으니 더 유명해지면 좋지 않냐고 물었다.
유명해져야 할까.
우스갯소리처럼 들렸을지도 모른다.
너무 유명해지고 싶지는 않거든.
왜?
삶이 몹시 분주해질 것 같은데 분주하고 복잡해지는 삶으로 이어가는 것은 바라지 않아서 말이야.
굳이 언제 나누었던 말인지 몰라도 괜찮다.
또렷하게 이야기하던 그 순간이 홀로그램처럼 눈앞에 나타난다.
어떤 부분에서 잘 알아차렸던 스스로를 마주한다.
자연스럽게 그는 위로 자라던 시기가 아니라 융이 자신의 저서에서 말한 것처럼 아래로 더 깊이 자라야 할 시기에 와 있던 것일 뿐이다.
보통의 존재로서 살아가는 일은 여기저기 구멍 난 삶을 끌어안아야만 가능하다. 구멍을 메꾸려고 안간힘을 쓰는 순간부터 오히려 또 다른 보이지 않는 틈을 만들게 되어 원형은 변형된다.
살아가면서 가장 슬픈 일은 원형 보존 가능성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다. 비극으로 최후를 맞는 일이다.
이제 나에게 삶과 일을 잇는 일은 숭숭 뚫린 하루에 부여한 시간을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도 나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