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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나를 만나는 순간

by 이창우

누군가를 위해 더 좋은 사람이 되기를 생각하면 헤밍웨이를 떠올린다.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드러낸 작가로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몇 번이나 알을 깼던가. 알은 많을수록 좋았다. 더욱 단단해지기 전에 알을 깨고 나오기가 사실 더 힘든 일이었다고 기억한다. 톡 건드려서 금이 가지는 않기에 몇 번을 부리로 쪼아대면서 나와야만 했다.


알을 깨고 고개를 내밀었을 때 만난 낯선 감정들이 몇 년을 주기로 나를 흔들어댄다. 지나온 세월을 참으로 많이 가지고 있는 내가 그런 감정에 너덜너덜해지기도 한다.


늦은 저녁 곁에 있는 것처럼 들리는 목소리에 조잘조잘 대는 내가 있다. 아마도 계절이 한 번 바뀐 후 이어지는 작은 제목을 붙이면 될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내게 일어난 일을 받아들이고 고개를 끄덕일 수 없을 때 선택은 고스란히 내 몫이었다. 살아오면서 마주하는 위기감은 작든 크든 일상에 변화를 가지고 온다.


그 순간에 대개는 시선을 멀리 두려고 애쓰기도 하지만, 전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결국에는 주섬주섬 담을 것과 버릴 것을 선택하고 결정하고 만다.

수많은 선택을 할 때 적절한 책 한 권에서 얻는 문장은 딱히 새로울 것 없는 어느 책에서인가 만났던 글이기도 하다. 제때 내 눈에 들어왔다는 것이 다를 뿐이었다.

헤밍웨이는 십 대부터 나를 발견하거나 만들어 가는 데 도움을 준 등장인물을 만나게 해주는 작가이다. 싱클레어와 데미안, 에바 부인, 한스와 헤르만 하이너, 페터 카멘친트,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크눌프, 최고의 인물 크네히트의 죽음으로 느낌표를 만드는 책 한 권을 접으며 쓰다듬는다.


이제 나는 은밀하게 작당모의를 도모하려고 한다. 곁에 있는 사람들과 우리들의 따뜻한 날을 위해 다가오는 계절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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