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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 Mar 14. 2022

나의 직관과 믿음을 증명하겠다는 결심

흙수저 공무원 부부의 상가주택 건축기13


업체와 상담을 마치고 나오며 머리는 복잡했지만 이 업체와 계약하고 싶다는 생각은 더 강하게 나를 휘감았다. (아래부터 편의상 그 업체의 첫 이니셜을 따서 M업체로 칭하겠다) 알 수 없는 이끌림. 그것 말고는 내 마음을 설명할 수 있는 어떤 것도 없었다. 견적금액은 전혀 예상할 수 없고 계약금을 걸고 일단 시작해봐야지 알 수 있는 이 말도 안 되는 모험을 내 감만 믿고 시작해야 하나, 아니 시작한다고 한들 그 끝에 갔을 때 결국 우리가 마련할 수 없을 만큼 큰돈이 든다면 그때는 다 갈아엎고 다시 시작해야 하나? 생각하면 할수록 이건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뭐에 씐 것처럼 하루 종일 하얀 집이 머리에 둥둥 떠다녔다. 나는 M업체와 작업을 하고 싶었다.    


남편은 계획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다. 내가 그 업체 사장님과 나눈 이야기들은 합리적이지 않다. 사실 뭘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 아이들을 재우고 퇴근한 신랑과 식탁에 마주 앉았다. 하루 중 겨우 신랑과 대화 비슷한 것을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맥주 따위는 필요 없다. 나는 신랑에게 맑은 정신으로 하는 이야기라는 것을 강조해야 한다. 오늘 내가 M업체와 상담한 이야기들을 빠짐없이 했다. 우린 한 배를 탔기에 모든 상황은 낱낱이 공유되어야 한다. 신랑은 내 이야기를 듣는 내내 어이없는 표정이었다. 당연했다. M업체의 조건들은 하나도 우리와 맞는 것이 없었다. 내 이야기를 다 들은 신랑은 뭐가 문제냐는 듯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그럼 다른 업체를 알아봐야겠네?”     


당연한 결과였다. 이중계약을 여러 차례 해야 하는 상황이, 대략의 견적을 알 수도 없이 가계약금을 걸고 무조건 시작한다는 것이, 건축이고 시공 면허가 없는 리모델링 업체라는 것이 어느 하나 우리가 바라는 조건과 일치되는 지점이 없는 조건이었다. 신랑의 물음에 내가 대답했다.    


“그런데 말이야. 지금까지 내가 몇 달 동안 알아본 결과 인근에 이렇게 다양하고 결과물이 좋은 포트폴리오와 시공사례가 있는 업체는 처음이야. 그 업체가 시공이나 건축면허는 없지만 어차피 건축은 다 비슷한 업계니까 그 정도는 사장님이 해결해 주실 것 같고, 견적 부분이 좀 문제이긴 한데 일단 계약금 걸고 설계하면 견적이 나온다고 하니까 시작해 보면 안 될까? 지금 일이백만 원 아낀다고 시작도 안 해봤다가 나중에 후회할 수 도 있잖아?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견적이 나온다면 포기하면 되고,”    


신랑은 내 성격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한번 꽂히면 기어코 하고야 마는. 결국 우리가 이 땅을 샀던 것처럼 말이다. 신랑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라고 말했다. 이중계약을 해야 하는 상황도, 견적도 알 수 없이 무조건 계약금을 걸고 시작해야 하는 상황도, 중간에 뭐가 잘못되면 누구의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도 알 수 없는 총체적인 난국이 예상되는 상황을 도대체 뭘 믿고 시작할 수 있냐고 말했다. 우리에게 그런 시작을 할 금전적 시간적 여유가 없을뿐더러 그건 너무 무모한 일이라는 것이다. 모두 맞는 말이었다. 나도 충분히 알고 있는 부분이었기에 신랑이 하는 이야기에 어느 하나 반박할 수도 없었다. 우린 돈도 시간도 여유롭지 않다. 머리로는 아니라고 하면서도 내 마음은 이미 M업체와 계약 이후 상황을 그리고 있었다.    


“자기. 리모델링 업체지만 믿을만한 시공사례들이 있고 어차피 비슷한 건축 업계니까 이중계약을 하더라도 특별히 문제 될 일은 없을 거야. 내가 평생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집인데 그냥 짓고 싶지는 않아. 내가 그 하얀 집을 보고 ‘저런 집을 짓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누군가 우리 집을 보고 그런 생각을 하는 집을 짓고 싶다고. 그런데 그 집을 지은 업체를 우리가 지금 만난 거잖아. 그것도 우리 아파트 바로 앞 상가에 있는. 이건 거의 운명 같은 일이야. 일단 시작해보자. 설계도가 나오고 견적이 나오면 거기서 조율을 좀 더 해보든가 하면 되잖아. 우리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견적이 나오면 좋은 경험 했다 생각하고 다시 시작하면 되고. 사실 우리는 지금 단돈 십만 원도 아쉽지만 말도 안 되는 금액부터 대뜸 부르는 다른 업체들과는 다른 곳임은 확실하다고.”    


신랑은 영 마음이 내키지 않는 눈치였다. 아니 마음이 내키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런 나의 갑작스러운 추진에 당황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그럴 만도 했다. 어느 것도 확실한 게 하나도 없던, 말 그대로 막무가내 같은 나의 선전포고들. 도대체 뭐가 다르다는 건지, 확실하다는 증거도 없으면서 무슨 근거로 확실하다는 건지. 땅을 살 때 발동했던 근거 없는 자신감은 다시 고개를 들어 내 눈빛을 이글거리게 했다. 신랑은 연신 고개를 내저었지만 이미 알고 있었으리라. 무슨 이야기로도 나를 막을 수 없음을.


신랑은 좀 더 생각해보자고 말하며 마주 보고 앉은 식탁 의자에서 일어났다. 나는 신랑이 앉았던 식탁의자를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 쉬었다. 신랑이 어떤 마음이었는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신랑은 두렵고 불안했으리라. 돈도 없으면서 땅을 사고, 가족에게 돈을 빌리고, 대출 이자는 계속 나가고, 그런데 내가 점입가경으로 말도 안 되는 모험을 시작하자고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도전 없는 성공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성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일단 한번 부딪혀 시도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정말 몸으로 경험하는 중이었다. 신랑이 일어난 식탁 의자를 오래도록 보고 앉아 있었다. 나에게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나를 믿는 것. 그리고 그 믿음을 다시 내가 증명하는 것. 신랑은 생각해보자는 말로 내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나는 신랑의 의견과 상관없이 M업체와 성공적인 상가주택 건축으로 나의 직관과 믿음을 증명하겠다고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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