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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택 Aug 17. 2021

손가락이 베이고 보이는 것들

동료의 퇴사

"오빠! 소라 무침해줘!"


 주말에 아빠가 사다주신 소라가 남아서 아내에게 야채와 초장을 곁들인 무침을 해주기로 했다. 부쩍 는 칼질에 자만해서 일까? 양배추를 채 썰다가 왼손 검지 손가락을 베이고 말았다. 갑작스러운 피에 식은땀도 나고 속도 메스꺼워졌다. 다행히 꿰맬 만큼 베인 것 같지 않아 간단히 응급 처치를 했다. 크게 다치진 않았어도 베였으니 제법 상처 부분이 욱신거렸다. 아내는 물이 들어가면 상처가 곪는다며 손가락을 보호할 수 있도록 골무 따위를 씌워 주었다.


 다음날 출근을 해서 업무를 하다 보니 어제 베였던 손가락이 아파왔다. 아직 부어있고 상처가 아물지 않아 주의했어야 했는데, 무의식 적으로 제법 많이 사용했나 보다. 이후 의식적으로 왼손 검지 손가락을 사용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근데 생각보다 일상생활을 함에 있어서 왼손 검지 손가락의 사용빈도는 높았다. 양손으로 키보드 자판을 칠 때 왼손 검지로 눌러지는 문자도 많았고, 운전 시 창문을 내릴 때도, 과자 봉지를 양손으로 뜯을 때도 왼손 검자 손가락의 힘이 필요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코를 파는 손가락이 왼손 검지 손가락을 사용 중임을 다치고 나서야 알았다.


 전혀 생각 치도 못한, 전혀 의식하지 않던, 그저 내 수많은 몸의 일부라고만 생각했던 왼손 검지 손가락이 다치고 나서야 나도 모르게 왼손 검지 손가락이 제 위치에서 제 역할을 묵묵히 하고 있었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비단 왼손 검지 손가락뿐만일까? 살면서 내가 깨닫지 못하고 각자의 위치에서 묵묵히 맡은 임무를 수행 중일 수많은 것들을 떠올리게 했다.


 최근 들어 회사에 부쩍 퇴사자가 많아지고 있다. 제조업의 비전이  좋지만도 않은 데다가 일본계 기업 특성상 고객이 점점 제품을 국산화 하려는 조짐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료의 유출은 우리 파트라고 그냥 넘어갈 일이 없었다. 나보다 1 후배지만 나이는  많은 파트 동료가 네임밸류가 좋은 대기업으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조용히 유별나지 않게 묵묵히 일을 하는 동료였는데, 이제 그분이 떠난다고 하니  빈자리가 굉장히 크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 앗다.


 손가락의 상처는 결국 언젠가 아물겠고, 회사의 공석은 새로운 사원으로 메꿔질 것이다. 그리고 이 깨달음의 순간도 왼손 가락이 편해질 때 즈음이면 다시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그래도 이번에 손가락을 베임과 동시에 동료의 퇴사를 바라보며, 퇴사자를 바라보는 새로운 마음을 느껴보긴 한 것 같다. 코로나로 인해 송별회식도 못하고 떠나보내는 내 파트 동료, 그의 앞날에 행복이 가득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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