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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택 Oct 19. 2021

외국계라고 다 칼퇴를 하진 않는다

두 문화가 만나 발휘되는 시너지

 외국계 회사의 큰 특징은 그 외국의 고유의 문화와 업무 스타일을 직접적으로 경험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바꿔 말하면 한국 고유의 수직적이고 집단적인 문화를 조금이나마 탈피할 수 있다는 말도 된다. 그래서 막연히 외국계 기업에 환상을 가지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론 한국의 문화와 국민성 등으로 인해 외국의 정서와 조직 문화를 100% 현지화시키기엔 무리가 따르는 게 현실이다.


 이를 테면 이런 것이다. 한 유럽에 본사를 둔 회사가 한국에 법인을 설립했다고 유럽의 근무 방식을 그대로 고수할 수 없다는 것이다. 노동자의 인권을 중요시 여기는 유럽 회사일지라도 한국인 직원들은 결국 상사의 눈치를 보느라 퇴근하는 것을 어려워할 것이고, 수평적인 직무 쳬계화 대화법을 도입해도 장유유서가 기반인 한국에서 아랫 사원이 선임에게 목소리 내기가 힘들 것이다. 때문에 이러한 외국계 기업을 두고 '한국 패치'되었다는 조롱 섞인 표현도 있으니 말이다.


 근데 흔히 같은 외국계라도 일본계는 좀 성격이 다르지 않냐는 의견도 많다. 왜냐하면 같은 동양권의 문화라는 점과, 애초에 한국의 기업 경영 방식이나 조직 문화가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물론 서양의 기업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공통점도 많고 공감대도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한일 정서 관계상 매우 다른 점도 제법 존재한다.  그중 대표적인 한 가지를 꼽자면 바로 일본의 '네마와시' 문화이다.



네마와시(根回し) 나무를 옮겨 심기 전 행하는 일련의 준비 작업



 실제 일본 기업은 '네마와시'라는 고유한 문화가 있다. 네마와시는 나무를 옮겨 심기 전 행하는 준비 작업을 뜻한다. 이것을 실제 근무 환경에 적용하면 미팅이나 교섭 전 미리 진행할 내용, 그리고 사전 준비 항목들을 점검해보며 일종의 사전 조율 시간을 갖게 되는 일이다. 실제 일본 협력사와도 일을 하게 되면 회의를 잡는데 최소 2주 전에 통보를 해줘야 대응을 해준다. 이러한 부분만 봐도 절차를 중요시 여기고 철두 철미한 일본의 문화를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네마와시 문화는 한국인에게는 조금은 답답하고 융통성이 없는 경우로도 느껴지기도 한다.


 일본계 기업이라도 우리가 상대를 하는 고객사는 결국 한국 회사다. 고객사는 가끔 이해할  없을 정도로 무리한 요구를 하기도 한다. 내일까지 보고서를 준비 해달 라거나, 가끔 문의 사항이 있으면 당장 회의 개최를 요청하기도 한다. 이것은 결국 회사의 성과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한국 직원들은 야근을 해서라도 어떻게든 꾸역꾸역 요구사항을 대응해준다. 이러한 모습을 보며 일본인 직원들은 무리한 업무 요구를 하는 한국 고객사도 이해가  되고, 사전 준비 없이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대응해주는 한국 직원들도 이해가  된다고 한다. 고로 일본 경제의 근간이  고유의 문화인 네마와시는 한국인의 정서와 한국 기업을 상대로는 전혀 맞지 않는 옷인 셈이다.


  게다가 네마와시는 신속성이 요구되거나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에서 대처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실제 현재 우리 회사의 주력 제품은 시장의 변화가 빨라 고객의 요구하는 기술력은 높아지고 개발 기간은 점점 단축되어 가는 실정이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한국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라던지 책임자의 과감한 의사결정권이 오히려 더 적절하다는 것이다. 아마 양국이 경제성장을 이룩해온 과정과 시간이 다르다 보니 이러한 경영 스타일에서도 크게 차이가 나는 것 같다. 만약 일본에서 본사의 방식대로 네마와시를 고집했다면 한국의 고객사에게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제공하지 못했을 것이고, 한국 법인은 다른 경쟁사에 비해 점점 경쟁력을 잃어 갔을 수도 있다.


 한국에서의 출향을 마치고 일본 본사로 복귀하는 일본인 직원들이 정말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있다. 그것은 '한국 조직이 가진 엄청난 에너지와 스피드'라는 것이다. 물론 모든 조직 문화에는 장단점이 있다. 무엇이 더 좋고 나쁘다를 따질 것이 아니라 외국계 기업이라면 그 환경과 시장의 변동성에 맞게 적절한 방법을 융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 일본 직원이 말한 한국 직원의 에너지와 스피드도, 일본 경영 방식으로 다져진 안정성과 시스템이 뒷받침이 되었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고 본다. 이렇게 서로의 문화를 상호 보완하여 시너지를 발휘한다면 외국계 기업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경쟁력이 된다고 생각한다. 고로 우리가 외국계 기업에 매력을 느껴야 하는 부분은 수평적이고 자율적인 모습만을 바라볼게 아닌, 서로 다른 문화가 결합되어 넓은 시야와 객관화된 사고방식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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