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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택 Oct 20. 2021

변질된 도쿄 바나나

 배고프던 대학생 시절, 일본에서 워홀을 하던 친구가 일본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날이었다. 녀석은 두 손 가득 일본 과자를 잔뜩 사 오더니 먹어보라며 선물로 주었다. 오랜만의 친구를 보는 것도 좋았지만 기대도 안 했던 선물까지 나눠주니 더욱 좋았다. 뭔들 맛없겠냐만 특히 손이 많이 가는 과자가 하나 있었다. 그 과자의 포장지엔 '도쿄 바나나'라고 적혀 있었다. 너무 맛있는 나머지 이후 이 과자를 신격화하며 지내왔는데 그땐 몰랐다. 이 과자가 질리게 될 줄은.


 입사 후 신입 때 가장 의아했던 점을 한 가지 꼽자면 출근을 하면 출처를 알 수 없는 간식이나 과자 등이 자리에 놓여 있었다는 점이다. 옆자리에 있는 사수에게 갸우뚱 한 표정을 지으면 그냥 사양 말고 먹으라 한다. 누군가 맛있는 걸 준다면 마다할 사람은 없다지만 그래도 주는 이유는 알고 먹어야 소화도 잘 될 테니 말이다. 조심스레 여쭤보니 간식의 출처는 팀의 한 선배라고 한다. 지난 며칠간 유럽에 출장을 다녀왔는데 다녀온 기념으로 유럽 과자를 사 와 돌린 것이다.


 "보통 휴가나 출장을 다녀오면 그 지역 특산물이나 간식 등을 사 와서 나눠 주곤 해"


 라며 선배가 과자를 준 이유를 설명했다. 휴가, 출장 등으로 장시간 자리를 비우게 되면 자리 비운 만큼 다른 직원들에 계 폐를 끼쳤다고 생각하는 것, 그리고 다녀오게 해서 고맙다는 의미로 간식 선물은 준다고 한다. 실제 일본 협력사에서 한국에 출장을 왔다가도 일본으로 돌아가기 전 한국 마트에 들러 김을 사 간다는 것을 직접 보며 이 또한 일본이란 나라의 관례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결국 휴가라는 것은 노동자의 기본 권리이고, 출장도 업무의 연장인데 자리를 비웠다고 해서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점이 참으로 일본스럽단 생각을 했다.


 어찌 되었던 일본에 영향을 받은 이러한 사내 문화가 있다니 그러려니 하며 적응했다. 근데 회사 생활을 하다 보니 이 문화의 진정성에 의문이 들었다. 과자를 주고받는 과정 중 몇 가지의 부작용을 보았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A는 도쿄 바나나 주던데 B는 땅콩만 주더라' 라며 주는 사람의 마음보다 양과 질을 비교, 재단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과자를 준비하는 당사자의 마음도 결국 어쩔 수 없이 의무감에 준비하는 게 되어 불필요한 에너지를 낭비한다는 점이다. 실제 여자 친구와 여행 중 복귀 전 팀원들 선물을 준비하기 위해 시간과 비용을 할애하다가 마찰을 빚은 경우도 있었다.


 일본 직원들은 이게 워낙 당연한 일이니까 그들은 크게 개의치 않아하는 듯하다. 그러다 과자를 나누고 먹는 방식에서 한국인과 일본인의 큰 차이점을 발견했다. 사적인 공간에서 개인의 음식을 먹는 방식이다. 예컨대 집에서 과자나 과일 따위의 주전부리를 챙겨 왔을 때 콩 한쪽도 나누어 먹는다고 한국 사람들은 본인이 먹으려고 가져온 간식을 주변 직원들 에게 나누어 주는 경향이 있다. 베풀고 나누며 만족감을 느끼는 이것을 '정'이라는 매우 한국적인 정서로 표현되기도 한다. 반면 일본인에게 과자 같은 간식 따위는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이라 굳이 혼자 먹는다고 해서 미안하거나 눈치를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결국 이 사내 문화의 부작용은 자발적으로 먹을거리를 베푸는 한국인의 정서에, 전혀 민폐라고 생각하지 않는 부분에서 민폐라며 간식을 사주어라는 강제성에서 비롯되었다. 공감대를 형성할 수 없는 부분에 강제성이 부여되니 과자 하나에 일종의 보상 심리가 동반하는 것이다. 참 아이러니하다. 조금은 이기적일 수 있게 보일 정도로 지극히 개인적인 일본 사람들이 휴가가 남에게 폐를 끼친다며 조공을 하는 것. 그리고 우리라는 틀 안에 집단화되어 있는 한국인들이 개인적인 휴가로 자리를 비웠다고 전혀 폐를 끼친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말이다. 이렇듯 실제 외국계 기업에서 근무하다 보면 양국의 정서가 상충되어 효율이 디버프 되는 케이스도 많다. 가끔은 순수했던 마음으로 선물을 주고받던 배고픈 대학생 시절의 도쿄 바나나의 맛이 그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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