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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양현 Jan 11. 2019

자카르타 총분견소로의 이동

전범이 된 조선인 포로감시원의 르포르타주

소강상태에 접어든 전쟁

어느덧 가을이 가고 겨울도 지나 여기에 온지도 1년이 넘었다. 기세 좋게 출발한 전쟁이었지만 지금은 소강상태에 빠진 듯하다. 철통 같은 진을 꾸려 침입을 막으려는 자와 철통에 구멍을 뚫으려는 적 사이에 산발적인 대치상태가 지속되면서 여러 가지 안 좋은 조짐도 보인다. 여러 달 후 태평양의 깨알만 한 섬들에 적의 집요한 공습이 이어지면서 보급이 제때 닿지 못한다. 이로 인해 수 만 명의 병사들이 기아 상태로 허덕이고 더러는 옥쇄(일본 의 황군답게 명예롭게 전사한다는 의미)라는 소식이 들려온다. 수시로 이뤄지는 적의 공습을 피기 위해 병사들은 호 속으로 들어간다. 공습에도 불구하고 부식을 보충하고 각기병도 막아야 했기에 바깥에 나가 채소를 재배해야 한다. 그러나 적기는 우리의 상황을 헤아려주지 않는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내습하는 전투기들은 휘발유를 뿌리고 사방에 불을 붙여버린다. 곳곳에서 사망자가 속출한다. 


기나긴 수송해토를 가야 하는 군수물자의 보급에 구멍이 뚫린다. 일본의 공장에서 심혈을 기울여 만든 총포가 효과를 발휘하기도 전에 적기의 습격을 받고 태평양 한복판 깊은 해구 속으로 수장된다. 보급이 끊기면서 각 지방의 포로수용소는 해산 후 수도 자카르타로 집결해야만 했다. 동시에 포로감시원들은 태국의 철도건설이나 섬의 비행장 건설 등의 노역을 위해 착출 되었다. 


미군의 전투기에 의해 침몰되는 일본군의 보급선 (https://www.reddit.com에서 인용)


말랑 포로수용소에서의 철수

인간 하나하나의 운명은 군간부들 책상 안 명부 안에서 체크된 점 형태로 결정된다. 우리도 이곳 말랑 수용소의 철수 작업을 단행한다. 짙은 초록색 상의를 걸치고 가지각색의 배낭을 멘 화란군, 옅은 카키색의 호주군과 영국군, 둥근 테가 붙어있는 모자를 쓴 미군 고문, 뉴질랜드 적십자군 환자 곁에 완장을 찬 사람들을 기나긴 열차 안에 몰아넣는다. 먹여 살려야 하니 당연히 급양 자재도 담아야 한다. 무거운 쇠로 만든 주방기구는 두 바퀴가 달린 차 위에 찰싹 붙어있다. 덜그렁 덜그렁 쇠붙이 소리가 요란하다. 수십대의 조리기구가 무개 열차에 실린다. 이렇게 불편한 물건으로 밥을 짓고 국을 데우고 하다니. 어느 포로였던가? 이런 말을 한 게 기억난다. 


“일본군은 어딜 가나 손쉽게 쌀을 구하고 밥통으로 익혀먹지. 하지만 우리들은 빵을 만들고 수프를 끓이는 사이에 시간을 다 뺏겨버렸어. 그래서 포로가 된 거야.”      


수송 열차 안을 들어가니 양인들의 체취가 너무 심해 코를 막아야 할 정도다. 냄새를 피해 승강구에 앉아있으니 열차가 뿜는 매연에 콧구멍이 까맣게 된다. 자카르타로 돌아가는 길은 마랑으로 올 때와는 달리 원주민의 환호성이 없어졌다. 정거장마다 거리마다 일본군만 보면 원주민들이 손을 흔들고 환호성을 냈는데 이제는 그런 격렬한 환영은 없어졌다. 환영을 받지 않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이런저런 생각이 난무하는 가운데 자카르타에 도착한 우리는 총분견소에 수용된다.


자카르타 총분견소 도착

총분견소는 자바섬에 있는 여러 곳의 수용소 중에 가장 크고 핵심기지 역할을 하는 곳이다. 많은 인원들이 들어오고 또 나간다. 때로는 적군의 비행사가 낙하산으로 내려와 포로가 되어 들어온다. 포로가 된 비행사는 매일 헌병대로 조사를 받으러 나갔는데 다시 돌아올 때는 얼굴이 상한 채로 기진맥진한 모습이다. 아마 모진 고문을 당한 모양이다. 얼마 전까지 영광스럽던 직위가 하늘에서 땅으로 그것도 지옥의 열가마 속으로 떨어졌구나 생각하니 연민의 정이 간다. 


키가 크고 얼굴이 검으며 다방(터번)을 쓴 인도 병사들도 들어온다. 인도, 버마 국경의 전선에서 항복한 인도군이다. 그들의 숫자는 불과 200~300명인데 음식 문제로 항의가 많다. 이유는 당연히 종교다. 돼지고기는 먹는데 소고기는 안 먹는단다. 또 어떤 이는 밀가루는 먹지만 쌀은 안 먹는다. 다른 어떤 이는 전(인도식 빵인 난을 이야기함)은 부쳐서 먹는데 밥은 안 먹는다한다. 음식 문제가 정말 복잡하다. 그들의 식사라고 하는 전을 한 조각 떼어 맛을 보니 매운 고추와 밀가루가 반반씩 섞여있어 입을 떼어갈 지경이다. 그들은 소수인원인데도 취사장은 서너 군데로 갈라졌다. 거대하게 포장을 둘러치고 울긋불긋 각색의 천 자락을 늘어놓고 촛대 같은 것을 무수히 세우고 가운데는 그들의 신을 안치한다. 무릎을 꿇고 예배와 기도를 열심히 할 때에는 곁에서 총소리가 나도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경지에 이른다. 종교가 민족 발전에 큰 장애물이라고 한 말이 이러한 상황을 이야기함인가.

자카르타 총분견소 안에서 일본군 포로감시원과 호주관리들이 같이 찍은 사진 (호주정부 국가보훈처 https://anzacportal.dva.gov.au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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