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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양현 Jan 11. 2019

위안소 11호실

전범이 된 조선인 포로감시원의 르포르타주

조선인 위안부

휴일에 준대에 설치된 위안소에 가봤다. ‘부대가 가는 곳에 위안소도 간다’는 구호처럼 여기도 이미 여인부대가 들어서 있다. 방이 20여 개나 될까. 방을 배정받은 병사들이 들어갈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준비한 콘돔을 들고 문을 열고 들어가 일을 치른 후 30여분쯤 지나 다시 방을 나올 때의 병사의 얼굴은 야릇하다.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여인이 조선인이라는 것이 알았을 때 나는 아연실색했다. 피지배 민족의 비애가 몸속까지 사무쳤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을까? 정말 돈을 벌기 위해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조국에서는 처녀 징용이라는 말이 떠돌았다. 징용을 당하지 않기 위해 ‘처녀조혼’을 하자는 말까지 떠돌았다. 그녀들은 몽고의 공녀 신세일까? 부대가 가는 곳에는 보국대 소속으로 징용된 조선 여인들이 있으리라. 


물론 군인이 많은 곳에는 원주민, 화교 등으로 구성된 위안소도 있었다. 일본군 입장에서 위안소는 젊은 군인들의 성욕도 만족시키고 사기도 올릴 수 있는 매우 편리한 방법이다. 비인도적 처사임을 자인하면서도 일본 군부는 이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그들은 조선인, 대만인, 만주인, 또는 현지 주민을 착출시켜 그들 군대만을 만족시켜려 한다. 물론 어느 항구를 가도 여인이 있고 고국에도 유곽이 있다. 하지만 황군의 전승을 위하여 희생하는 이 여인들의 모습은 가련함을 넘어서 처참해 보였다. 


침대 곁에 놓여있는 정체모를 과자의 냄새도 야릇하다. 이곳에선 그녀들이 차라리 하늘을 보고 웃으며 광란을 부리면 그것이 정상일지 모르겠다. 이 광경을 처음 목격했던 나는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제는 눈물도 마르고 한숨도 멀어져 버렸다고 하는 게 낫겠지. 하지만 나이 많은 동료들 중에는 그녀들과 잘 어울리며 휴일, 비휴일을 막론하고 위안소를 자주 찾는 이도 있었다.     

동티모르 지역의 위안소 여성들이 해방 후 찍힌 사진이다 (호주 전쟁기념관 소장)

 

위안소 9호실에서

포로감시원 대부분은 낯선 이국 여인의 정취를 좋아했다. 내가 온 곳도 원주민 여인의 위안소다. 문간 매표구에 가보니 일본인 노파가 뚱뚱한 체구로 앉아 있다. 내가 슬쩍 군표(군대가 물품을 구입할 때 쓸 때 쓰던 일종의 화폐)와 표를 바꾼다. 일본에서도 이방면의 사업에 닳고 닳은 여인일 것이다. 노파가 원주민과 화교 중 누굴 원하냐고 묻는다. 내가 대충 아무렇게나 답을 했다. 그러자 그녀가 말했다.

“사람이 밀렸으니 20분 정도 기다려요. 9호실이요”

인도네시아 스마랑 지역 포로수용소에 있던 위안부시설 (https://m.blog.naver.com/chogazip6/220142714080에서 인용)

 

표를 얻은 후 휴게실로 들어가는 도중 호실을 슬쩍 보고 확인한다. 의자에 앉아 호실 문을 바라보고 있는데 난데없이 병사 하나가 혁대를 두 손에 움켜쥐고 방 바깥으로 뛰쳐나온다. 곧바로 방 안에서 한 여인이 문을 반쯤 열고 알아듣지 못한 소리를 크게 지르며 울먹인다. 머리는 산발이 된 채 흐트러져있다. 마담이 방 문을 닫고 병사를 쫓아가며 소리를 지른다. 

“난폭을 부리면 안 돼요. 난폭을 부리면 안 된다고!” 

그러곤 휴게실로 오더니 나에게 말했다. 

“오늘 9호실은 틀렸어요. 11호실로 바꿔줄게. 11호실로 들려요.” 


나중에 다른 이에게 9호실의 상황을 흘려들었다. 병사가 여인의 얼굴을 수건으로 가리고 한쪽 발을 묶어 천장에 매달려는 바람에 여인이 놀라서 그를 밀어낸 것이라 한다. 잠시 후 11호실로 들어갔다. 여인의 얼굴이 너무 까무잡잡해서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엷은 원피스 하나만을 걸치고 있는데 몸이 빈약해 보였다. 테이블 위에는 기름질 된 과자가 예외 없이 놓여있는데 그 기름 냄새가 역시나 야릇했다. 

“너는 어디 사느냐. 어찌 여기 왔느냐. 몇 살이냐. 이름은 무엇이냐.” 

상투적인 문답이 교환된다. 그녀는 뭐라무라하면서 대답을 하고 손가락으로 원을 만들어 보인다. 나는 그 원의 의미를 바로 이해했다. 그녀가 당장 바라는 것은 팁인 것이다. 돈을 아끼고 싶지만, 내 욕망은 이미 이곳으로 와 있다. 이 같은 이율배반이 나를 괴롭게 했다. 일을 치른 나는 명패 없는 이 부대의 문을 뒤로한 채 숙소로 가는 베짜(자전거택시)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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