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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양현 Jan 11. 2019

화란인들이 살던 주택가와 휴양지

전범이 된 조선인 포로감시원의 르포르타주

화란인들이 살던 주택가

화란인이 살고 있는 주택가는 어느 곳이나 아스팔트로 포장되어있고 단장은 야트막한 철망으로 둘러져있다. 문에는 개의 머리를 그려놓은 철판이 하나 붙어있는데 ‘개조심’이라는 경고문구가 적혀있다. 잔자갈을 깐 정원에 들어서면 사각사각 소리를 내었다. 어느 정원이나 예외 없이 크고 다양한 잎을 자랑하는 분재가 네댓 개씩 있었지만 꽃이 피고 있는 화초는 잘 볼 수가 없었다. 본 건물 옆에는 차고가 있다. 현관에 들어서면 응접실이 나오고 바로 옆 복도 양편에 방에는 의자, 침대 등이 잘 정돈되어 있다. 

말랑 거리의 옛 모습 (http://malangcity.com 에서 인용)

배색에도 많이 노력을 기울였다. 유리창과 가림창, 이중으로 만든 창은 납 새시가 잘 붙어있다. 복도 뒤 안방을 지나고 주방을 살펴보면 그 옆에 하녀와 운전수가 기거하는 컴컴한 방들이 반듯이 붙어있다. 하얀 백회 칠을 한 벽에 빨간 기와지붕이 간결한 느낌으로 잘 건축된 주택들이다. 동네에는 테니스장도 보인다. 밤에도 테니스를 칠 수 있도록 백열등까지 마련되어 있다. 


말랑의 화교들

휴일을 이용해 조금 큰 거리로 나가보았다. 멋진 야자나무 가로수가 줄 서있는 고급 주택가 안 정원에는 광택으로 번들거리는 승용차가 두 대가 보인다. 천황폐하의 친척이 전선을 시찰하러 와서 묵는 중이라 한다. 정문에는 초병이 서있다. 주택가를 지나 상가에 접어드니 한산한 상점들이 줄지어 있다. 중국 여인들의 말소리가 요란하다. 상점 하나에 들려 화교와 인사한 후 벽을 보니 왕조명(汪兆銘, 왕자오밍, 난징에서 일본군이 수립한 괴뢰정권의 주석을 역임함)의 사진이 크게 걸려있다. 필시 일본군이 오기 전에는 저 자리에 장개석(蔣介石, 장세스, 항일운동을 주도하던 국민당의 지도자, 후에 대만 정부의 국부가 됨) 사진이 걸려있었으리라. 


이 땅에는 5~6만 명 화교가 산다고 한다. 그들의 할아버지는 명나라 시대에 남으로 남으로 여기까지 흘러내려왔다. 근면과 머리로 부를 일궜고, 어느 촌락을 가도 장사하는 곳에는 반드시 중국인이 있다. 이들은 끼리끼리 돕고 잘 뭉치는 이들이다. 상가를 지나 시장에 들어서니 포목 과자류는 중국인, 과일 야채류는 원주민의 분야다. 


시장을 지나 교외로 나가면 일반인들의 주택이 보인다. 집 주변은 대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암페라로 세운 벽이 에워싼다. 집 구조물 위로 막대를 엮어 서까래를 얹고 빨간 기와에 가는 철사를 꼬아 얽어매어 놓으니 제법 훌륭한 기와집이 되었다. 하지만 하늘에서 소나기라도 내리면 천장에서 물이 새기도 한다. 방바닥의 깔 자리는 아예 필요치 않으며 대나무로 엮은 침대면 족하다. 


정오가 되면 남정네들은 낮잠을 자느라 한참이다. 주택가 주변에는 논들이 있었는데 논갈이가 한창이다. 큰 뿔 두 개가 반원형으로 굽은 물소 두 마리가 쟁기를 끌고 나간다. 농부는 쟁기 위에 옆을 보는 자세로 걸터앉아 소몰이를 한다. 매우 편해 보이는 논갈이다. 일이 끝나면 소는 풀이 우거진 물가에 방치된다. 한 어린 목동이 소의 등에 타고 물장난을 한다. 소는 머리와 등만이 물 위로 나와 있는데 가끔 머리를 물에 처박고 흔들며 재롱을 부린다.      


화란인들의 휴양지와 푸르워다디 식물원

얼마 후 나와 동료는 수용소 바깥으로 파견근무를 갔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가는 도중, 온천이 있는 휴양소에 들렸다. 이곳은 원래 화란인의 별장지이며 관광지로. 테니스장, 당구장 같은 위락시설도 갖추어 놓았다. 해발 1000m에 가까운 높이의 산골짜기에 깨끗한 수십 채의 양옥들이 층계를 이룬 채 조금씩 떨어져 있다. 각 집마다 올라가는 긴 계단과 트랩(Trap, 네덜란드어로 사다리를 의미함)이 눈에 띈다. 백의용사(부상병)들이 천천히 계단을 오르내린다. 좌각에 의지하여 다니는 용사들도 보인다. 위병소에 출장을 가던 도중에 구경하러 왔다고 하니 온천물에 몸이나 씻고 가라 한다. 오랜만에 더운물에 몸을 씻고 두루 구경하였다. 이곳은 장기 치료를 요하는 병사들의 휴양지다. 병사 중에는 폐결핵 환자가 가장 많다고 한다. 모두 평화스러워 보여 전쟁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다


온천지를 뒤로하고, 우리는 1700m의 고지에 있는 식물원으로 향했다. 도보로 몇 시간쯤 올라갔을까. 좌우에는 소나무도 보였다. 조국을 떠난 후 소나무를 보기는 처음이다. 식물원에 들어가면 텅 빈 차고가 바로 보였다. 옆에는 마구간이 하나 있는데 주인 없는 말이 한 마리 보인다. 침실과 주방으로도 들어가 본다. 주인 아닌 주인이랄까? 주방 책임자인 원주민 한 사람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목적지인 사무실에 들어갔다. 화란인 젊은 학자 한 사람이 마중 나와 인사한다. 그의 신분이 포로이기에 우리는 지금 그를 감시하러 온 것이다. 그는 식물의 잎을 따서 가스불에 말린 다음 표본을 작성하고 있는 중이다. 그의 작업은 이해할 수도 없지만 그가 도망할 염려도 없다. 벽에 서양인의 사진이 담긴 액자가 걸려 있는데 누구냐고 물으니 유명 화란인 식물학자라고 대답한다. 식물원에는 고사리 나무가 커서 20년생 소나무 크기만 한 것이 눈에 띄었다. 고개를 돌리니 어디선가 향기로운 목련의 냄새가 난다. 식물원에는 이름도 모를 괴상한 모야의 야자수들과 여러 가지 나무, 약초 등이 재배되어 있다. 10여 명의 원주민 여자들은 식물원 안의 잡초를 뽑는 김매기에 종사한다. 이 정도가 이 고지 식물원의 전부인 것 같다. 


외조부가 파견근무를 한 말랑의 푸르워다디 식물원 (https://www.indonesia-tourism.com에서 인용)

높게 치켜보았던 구름이 이곳에서는 몸을 스치며 간단없이 지나간다. 저녁이면 기온이 사정없이 내려가 모포 두세 장은 덮어야 한다. 낮에는 햇살이 힘을 못 쓰는 듯하나 며칠 지내면 얼굴색은 매우 검어진다. 멧돼지가 가끔 나타나서 도망치는데 총을 겨눌 사이도 없다. 하루는 마구간에서 말을 꺼내어 달려봤다. 말은 온순했지만, 마음껏 달려볼 장소가 없다. 말을 타고 내려갈 때는 수월했지만 올라올 때는 길이 너무 경사져서 말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멀리 국도까지 나가서 하루해를 보내기도 했다. 밀림 속에 들어서면 낙엽이 썩은 채로 두껍게 쌓여있다. 흙을 만져보기가 어렵다. 하늘은 나무에 가려 보이지도 없고 말 그대로 컴컴한 밀림 속이다. 이 땅의 산은 낙엽과 밀림을 덮여있고 들과 해안도 억센 풀과 벌레로 덮여 있다. 낙엽은 사시사철 떨어지지만 새 잎사귀도 사시사철 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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