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양현 Jan 11. 2019

육지를 밟다

전범이 된 조선인 포로감시원의 르포르타주

다시 수송기차를 타고

우리들 중 3분의 1은 싱가포르에 잔류하고 나머지는 9천 톤급 화물선을 타고 과거 화란(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의 자바섬으로 떠났다. 이틀 후, 우리는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의 항구에 당도하였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이 도시는 ‘바타비아(Batavia)’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수십 년 만에 본래 이름으로 돌아온 것이다. 본선에서 전마선(큰 배와 육지 또는 배와 배 사이의 연락을 맡아 오고 가는 작은 크기의 배)을 타고 뭍에 상륙했다. 거의 한 달 만에 육지를 밟은 것이었다. 발을 땅에 내딛는 순간, 지루했던 배안 생활이 옷에 붙은 먼지를 턴 것 마냥 순식간에 잊혔다. 

자바섬의 자카르타에 도착 후 최종목적지인 말랑 포로수용소까지의 이동경로

우리는 수십대의 트럭에 분승하여 숙소로 향했는데 그 행렬이 가히 장관이었다. 밤길의 서치라이트가 비추는 도로는 청결해 보인다. 가로수들이 빽빽이 우거져서 마치 나무로 만든 터널이라 해도 될 법하다. 10여 km쯤 가서 숙소에 도착했는데 오랜 여독이 스스로 풀릴 것만 같았다. 


이튿날, 우리는 다시 각 지대의 수용소로 나뉘어 향했다. 나는 자바섬의 서쪽 끝에서 동쪽 끝 제2의 도시 ‘수라바야(Surabaya)’로 향하는 기차를 탔다. 비교적 일찍 건설된 철도는 일본처럼 폭이 좁은 협궤 철도다. 차장이란 자는 귀를 쫑긋 세우며 무슨 말이든 알아들으려고 힘쓴다. 또 고분고분한 자세로 우리들의 편리를 봐준다. 기관차는 석탄 대신 장작을 태우는데 화력이 좋은지 제법 잘 달린다. 창밖으로 얼굴을 내밀면 매연이 심하여 콧구멍이 새카매진다. 열차에는 1,2,3 등급이 있는데 우리는 1등 칸에 탑승했고, 3등 칸은 철망으로 둘러져 있다. 3등 칸은 주로 과일장사들이 많이 타는데 이들은 막대의 양끝에 바구니를 매단 것을 어깨에 맨 채로 타곤 한다. 물론 요금도 싸다. 


환호하는 현지인들

목적지에 당도하자 사람들이 모여든다. 말은 통하지 않는다. 이들은 엄지손가락을 추켜들고 흔들어대며 ‘닛뽄’이라고 외쳐댄다. 일본군이 제일이라는 뜻일 것이다.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이라고 의사를 표시한다. 달리는 기차에도, 기차가 쉬어있는 정거장에도 전투모와 군인만 보면 도처에서 손을 흔들어댄다. 실로 지금 이 땅은 환호의 일색이다. 일본군은 해방자이며 원수를 몰아낸 자이며 천사다. 이들에게는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 수백 년 만에 일어났던 것이다.


범선을 타고 들어온 서양인들이 총포를 쏘아대며 위협했을 때에도 이곳의 민간인들은 경악하며 소동을 벌였을 것이다. 그때의 대소동과 다를 바 없지만 지금은 환희의 절정이 가득한 즐거운 소동이다. 일본군이 이곳을 침공한 후 첫마디는 이랬다.


“우리는 동조동손(同祖同孫)이다. 봐라. 피부색이나 골격이 같지 않느냐. 이 땅의 조상들은 일본 열도에서 떠내려 와서 생겼다. 이제 신군(神軍)이 너희를 구조하러 왔으니 모두 일상의 업무에 충실해라”


똑같이 점령지가 된 중국과 비교해 이곳에서 일본군이 할 일은 너무나도 다르다. 중국에서는 선무(宣撫, 점령지 주민들의 민심을 안정시키는 일)를 위해 갖은 애를 써야만 한다. 밀정을 풀어 반란자를 색출하고 한편으로 신질서 대동아공영권을 운운하며 프로파간다를 퍼뜨리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여야만 하는데, 정작 이곳은 다들 낮잠만 자고도 일들이 잘만 돌아갔다. 


온갖 진기한 풍물들

기차가 중간도시 ‘세마랑(Semarang)’을 거쳐 ‘수라바야’에 이르는 동안 열대의 온갖 풍물은 진기했다. 벼를 심은 논이 도처에 보였는데 어떤 곳은 산 중턱, 또 어떤 곳은 산꼭대기까지 가느다란 논두렁이 장관으로 펼쳐져 있다. 논갈이나 써레질은 어떻게 할까 궁금했다. 한쪽 논의 벼는 누렇게 익었고 그 옆 논에서는 모내기가 한창이다. 또 다른 논은 벼이삭을 모가지만 끊은 채 볏짚단이 가득하다. 이곳의 벼농사는 1년에 2번 반이나 수확을 한단다. 


산에는 고무나무가 잘 정돈되어 서있고 커피나무, 약나무, 이름 모를 활엽수도 잔뜩 보인 다. 끝도 보이지 않는 넓은 사탕수수 밭 사이로 수수대를 만재한 간이 열차가 엄청난 짐을 싣고 지나간다. 목적지는 설탕공장이다.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설탕 생산국이라 한다. 강과 시냇물은 거무충충하고 바닥이 잘 보이지 않는다. 낙엽이 썩어서 거름물이 되고 강으로 흐르니 논으로 물을 대면 그것이 곧 비료물이다. 


‘수라바야’의 역 안 열기가 대단하다. 해양성 열대기후 특성 때문에 낮 기온은 28도 정도를 유지해고 바람도 자주 불어 지낼 만도 하지만 역 안은 찌는 듯 덥다. 우리는 이곳에서 다시 고원지대이자 화란인의 별장지였던 ‘말랑(Malang)’으로 향한다. 나무를 연료로 때는 열차는 경사진 철도를 잘만 달린다. 바깥을 내다보니 깊은 계곡과 능선을 가로질러 철근으로 대충 엮어놓은 다리가 많기도 하다. 깊은 곳은 30~40m나 될까. 정말 길고도 높은 철교다. 여기서 열차가 굴러버리면 어떻게 될까. 발끝이 오싹하다. 과연 얼마 안 가서 보니 철교 옆으로 정말 기관차 하나가 나자빠져있다. 


드디어 말랑수용소에 도착하다

두 시간 남짓이나 달렸을까. ‘말랑’ 역을 내리니 고원 특유의 쾌적한 기온이 우리를 맞이 한다. 앞에는 번번한 들판이, 멀리는 웅장한 산들이 이곳을 둘러싸고 있다. 인구 5~6만의 이 도시가 우리의 근무지다. 주택가 주변으로 야자수가 보기 좋게 늘어져 있고 정원의 잔디밭도 잘 정돈되었다. 좋은 별장은 장교들의 숙소가 되었고 우리도 제법 좋은 양옥을 배정받았다. 베란다에 앉아 고개를 굽어 아래를 보니 소리 내어 흐르는 계곡물이 바위에 떨어지면서 허연 안개를 이룬다. 오후 3시쯤이면 스콜이 몰려오는데 나뭇잎에 떨어지는 소리와 빗줄기가 어우러진 것이 듣기 좋은 쌍주곡이다. 이 지방은 매일 오후만 되면 멀쩡한 날씨에도 난데없이 스콜을 퍼붓는다. 한 20분이나 될까. 그것만 지나가면 시치미를 뗀 듯 날씨가 멀쩡해진다. 비만 오면 지나가던 행인은 모두 멈추고 마차도 쉰다. 우산은 애당초 있지도 않다. 우기와 건기가 반반인데 지금은 우기다.


포로수용소에 가보니 교대할 부대가 왔다고 다들 즐거워한다. 포로감시요령을 약식으로 알려주고 인원점검을 대충 마친 후에는 무용담을 늘어놓는다. 우리는 후배이기 때문에 이들이 떠드는 소리를 잔말 않고 경청할 따름이다. 한 포로감시원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실로 격전이 펼쳐졌지. 하지만 총을 빵빵 쏴대면 가는 곳마다 떼 지어 두 손 들고 나왔지..”

 선배 포로감시원의 말로는 이곳에서 5천여 명을 무장해제시켰다고 한다. 다른 포로감시원이 의기양양하게 이야기를 더 보탰다.

“가는 곳마다 비단 더미를 갖다 놓고 잠을 잤고 양주가 창고에서 콸콸 쏟아져 나오는데 원 없이 마셔댔지”

나는 맞장구를 쳤다.

“참 잘 싸우셨네요.” 

그러자 포로감시원이 대답했다.

“하지만 우리도 몇 달 지나니 슬슬 지겨워졌어. 우리는 태평양의 다른 섬으로 간다고 하는데 아마 운이 또 따르겠지. 하나 알려주자면 여기 포로들은 아주 온순해. 온순하다 말고” 

나는 그가 이동한다는 말에 행운을 빌어주었다. 

“선배님의 무운장구를 빌겠습니다.”

이전 03화 우리의 정체, 포로감시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