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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검 작가 Jul 13. 2024

트라우마로 인한, 소리에 대한 예민함

폭력적인 소리가 나를 예민하게 만들었다

나는 소리에 예민하다. 그중에서도 성인 남성이 고함치는 소리에 무척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고함 소리나 혹은 어머니와의 다툼 소리가 내게는 큰 트라우마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아픔은, 내가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영향을 끼쳤다.


일을 할 때만큼은, 아무리 성인 남자라 할지라도 아버지가 아니다, 저 사람은 전혀 다른 사람이라 그렇게 되새기며 스스로를 다독이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애썼지만, 막상 그러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됐을 때는 나도 모르게 두 손이 덜덜 떨렸고 온몸이 경직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말까지 얼버무리게 되니 상대방의 눈에 나는 그저 모자란 사람으로 비치는 경우가 다반사였을 것이다.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애써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양 볼과 목구멍이 따끔거리거나 꽉 막히는 듯한 기분을 느껴야 했지만 적어도 상대방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만큼은 컸었다.


사실, 여전히 내게는 상황을 분리해서 인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호통치는 모습을 보거나 들을 때, 혹은 내가 겁먹을 상황에 놓여있을 때는 내 생각이 보다 빠르게 과거의 아버지의 모습과 겹쳐 보이게끔 만든다. 자꾸 나에게 ‘공포심’이란 감정을 느끼게끔 하고 회피하게 만드는 것이다(물론 매번 회피하고 싶다고 해서 회피한 적은 없고 그런 상황을 겪고 지나간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나는 나 자신이 무섭다. 고함치는 소리, 절규하는 소리, 그리고 폭력을 당한 경험까지. 이런 경험들을 겪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겐 절대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 나는 절대 부모님처럼 행동하지 말아야지 하며 다짐을 하며 지내다가도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나 혹은 상황이 닥치면 나도 모르게 불같이 화를 내거나 공포에 어린 분노가 차오르기 때문이다. 괴물이 되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하지만 때때로는 그게 잘 안 되고 잘 참아지지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무서운 것이다. 내가 아닌 전혀 다른 사람이 될까 봐.




소리에 예민한 탓인지 평소에 집에서 TV를 보지 않는다. 유튜브도 잘 보지 않는다. 릴스마저 대부분 음소거하여 듣는다. 혼자 있을 때 보는 거라곤 소리 없이 인스타를 보거나 다른 플랫폼을 보던지, 아니면 책을 보거나 혹은 조용히 사색에 잠겨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물론 필요에 따라서 소리를 켜고 영상을 볼 때도 있긴 하지만 듣지 않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하루를 보낼 때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와의 만남을 가졌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소리에 피로함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집에서만큼은 아무런 소리도 듣지 않고 조용히 지내는 걸 선호한다. 음악조차도 집에서만큼은 귀를 쉬게 하기 위해 잘 듣지 않는다.


사회에는 과한 소리들이 참 많다고 느낀다. 지나치다고 느낄 정도로 과한 정보성 이야기, 또는 비판적이거나 비난적인 이야기, 그리고 나를 위한다지만 내가 듣기에는 그저 잔소리나 소음처럼 들리는 이야기들까지. 때때로 이 모든 것들이 극과 극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런 소리들을 듣고 있노라면 어릴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끊임없이 아버지가 나를 가르치려 하셨던 말씀들, 그리고 끊임없이 나에게 다그치거나 화를 내셨던 장면과 소리들이 들려오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소리를 끈다. 들려오는 백색소음을 제외하고 그저 가만히, 최대한 사람의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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