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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검 작가 Jul 11. 2024

‘끼리끼리’란 말이 싫다

‘폭력’이란 아픔을 가진 나와 또 다른 사람들

나는 ‘끼리끼리’란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다른 경우의 수보다도, 비슷한 ‘아픔’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 곁에 많다는 건 때로는 슬픈 일이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세상에 아프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누구나 하나쯤은 말 못 할 어려움이나 아픔이 있기 마련일 거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비슷한 아픔을 겪었고 상처가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이 겪었을 고통이 가늠이 되지 않아 무슨 말을 하며 위로를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 정확히 말하자면 무슨 이야기를 해줘야 하는지를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그들의 이야기에 귀담아 들어줄 뿐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그들이 말하는 상황과 내 과거가 겹쳐 보이고 또 그 당시 그들이 겪었을 아픔과 공포가 과거의 어린 나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부모님의 싸움이 무서워 경찰에 신고한 적 있는 사람, 부모님의 폭력에 병원 신세까지 져야 했던 사람, 자해를 해본 사람, 약을 먹으며 치료받은 적이 있는 사람 등.


그동안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나오며 다양한 아픈 이야기들을 들어왔다. 사랑을 받아본 사람보다 사랑을 아프게 받아본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다. 한편으로는, 이들이 받은 게 과연 사랑이라고 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내게 아픔을 털어냈던 사람들은 더욱 꿋꿋하고 강인하게 살아가고 있다. 과거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지만, 현재와 미래에서만큼은 자신의 삶을 개척해 가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종종 가까운 듯 가깝지 않은 듯한 곳에서 그들의 삶을 바라본다. 비록 힘든 과거가 있었지만 지금의 그들의 얼굴에는 때때로 웃음꽃을 피우며 살아가고 있다.


지울 수 없는 아픔이고 상처이고 과거이지만 그들의 삶을 조용히 응원한다. 또한, ‘끼리끼리’란 말의 의미가 오히려 더 강인한 사람들의 어울림이란 의미로 나 역시도 더욱 굳세게 아등바등 살아볼 것이다. 살아 숨 쉬고 있는 한, 인생의 끝자락에서는 누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니까.





나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게시했던 글이다. 아픔을 겪어보고 그 아픔을 아는 사람들의 심정을, 서로서로 이해하고 보듬어줄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쓴 글이었다. 언젠가 꼭, 여기 브런치에도 올리고 싶었던 글이라 이제야 캡처해서 함께 글에 녹여 발행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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