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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A Jun 14. 2021

30살 캐나다 이민 이야기

워홀에서 이민까지 3년 반의 시간




 2016년 봄, 그 당시 다니던 회사를 통해 알게 된 언니가 있다. 안정적인 직장에서 좋은 연봉으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여자라는 공감대 덕에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느 날 퇴근 후 둘이서 술을 한잔 하게 되었다. 서로 조금씩 취해 긴장이 풀어졌을 때쯤 언니가 놀라운 이야기를 했다. 곧 직장을 그만두고 캐나다로 워킹홀리데이를 간다고. 너무 깜짝 놀라서 이유를 물어봤다. 언니는 한국은 야근이 너무 많고, 삶의 여유가 없다고. 가서 직장 스폰을 받아서 영주권도 따고 평생 살 거라고 했다. 그때는 언니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 모든 걸 내려놓고 타지에서 새로 시작한다니. 이제 와서 영어는 어떻게 할 것이며, 부모님을 비롯한 한국의 일들은 또 어떻게 하려고 하지.



 그 해 여름, 내가 생각지도 못한 일로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배신당했다는 충격이 너무 커서 이직은커녕 앞으로 인생에 대한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집에는 출장 간다고 이야기를 하고 비행기표를 사서 유럽으로 여행을 갔다. 베를린에서 두 달을 머물면서 백수로 한가로운 나날을 보냈다. 아침에 일어나서 카페에 가고, 물건을 사러 다니고, 밥을 먹으러 식당에 가다 보니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서빙을 하시는 할아버지도 계셨고, 타투가 가득한 손으로 만든 커피를 건네주면서 환하게 웃어주는 바리스타도 있었다. 모두 활기차고, 여유 있어 보였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곳. 직업의 귀천이 없고, 일보다 개인 삶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가 있는 곳. 이 곳에 더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모아 놓은 돈이 떨어지고, 비자 없이 있을 수 있는 기간도 끝나갔다. 여기서 일을   있다면  머물  있을 텐데. 그때 그 언니가 생각났다. 30살 이전이면 갈 수 있다는 워킹홀리데이. 대학생 때도 고려 안 해본 외국살이를 처음 결심했다.






 다음 해 1월 랜덤으로 추첨되는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비자가 나왔다. 운이 좋았다. 영어학원을 등록하고 돈을 모았다. 직장 생활을 3년 가까이했지만 모아놓은 돈이 100만 원도 없었다. 월급을 받는 대로 다 쓰면서 살아왔다. 알바를 구하고, 외주로 일을 몇 개 받아서 하면서 약 250만 원을 모았다. 모두 환전해서 2017년 7월 캐나다행 비행기에 몸을 싫었다. 무슨 일을 할까 하다가 서빙 일을 하면 팁을 많이 받을 수 있다기에 웨이트리스로 취업을 했다. 할로윈과 크리스마스를 즐기고, 미국으로 여행도 한번 다녀왔다. 아직 영어가 많이 늘지 않았는데 1년짜리 비자가 끝나갔다. 비자 연장을 지원받기 위해 한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주공사와 계약을 하고 이민 상담을 받았다. 나이(만 30살 미만), 학력(4년제 대학), 한국 경력(3년 이상), 현지 경력(2년), 영어 점수(IELTS 평균 6.5)가 있으면 특정 직업군으로 이민이 가능하다고 했다. 현지 경력을 만들면서 조금씩 정착해가기 시작했다. 저축이 조금씩 생기고, 집도 더 편한 곳으로 이사를 갔다. 새로운 취미가 생기고 남자 친구도 생겼다. 2019년 2월, 신청한 비자가 너무 늦게 나와서 한국에 잠시 다녀왔다. 가족, 친구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다시 캐나다로 돌아왔다. 영어 시험을 계속 미루면서 하루에 잠깐 일하고 나머지 시간을 노는 삶을 즐겼다. 자전거를 타고 공원에 가서 음악을 틀어놓고 누워있거나, 룰루레몬에서 주최하는 무료 야외 요가 수업 가곤 했다. 이별을 크게 겪으면서 매일 집에 혼자 누워 울던 달들이 있었다. 2020년 1월 드디어 IELTS 점수를 만들어서 영주권 신청을 했다. 3월 코로나가 확산되면서 백수가 되었다. 6월, 직장에 복귀했지만 코로나로 인해 영주권 심사가 미뤄지며 기약 없는 기다림이 지속됐다. 일이 너무 힘들어져 매일 밤 뜨거운 샤워를 하고 침대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2021년 1월, 드디어 영주권이 나왔다.  



2020년 5월. 밴쿠버

  




 처음 캐나다에 와서 얻은 집은 다운타운에 있는 콘도 건물이었는데, 방 2개 화장실 2개인 집에 6명이 살았다. 큰 방에 일본인 커플이, 작은 방에는 한국인 친구 2명이, 큰 거실을 일본인 아줌마와 내가 나눠서 사용했다. 거실 중간에 커튼을 쳐서 공간을 나누는 구조라 서로의 소리를 들으면서 생활했다. 그래도 집세가 한국돈으로 40만 원 정도 했다. 그 해에는 조금이라도 더 저렴한 마트에서 장을 보기 위해 한 참을 걸어간 뒤, 또 한참을 고민해서 물건 하나하나를 카트에 담았다. 그리고 $5이 넘어가는 물건은 담지를 못했었다. 자연스럽게 채식을 시작했다. 고기는 너무 비싼 사치품이었다. 캐나다는 모든 공산품이 너무 비싸고, 결제 시에 내야 하는 물건 가격의 12% 정도 되는 세금 때문에 물건 사는 게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한국인 커뮤니티에서 중고로 물건을 샀다. 커뮤니티에는 먹던 조미료나 사용하던 화장품을 사고파는 사람들도 있었다. 가계부 어플을 다운받아서 집세, 식료품비, 교통비, 외식비 모든 것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아끼고 아껴서 모은 돈은 이주공사 계약비, 정부에 내는 이민 비용, 영어 학원비 등으로 나갔다. 그래도 새로 사귄 친구들과 맛집을 찾아다니며 살이 좀 쪘다. 술을 잘 마시지 않게 되었다. 식당이나 바에서 마시는 술을 세금과 팁을 더하면 너무 지출이 커서 마시는 횟수가 줄었더. 정신적으로 힘든 일이 없어지니 집에서도 술을 찾는 일이 없어졌다. 대신 베이킹을 새로운 취미로 갖게 되었다. 쉬는 날에는 식료품점에서 파는 병아리콩 밀가루, 렌틸콩 가루 같은 신기한 재료들을 사다가 이것저것 만들어 보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생활환경이 바뀌니 성격이나 행동도 바뀌어 갔다. 필요한 물건이 있어도 어디에서 파는지 모르거나 배송비가 비싸서 잘 사지 못하니 상대적으로 미니멀리스트가 되었다. 일은 스케줄제 이기 때문에 하루에 4시간 일하는 날도 있었고, 중간에 쉬는 시간을 갖고 8시간 일하는 날도 있었다. 일이 끝나면 집에 가서 샤워를 하고, 밥을 해 먹고, 넷플릭스를 봤다. 몸을 쓰는 일이었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주어진 업무에 집중하다가 시간이 끝나는 순간 뒤도 돌아보지 않고 퇴근했다. 하루하루에 집중하는 삶이었다.



 3년 반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나니 미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한 달 벌어서 한 달 사는 게 아니라 큰돈을 벌어서 차도 사고, 집도 사고 싶다는 욕심도 생긴다. 소비도 달라졌다. 중고 제품이 아니라 깨끗한 새 제품을 사게 된다. 한국에 있을 때 마인드로 돌아가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인터넷 쇼핑도 늘었고 가지고 있는 물건도 상당히 늘어났다. 이제는 생존이 아닌 웰빙의 문제를 마주하고 있다. 3년 전에 정말 한마디도 하지 못했던 영어는 하고 싶은 말을 표현하는 정도까지 가능해졌다. 하지만 아직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는 단어들 때문에 의사소통이 원활히 되지 않을 때가 많다. 또한 일어난 일을 자세히 설명하거나, 의견을 물어보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할 때는 모르는 단어들 때문에 문장이 짧아지고 점점 입을 다물게 된다. 어차피 지금부터 평생을 공부해도 원어민 수준의 대화를 하기는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매일 마주하게 되는 언어의 장벽에 기운이 빠지는 건 사실이다.


 처음 워킹홀리데이를 떠날 때를 돌이켜보니 감사하게도 가장 얻고자 했던 것을 얻었다. 바로 완전한 독립. 20대 후반에 한국에서 마주했었던 결혼 그리고 안정된 직장에 대한 부모님의 기대, 사회적인 시선에서 벗어나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올해는 돌아오겠지, 내년에는 돌아오겠지 기다리던 부모님도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인정하시고 마음을 내려놓으셨다. 눈앞에 보이지 않으니 언제 결혼할 거냐고 물어볼 수도 없고, 무슨 일을 하고 사는지 알 방법도 없다. 부모님께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혼자 이뤄낸 것에 대한 뿌듯한 마음이 더 크다. 삶의 방향을 스스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냈으니 말이다. 지금은 부모님에게 외국에서 맛있는 것도 못 먹고사는 불쌍한 딸로 포지셔닝된 것 같다. 역시 떨어져 있으니 관계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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