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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A Aug 01. 2017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면서.

인생 3막 1장



이것을 도피라고 해야 할지

새로운 도전이라고 해야 할지

아직 판단을 내릴 수 없다.



팩트는 대학생 신분도 아니고,

서른이라는 나이가 두 팔 벌려 손짓하는 28세의 한 회사 부적응자가

1년 치 짐을 싸서 10시간이 넘는 비행길에 올랐다는 것이다.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타지에서 1년간 살다가 돌아오겠다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가 비록 나쁜 단어와 결합해 불리기도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고, 평생을 바라보고 자리를 잡아야 하는 곳이고, 음식 교통수단 문화 모든 것들이 너무도 익숙해서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함을 주는 곳이 아닌가.



지난 1년 사이에 나는 정말 많이 바뀌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소한 것 같으면서도 사소하지 않은 사건들이 있었고,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의 순서가 달라졌다. 원래와 다른 성향을 가지게 된 것인지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성향이 표출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사회가 바뀌고 있어서 인 것 같기도 하고, 주위에 '행복'이라는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서 인 것 같기도 하다. 더 이상 미래를 위한다는 명목 하에, 밤늦게까지 야근하면서 돈을 버는 직장인의 모습을 부러워하는 사람을 찾기 힘드니까 말이다.





아직 창 밖 너머가 너무도 궁금하다.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게 된 가장 큰 계기는 작년, 두 달이 조금 넘게 머물던 베를린에서의 생활이다. 아침부터 밤까지 여유로운 분위기와,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삶. 본질에 집중하고 돈보다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삶이 내가 살고 싶은 삶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서른이 되기 전에 한 번쯤은 아는 사람이 없는 타지에서 혼자만의 삶을 꾸려보고 싶었다. 부모님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내가 이전에 어떤 학교를 나왔고 어떤 직업을 가졌는지 별로 궁금해하지도 않고, 화장을 하지 않거나 유행하는 옷을 입지 않아도 어떤 선입견도 없이 '나 자체'를 바라봐줄 수 있는 곳에서 오롯이 혼자 살고 싶었다. 여행을 하면서 잠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생활할 수 있는 돈을 벌고, 매일 보는 동료 또는 이웃이 생기고, 넓은 세상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지만 나에게는 새로운 것들에 적응하면서 씩씩하고 힘차게 사는 삶을 말이다.




그리고 더 이상 회사 생활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것도 이 선택에 힘을 보탰다. 이 브런치를 시작하고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좋아하는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고정적인 스케줄과 수입을 유지하고, 프로젝트 건으로 수입을 버는 프리랜서로 먹고살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미래를 준비하는 삶보다는 하루하루의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이기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안정적이지 못하다. 또한 유난히 여자 나이 서른을 결혼이라는 사회적 관습과 엮어서 생각하는 한국 사회의 시선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물론 4년 간 쏟아부은 등록금이 아깝고,

한국 사회에서 남들 다 하는 사회생활과 가정생활을 하길 바라는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 죄송하고,

좋아 죽을 것 같은 남자 친구를 한국에 남겨두고 떠나는 것 때문에 출국 일주일 전부터는 눈이 퉁퉁 부어서 다녔다.

하지만 결국 인생은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인 것을.

생각했던 것처럼 풀리지 않고, 마음이 단단하지 못해 일찍 포기하는 일이 발생하더라도 해보는 것이 안 해보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그것이 불완전한 언어로 일단 부딪혀야 하는 외노자의 삶일지라도.






캐나다 워홀을 간다고 했을 때 가장 많이 들은 질문들에 대한 답변



>> 캐나다를 선택한 이유


 사실은 유럽에 가고 싶었는데, 유럽에 가면 영어 외 한 가지 언어를 더 해야 하니까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 영어권 국가 중에 고민을 했다. 캐나다는 도깨비 촬영 장소인 '퀘벡'처럼 유럽 느낌이 나는 도시가 즐비한 국가고 다문화 사회이기 때문에 인종 차별이 없다. 자연이 도처에 있으면서 우리가 어렴풋이 상상하는 미국 도시의 분위기도 물씬 느낄 수 있다. 마침 작년 가을 내가 귀국한 시점이 캐나다 워킹홀리데이의 신청기간이었고, 모든 서류 작성 방법을 친절하게 한글로 알려주는 네이버 카페 덕분에 어렵지 않게 신청을 마칠 수 있었다.




>> 캐나다 워홀 프로세스


 국가별로 워홀 선발 기준이 다른데, 캐나다는 랜덤으로 선발되는 방식이다. 온라인 사이트에서 간단한 서류를 작성해서 신청을 하면 1차 선발자들에게 invitaion이라는 초대장이 오고, 신체검사 범죄기록 이력서 가족관계 등의 서류를 작성해서 보내면 최종 합격자가 선발된다. 합격 레터가 오는 기간은 정해져 있지 않아서 신청한 지 1달 만에 합격 레터를 받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6개월이 넘어서 받는 사람도 있다. 합격 레터에 쓰인 기간으로부터 1년 안에 캐나다에 입국하면 입국한 날로부터 1년이라는 워킹 비자가 주어진다.




>> 가서 무슨 일을 할 것인지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는데 왜 나가냐. 가서 무슨 일을 할 것이냐. 이 질문을 가장 많이 들었다. 나는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해외 취업이 돼서 나가는 게 아니기에 레스토랑에서 서빙을 하거나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는 것을 1차 목표로 생각하고 있다. 한국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하는 일을 잘 하는 건 맞는데, 좋아하는 일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좋아해 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좋아지지가 않더라. 다시 조직 생활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정을 줬다가 상처받는 일을 하고 싶지도 않고, 내 일이 아닌 일이 내 인생을 좌우하는 것처럼 나를 다 쏟아붓고 싶지도 않다. 일이 주던 성취감이나 사회적 지위, 자아실현의 욕구들 때문에 더 이상 나 자체를 버리고 싶지는 않다.




>> 가기 전 어떤 준비를 했나


 첫째는 영어. 둘째는 돈이다. 보통 6개월 이상 하루 종일 수업과 그룹 스피킹이 있는 영어학원을 다니면서 준비를 하는 게 일반적인데 나는 시간이 부족했다. 여름에 출국하는 일정을 짜고 제대로 영어 공부를 한 건 약 1달이 조금 넘는 시간이었다. 막판에 돈을 벌려고 외주를 무리해서 하다 보니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학원 수업보다 유투브팟캐스트에서 상황별로 쓸 수 있는 영어 표현 패턴을 입으로 내뱉는 연습을 많이 하려고 노력했다.  




>> 가기 전에 한 일들 그리고 든 생각들


 사실 나는 29인치 캐리어 하나, 기내 반입용 20인치 캐리어 2개라는 간소한 짐을 쌌다. 옷은 약 10벌, 화장품은 쓰던 것들 그대로, 음식은 사놓고 미처 먹지 못한 크림수프 한 봉지랑 쌀로 만든 핫케이크 가루 딱 2개를 챙겨 왔다. 태어날 때부터 매운 음식을 먹지 못해 고추장, 고추 가루랑 사이가 좋지 않고, 주식이 빵인 식성이라 라면도 김도 챙길 필요가 없었다. 필요한 물건은 가서 사고, 올 때 다시 중고로 팔고 오던가 혹 없으면 없는 대로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해야지 라고 생각했다. 신기하게도 출국 일정에 맞춰서 집에서 쓰던 샴푸, 바디로션, 먹던 시리얼 등이 바닥을 보여서 집에 있는 물건들도 다 정리하고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시간을 쪼개서 가기 전에 사람들을 한 번씩 만났다. 그들은 정말 미안하고 고맙게도 내가 1년 동안 잘 지내기를 바란다면서 소중한 선물을 한 가지씩 안겨주고 갔다. 출국 전날은 점심시간에 내가 있는 곳까지 찾아와 향이 좋은 바디 용품을 주고 간 학교 후배와, 출국 날 집 앞으로 찾아와 비타민과 함께 내가 좋아하는 '라라 랜드' 속 한 구절을 쓴 캘리를 주고 간 15년 지기 친구도 있었다. 남자 친구와도 출국 전 마지막으로 같이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고, 지인이 여름 동안 해녀학교를 다니기 위해 빌린 제주도의 집에서도 두 밤을 머물면서 시간을 보냈다.


잊지못할 고마운 선물들을 사진으로 남겨본다.




 문제는 캐나다에서 쓸 생활비를 조금 더 벌기 위해 마지막으로 한 외주 일이었다. 약 20일 동안 사무실로 출근하면서 시작하는 회사를 세팅하는 일이었는데, '출근'이라는 것을 하지 않는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너무나 허무하게도 며칠이 채 지나지도 않아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 1500원인 회사 근처 작은 커피숍에서 매일 커피를 사서 입에 물고, 움직이기 귀찮아서 점심을 시켜먹고, 여러 일이 몰려 결국 야근을 일상처럼 하게 되는 일상]에 금방 다시 적응되는 내 모습을 보면서 소름이 끼쳤다.




'한창 일해야 하는 나이에 어딜 가냐' 혹은 '여기서 편하게 하던 일 하지 뭐하러 가서 힘든 일을 하냐'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태연하게 '저는 외국이 좋아요'라고 대답했지만 흔들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회사 생활 정말 매일 화가 치밀어 오르고, 힘들고, 스트레스받지만 남자 친구랑 서로 위로해주면서 견디면 견딜 수도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평일에 잠깐이라도 얼굴 보면서 안 좋은 일은 잊어버리고, 주말에 함께 어디든 가서 좋은 시간 보내면 삶이 또 살만해 지니까 말이다.




>> 언제 올 건지


 캐나다 워홀 비자는 1년이 주어지고 관광 비자로는 90일 정도를 머물 수 있다. 워홀이 끝나고 미국이나 남미를 여행하고 싶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지만 그때 경제적 상황을 봐야 하기 때문에 확정 지을 수는 없다. 혹은 내가 일하게 될 직장에서 나를 마음에 들어해 워킹 비자를 1년 연장해주는 선행을 베풀어 줄 수도 있지만 그것도 아직은 알 수 없는 일이다. 인생이 불확실한 것 투성이다. 불확실함 중에 하는 많은 선택. 이게 더 좋을지 저게 더 좋을지. 보드레의 말을 인용해본다.




>> 무엇을 기대하는지


 비싸서 잘 사 먹지 못한 캐나다산 '아이스 와인'을 한 잔이라도 더 마셔보는 것. '빨강머리 앤' 소설의 배경인 '프린스 에드워드 섬'에 가보는 것. 영어로도 하고 싶은 말을 유창하게 할 수 있게 되는 것. 너무 춥지 않다면 오로라 투어를 가보는 것.











 작은 캐리어 3개를 차에 싣고 인천공항에 배웅을 나온 엄마는 달러가 든 봉투를 손에 쥐어주면서 "힘든 일은 절대 하지 말고 아프거나 하면 바로 한국으로 들어와"라고 말하며 울먹이셨다. 두 손으로 엄마의 어깨를 꼭 잡으면서 내가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다 잘될 거예요."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이다.








작은 피아노지만 셀 수 없이 많은 곡을 연주할 수 있는 것 처럼 내 인생이 그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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