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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A Aug 13. 2017

밴쿠버에 온 지 한 달이 지났다.

인생 3막 1장



scene #1



 한국 날짜로 7월 12일 오후 3시에 비행기에 올랐는데, 밴쿠버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7월 12일 오전 9시였다. 그 날은 하루를 2번 보냈다. 아주 잠깐 헤르미온느의 기분을 느꼈다.



 7월 12일 이야기를 하면 아직도 가슴이 찡하다. 이 날은 연인과의 기념일이었고, 그의 생일이었다. 많은 여자들이 핸드폰 배경화면에 띄워놓고 확인하는 날짜들에 무신경한 나는 7월 11일에 만난 우리가 자정을 넘겨 12일을 함께 보내고 있을 때 이 사실들을 알았다. 겉으로는 태연하게 "둘 다 기념해야 하니까 나가서 케이크랑 초 사와."라고 말했지만, 헤어지고 집에 와서 한참을 울었다. 내 출국날이 비행기가 가장 저렴한 수요일이라고 했을 때 그가 혹시나 하고 걱정하던 마음이 그려져서, 그가 나에게 출국일을 일주일만 미룰 수 없냐고 물었을 때 별생각 없이 "이미 이것저것 해 놓은 게 있어서, 그건 어려울 것 같아."라고 말했던 나 자신이 미워서. 가장 즐겁게 보내야 하는 날을 혼자 보내게 만든 게 너무 미안해서.


 그래서인지 밴쿠버에서 보낸 첫 주는 눈물을 달고 살았다. 카톡만 봐도 눈물이 고이고, 보이스톡을 하면 서러운 울음이 터져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식욕도 없고, 의욕도 없고, 아름다운 주위 풍경에 아무런 감흥도 없는 상태가 되니 정말 미칠 것 같았다. 그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서 브런치에 글을 하나 썼다가 다음날 발행 취소를 했다. 그 누구의 말도 위로가 되지 않는 그 순간, 마음을 정리하는 글이라도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보니 역시 찌질한 글이었다.








 시간이 약인 것은 아닌데, 시간이 지날수록 괜찮아 지기는 했다. 아니,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임시 숙소를 7월 말까지만 있기로 했던 터라 이사 갈 집을 찾아야 했고, 먹고살아야 하기에 일을 구해야 했다. 출국 전날까지 외주 일을 하느라 손을 놓고 있던 영어도 다시 시작해야 했다. 워홀을 오면 처음에 해야 할 일이 명확히 정해져 있다. 여권 대신 신분을 증명하는 ID카드를 만들어야 하고, 외노자로서 일을 하기 위해 사회보장넘버를 발급받아야 하고, 월급을 받을 은행 계좌를 개설해야 한다. 고맙게도 몇 달 먼저 같은 곳에서 워홀 생활을 시작한 지인이 있어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이게 주소니까, 이것들 챙겨서 오늘 여기 먼저 갔다 와" 이렇게 할 일을 순서까지 정해주니 인터넷 후기를 찾아보면서 하는 시행착오를 겪지 않을 수 있었다. 어디서든, 어떤 상황에서든, 대가 없이 도와주는 이들에게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7월 말까지 지낸 밴쿠버 외곽지역의 숙소.




 임시 숙소는 밴쿠버 외곽에 위치한 버나비라는 지역에 있었다. 이 곳은 교회에서 운영하는 여자 기숙사인데 내가 지내는 동안 나를 포함한 한국인 3명, 중국인 2명 총 5명이 살았다.(여담이지만 신기하게도 이곳에 사는 한국인 여자 셋은 모두 '라라 랜드'를 극장에서 3번씩 본 사람들이었다. 왜 이 여자들은 지금 밴쿠버에 있을까. 나중에 이런 글도 한번 써볼까 한다.) 밴쿠버, 아니 캐나다에는 정말 많은 중국인이 살고 있다. 'Richmond'라는 한 도시 전체가 차이나타운이기도 하고, 유명 대학교의 교실 전체 인원이 선생님을 빼고 모두 중국인인 경우도 있다고 한다. 물론 한국인도 많다. 얼마나 많냐면 SKY TRAIN(우리나라 지하철 같은 교통수단인데, 지상으로 다닌다)을 타면 한 칸에 적어도 1명 이상의 한국인이 있다. 한인타운도 2곳이나 있어서 한국 음식을 쉽게 살 수 있다. 그리고 한국 음식은 현지인 사이에서 굉장히 인기가 많다. '수라'라는 이름의 한식당은 매일 줄을 서야 들어갈 수 있는 정도고, '장모집'이라는 이름의 한식당은 다운타운 내 여러 개의 체인점을 가지고 있다. 이미 많은 한국인들이 타지에서 삶의 터전을 일구고 있어, 더 이상 KOREA를 북한과 연결 지어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은 없다.








Vancouver Public Library


 지금까지 밴쿠버에서 지내면서 가장 많이 갔던 장소는 밴쿠버 도서관(VPL)이 아닐까 싶다. 예쁜 외곽 건물 앞 계단에 앉아 점심을 먹기도 하고 지인을 만나 수다를 떨거나, 내부에 비치된 컴퓨터에서 웹서핑을 하기도 한다. 도서관 카드를 만들면 무료로 와이파이를 쓸 수 있기 때문에 갈 곳이 없을 때 저절로 발걸음이 향한다. 이 곳은 홈리스들이 책을 한 아름 빌려가기도 하는 곳이고, 오후 시간 소파에 앉아 낮잠을 청하는 이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고, 많은 개인 튜터들이 1:1 영어 레슨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도서관 자체에서도 무료로 운영하는 ESL 수업이나 이력서 첨삭, Job interview session 등의 프로그램이 많아 학생들, 취준생들의 집결지가 되고 있다. 도서관이 만남의 장소라니 멋진 일이다.





'밴쿠버' 도시는 바다에 둘러싸여 있다.
그래서 조금만 걸으면 해변이 나온다.



 밴쿠 다운타운은 3면이 바다에 둘러싸인 섬 같은 곳이다. 부산이랑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좋은 점은 육지와 물이 만나는 곳에 모두 해변이 있다는 것이다. 일찍 퇴근한 사람들은 해변에서 비치발리볼을 하거나 수영을 즐긴다. 나도 돗자리를 깔고 하루 종일 이 해변에 누워있었던 날이 있다. 이 해변들 중 'English Bay'와 'Kisilano beach'를 정말 좋아한다. 어쩜 이렇게 예쁜 통나무 벤치들을 가져다 놓았는지 분위기가 한없이 여유로워 보인다.



BBQ 파티.
잔디에 앉아서 먹는 식사.


 그래서인지 밴쿠버의 많은 행사들은 해변에서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나머지는 공원) BBQ파티에 가보기도 하고, 불꽃 축제, 물총 놀이, 요가 클래스 등을 하나씩 접하면서 이 곳의 분위기를 익혀간다. 지금은 1년 중 환상의 날씨를 자랑하는 여름이기 때문에, 해변을 산책하는 것 자체만으로 최고의 하루를 만들 수 있다. 이렇게 좋은 계절에 이곳에 오게 된 것이 올해 나에게 온 복이 아닐까 싶다. 햇빛은 강하지만 바람이 불고, 습도가 없으면서 비가 오지 않는 날씨 속에서 2017년 하반기를 맞이하고 있다.





 


 8월 초, 동화 속에 나오는 것 같은 예쁜 가정집을 떠나 다운타운 콘도 건물로 이사를 했다. 이 집은 도심 번화가 중심에 있는데, 바로 옆 건물이 버버리, 프라다, 토리버치가 있고 건너편에 티파니 앤 코가 있다. 8번째로 다운타운 내 집을 보러 가면서 이 곳에 살면 '티파니에서 아침'을 맞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2평이 조금 안 될 것 같은 거실 공간에 계약을 하고 이사한 첫날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외제차와 소방차 때문에 밤새 잠을 설쳤다.(이곳의 소방차들은 거의 전쟁이 난 것 같은 사이렌 데시벨을 내면서 지나간다. 좋은 일이다.) 이런 날에는 '내가 지금 이곳에서 뭘 하고 있는 거지'하는 현타가 오기도 한다. 워홀러들이 초기에 겪는 우울함이다.





 너무 우울해지지 않으려고 시애틀 여행을 다녀왔다. 밴쿠버에서 시애틀은 차로 3시간 정도의 거리라 당일 여행이 가능하다. 한국 여행사를 통해 가면 캐나다 달러 60불(한국돈으로 5만 원대 초반)에 다녀올 수 있고 여행 코스는 시애틀의 상징인 스페이스 니들 타워, 스타벅스 1호점, 세계에서 가장 큰 지점이라는 스타벅스 리저브, 치즈케이크 팩토리, 프리미엄 아울렛으로 마무리된다.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알찬 일정이다. 스타벅스 1호점이 위치한 'PIKE PLACE MARKET'의 생동감 있는 분위기도 좋았고, 밴쿠버처럼 바다가 바로 보이는 시애틀 시내의 경관도 좋았다. 스타벅스 리저브에서 선물용 컵을 하나 사고, 가방에 욕심이 없으니 아무것도 사지 않을 것 같았던 아울렛에서는 가을 커플 후드와 예쁜 체크 남방을 샀다.






줄이 너무 길어서 입장에만 30분 이상이 소요되는 스타벅스 1호점.
캐나다와 다른 '미국' 분위기가 났던 시애틀.
잔디와 벤치,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들.









 이상하게도 정작 밴쿠버는 관광을 하러 다니기에 마음이 편치 않다. 이곳은 하루라도 빨리 일을 구해서 정착해야 하는 생활터전이기 때문에 왠지 하루 이상 놀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런 생각의 가장 큰 원인은 밴쿠버의 물가다. 밴쿠버의 물가는 절대 싸지 않다. 집값은 물론이고 외식 비용, 식료품 값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비싸다. 특히 요거트, 과일은 유럽에 비해 너무 비싼 편이라 장을 볼 때마다 '좋은 것'과 '싼 것' 사이에서 한참을 고민하기 일수다. 좋은 것을 좋아하던 예전의 나와, 싼 것에 눈이 가는 프리랜서 생활의 내가 충돌하는 상황이랄까. 게다가 모든 물건은 계산 시 별도의 TAX가 붙어서 계산되기 때문에 가격표 외 10% 이상의 비용이 발생한다. 생활비를 벌기에도 급급할 것 같은데 과연 여행할 돈을 모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든다. 하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생각한다. 걱정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이것은 정말 20대 전체를 걸고 내린 결론이다.





일을 구하기 위해 우리나라 잡코리아 같은 온라인 사이트에 '복사, 붙여 넣기'로 셀 수 없이 많은 지원을 하고, 잡페어를 다녀오기도 했다. 어쩌다 인터뷰가 잡히면 밤새 구글링으로 질문, 답변을 준비해서 인터뷰를 다녀오기도 했다. 밴쿠버가 소속된 British Columbia 주에는 'Work BC'라는 취업지원센터들이 있고, 이 곳에서 이력서 첨삭, 무료 프린트 등이 가능하다. 외노자 준비생이지만 '언제나 여유를 가지려고 노력하자'라는 생각으로 하루는 인터뷰가 끝나고 같이 일을 구하고 있는 취준생 언니와 'Granville island'라는 곳에 다녀왔다. 블로그에 너무나 많이 나와있는 관광지인데, 원래 오래된 공장지대였지만 1970년대 개조하여 커다란 마켓을 중심으로 다양한 shop들이 들어선 관광지로 탈바꿈한 곳이다. 신선한 과일과 해산물, 치즈를 살 수 있고 '피시 앤 칩스'나 '조개 수프' 가 유명한 맛집도 위치해있다.



파스타를 아주 조금 사와서 혼자 해먹었다.










 나는 분명 덤벙대는 것은 아닌데, 좀 바보 같은 부분이 있다. 햇빛이 너무 세서 가져온 선글라스를 끼려고 케이스를 열었더니 통이 텅 비어 있거나, 전압이 달라서 한국에서 사용하던 드라이기는 쓰지 못하니 챙기지 말라고 쓴 후기가 인터넷에 널려 있는데도 그 부피 큰 물건을 가지고 오는 행동이나, ID카드 만들 때 Driver License도 같이 할 수 있다는 것이 뻔히 쓰여있는데도 안 하는 행동 같이, 큰 고초를 겪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에게 말하기에 조금 창피한 행동을 많이 한다.


 어이없는 기억도 있다. 레스토랑 해피아워에 5불짜리 칵테일을 주문하면서 물을 먹겠냐고 해서 달라고 했더니 계산서에 칵테일보다 비싼 7불짜리 스파클링 워터가 있었다. 얼마 전에는 세제인 줄 알고 우리 집 세탁기에는 쓸 수 없는 액체 피존을 샀다. 25불이나 주고 일할 때 입을 옷을 샀는데, 한번 입고 다시는 못 입을 것 같다는 판단을 했다. 아무리 신중하게 소비하고, 미니멀하게 살려고 해도 쉽지 않을 때가 많다. 아직 시행착오가 끝나지 않았나 보다. 왜 시행착오에는 항상 돈이 드는지는 모르겠지만, '경험 값'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마지막으로, 캐네디언 문화에 대해 생각하게 된 계기가 하나 있었다.


Movie night

밴쿠버 다운타운 서쪽에는 Stanley Park라는 다운타운 면적과 거의 비슷한 크기를 자랑하는 공원이 있는데, 여름 기간에는 매주 무료로 영화를 상영한다. 각종 푸드 트럭과 스폰서 기업의 이벤트 등이 난무하는, 서울에서도 많이 보던 행사다. 이날 본 영화는 'Beauty and the Beast'의 애니메이션 판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깜짝 놀랐던 부분은 이 곳에 있는 남녀노소 모두가 이 애니메이션 속 노래를 다 외우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노래뿐 아니라 캐릭터의 모든 대사를 외워서 크게 더빙해주는 청년도 있었다. 또 마치 연극을 보는 것처럼 영화 중간중간 중요한 장면이 끝날 때마다 관객들이 모두 박수를 치거나 휘파람을 분다. 같이 간 일본인 친구가 저번에 다운타운에 있는 영화관에 갔는데 그곳에서도 영화상 영도중 관객들이 박수를 쳐서 깜짝 놀랐다고 했다. 감동받을 만한 좋은 순간은 바로 표현하는 건가 하고 생각해본다.







 

 교회에서 하는 행사에 갔다가 선물로 화분과 선인장을 받아왔다. 무수한 식물을 저세상으로 보낸 경력이 있던 차라 받아오는 것이 망설여졌지만, 왠지 이 식물들이 잘 자라면 이 곳에서 나의 일상도 잘 지내 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사할 때는 레옹에서 마틸다가 그랬던 것처럼 한 손에 소중하게 이 아이들을 안고 왔다. 동그란 구멍이 뻥뻥 뚫린 선인장을 보고 남자 친구가 내가 그에게 해줬던 펜네 파스타가 생각난다는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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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2에는 진정으로 외노자가 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이곳에서 연재할 1년간의 글에도 많은 애정과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예전처럼 직장 생활, 취미 생활에 관한 글도 지속적으로 업로드할 예정입니다. 작가의 서랍에 넣어놓고 마무리하지 못한 글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어요. 요새 한국에 열대야와 비가 번걸아서 신경질을 부리고 있는 것 같던데, 씩씩하게 이겨내시길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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