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NA Oct 17. 2017

안녕, 어떻게 지내?

Hi. How are you?



Scene #2



  처음에 내가 가게 동료들에게 어색한 표정으로 'Hi.'는 인사를 건넸을 때, 그들은 'Hi'와 함께 'How are you?, How are you today?'를 붙여서 답해줬다. 안녕, 오늘 어때?



요새 하루를 통틀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장담컨대 'Hi. How are you?'가 틀림없다. 매일 출근해서 모든 동료들에게 한 번씩 하고, 손님들에게도 가장 먼저 건네는 말이기도 하다. 사실 손님들이 가게 직원인 나에게 먼저 건네서 당황하기도 했지만, 언제나 대답은 'Good.'이다. 이곳에서 나는 매일 만나는 사람들에게 잘 지내고 있는지 묻고, 잘 지내고 있다고 대답한다. 정말 잘 지내고 있다.





 번화가에 있는 이태리 레스토랑에 Hostess job을 얻었다. '한식당에서는 일하지 말아야지'라는 초기 결심을 지키기 위해 많은 현지 카페, 레스토랑에 이력서를 내고 면접도 몇 번 봤지만 합격되는 곳이 없었다. 온라인 구인 사이트 여러 곳을 가입해 'Server job'을 지원하고, 프린트한 이력서를 가지고 직접 가게를 찾아가 이력서를 두고 오기도 했다. 밴쿠버는 아직 이력서를 오프라인으로 내라는 곳들이 더 많다. 지금 일하는 가게는 그렇게 낸 이력서를 통해 구하게 된 곳이다. 밴쿠버 시내에만 벌써 3개 지점을 소유한 이태리 여자 사장님은 나를 처음 보자마자 '최저시급 + 팁, Okay?' 던졌고 당황한 내가 영어를 얼버무리자 영어가 유창하게 되지 않으면 'hostess로 먼저 일을 시작해'라는 답을 줬다. 인터뷰랄것도 없이 직장을 구했다. 운이 좋았다. 밴쿠버에 온 지 2주 만에 직장을 구했다는 사실이 기뻤다. 무엇보다 더 이상 구글에 Server job description, job interview를 검색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더 기뻤다.






1. 직장 이야기


 외국 식당에 있는 문화중에 하나는 가게 문 앞을 지키고 있으면서 손님들을 테이블로 안내하고 메뉴판을 건네주는 'Host 호스트 또는 Hostess 호스티스'가 따로 있다는 것이다. 손님들은 가게에 들어와 호스티스에게 일행의 수를 이야기하고 테이블을 안내받을 때까지 기다린다. 아무리 빈 테이블이 많을지라도 절대 먼저 앉지 않는다. 손님들이 자리에 앉아 메뉴를 거의 훑어보았을 때쯤 Server 서버가 물 잔을 들고 테이블로 다가가 안부인사와 함께 주문을 받는다. 이때 오는 서버가 그 테이블의 담당 서버이다. 주문을 받고, 음식을 가져다주고, 계산을 하는 모든 가게의 서비스는 이 서버를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서버별로 부여된 개인 번호를 포스기에 입력해야만 그 테이블의 주문을 넣을 수 있고, 계산서를 출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나가는 다른 서버에게 필요한 무언가를 이야기해도 소용이 없다. 이 곳은 서버가 본인 테이블에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손님에게 일정 퍼센트 이상의 'TIP 팁'을 받는 문화이기 때문이다. 레스토랑은 서버인 직원에게 음식 맛을 제외한 모든 서비스를 맡기고 노력한 만큼 가져가게 한다. 회사의 성과주의와 지극히 비슷하다.  


'팁'을 위해 서버들은 도시의 관광 정보를 알려주기도 하고, 술이나 음식 같은 특정 주제에 대해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 테이블에 10분 이상 머물기도 한다. 서비스에 만족하거나, 서버와의 대화에 기분이 좋아진 손님들은 술값만큼의 팁을 주고 가기도 한다. 이렇게 받은 팁은 매일 현금으로 정산해서 주방, 바텐더, 호스티스에게 일정 퍼센트를 나눠주고 나머지를 본인이 갖는다. 물론 본인의 팁이 가장 많기 때문에 밴쿠버의 예쁘고 몸매 좋은 언니들은 스튜어디스 같은 직업보다 서버 직업을 선택한다고 한다. 일주일에 P/T으로 몇 시간만 일을 해도 시급의 몇 배가 넘는 돈을 팁으로 받아 여유로운 생활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같은 매뉴얼대로 일하는 거 같지만, 각자만의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계산서를 주는 방법도 커버지에 넣어서 테이블에 올려놓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종이만 반을 접어서 걸쳐놓기도 하고, 주문을 받고 나서 하는 말도 각자 다르다. 어떤 서버는 손님들이 한꺼번에 몰려도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가 하면, 어떤 서버는 테이블이 몰리면 나에게 와서 따진다. 손님들이 시간차를 두지 않고 테이블에 앉으면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고, 서버 본인도 테이블을 하나하나 신경 쓸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사진은 직접 찍은 사진이지만 글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사진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




 우리 가게의 손님들은 테이블에 앉아 먼저 음료나 애피타이저를 Starter로 주문하고 메뉴판을 한참 더 들여다 보고는 'Main dish 메인 디쉬'를 주문한다. 피자의 경우 모두 1인 1 피자를 주문하고 남는 음식은 너무나 당연하게 'Take out'을 해간다. 디저트도 마찬가지이다. 커플들은 마주 보고 앉아서 각자 자신의 케이크를 먹는다. 계산은 보통 테이블에서 이루어지는데, 카드 결제의 경우 서버가 휴대용 카드 리더기를 들고 테이블에 가서 결제를 한다. 카드 리더기도 첫 화면에 서버 고유 번호를 입력해야만 결제 화면으로 넘어간다. 손님들이 가면 서버나 호스티스가 테이블을 깨끗이 닦고, 새 Cutlery 커트러리 세트를 세팅해놓는다. 테이블을 치우기만 하는 'Busser'라는 직원을 따로 두는 레스토랑도 있지만 바쁘지 않은 시간에는 서버와 호스티스로 충분히 손님을 맞을 수 있다. 내가 테이블을 치울 때마다 서버들은 매번 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나는 어색하게 'Your welcome.' 혹은 'No problem'이라는 답을 한다. 영어책에서 본 지 너무 오래된 단어들이라 말할 때 오히려 어색한 느낌이 드는 문장들이다.




 이곳의 가게들은 모두 'Sift 시프트' 제 이기 때문에 직원들은 매주 다른 시프트를 받는다. 한주는 오전 근무 한주는 오후 근무도 가능하고, 여러 곳에서 시프트를 받는 것도 가능하다. 이 레스토랑에서 주 3일 오전, 저 레스토랑에서 주말 저녁, 같이 본인의 편의 혹은 효율적인 돈벌이를 위한 스케줄을 정한다. 여행을 가는 경우 한 주 시프트를 받지 않으면 되기에 일을 그만두거나 연차를 쓰고 하는 스트레스가 없다. 직원들은 일종의 프리랜서처럼 일을 하고, 가게는 비상시를 대비한 많은 대체인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 가게는 Shifts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7shifts라는 앱을 사용한다.



*색의 구분은 각자의 역할 구분이다.



 본인 계정으로 앱에 로그인을 하면 본인 스케줄을 확인할 수 있고 클릭 한 번으로 일하기로 한 날짜 시프트를 드롭할 수도, 다른 사람이 드롭한 시프트를 내가 가져갈 수도 있다. 다음 주의 내 Availability를 어플 내 달력에 표시해놓으면, Manager 가 승인하고 최종 스케줄이 결정된다. 시프트 시스템에 최적화된 앱이 분명하다. 급여는 한 달을 15일 단위로 끊어서 'Paycheck'을 받는다. Paycheck은 세금 고지서 같은 우편물 종이인데, 은행 ATM기에 넣으면 통장으로 바로 돈이 입금된다. (나는 간편하게 은행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사진을 찍어서 올리는 방법을 이용한다.) Paycheck은 '일정 기간 동안의 급여 - 10%의 세금 = 본인이 받을 수 있는 돈'이 계산되어 있다. 한국에서 통장으로 월급이 들어올 때 4대 보험이 깎여서 들어오는 것과 똑같다. 매년 초에 있는 Tax Refund달에 돌려받을 수 있다고는 하는데, 외노자에게 10%의 세금은 너무 큰 액수다.





2. 사는 이야기



 날이 좋았던 계절에는 일하기 전에 간단한 음식과 책을 들고 매일 공원에 갔다. 매일 오후 3시부터 일을 하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 씻고 여유롭게 아침을 먹고, 가방에 일할 때 입을 옷을 챙겨서 집을 나섰다. 일은 보통 밤 9시까지 하는데, 손님이 많은 날은 10시에 끝나기도 하고 반대로 적은 날은 더 일찍 끝나기도 한다. 직원들의 근무시간을 매일 상황에 맞게 조절해서 인건비를 절감하려는 가게의 시스템 덕분이다.



 나는 오후에 일하는 것을 선호하는 편인데, 오전에 하고 싶은 일을 한 뒤 돈을 벌기 위한 일을 하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이 좋다. 우리 가게는 오전에 손님이 더 많기 때문에 오전에 일을 해야 팁을 더 많이 받지만 돈보다는 하루를 온전히 내 것으로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전에 일을 하면 저녁에 왠지 피곤하다는 기분에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있게 되거나, 그날 하려던 일을 다음으로 미루게 된다. 현재는 주 5일 시프트를 받아 평일 주말 관계없이 일주일에 이틀을 쉬는데, 덕분에 딱히 주말이라는 개념이 없다. 매일의 일상이 똑같아서 여기서도 꼭 챙겨보는 네이버 웹툰이 아니면 요일 구분이 잘 가지 않는다. Off 오프날에는 스카이트레인을 타고 몇 정거장을 가서 특색 있는 거리들을 둘러보는 시내 관광을 하고는 했었는데, 요새는 Netflix의 무료 한 달을 알차게 쓰기 위해 집에서 'Netflix and Chill out'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시즌7에 시즌당 22편이나 있는 Gilmore Girls를 보다 보니 하루 종일 집에 있어도 시간이 부족하다. 전혀 다른 가치관과 성격을 가진 모녀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루는 이 미국 드라마는 연애 이야기와 행복한 결혼으로 끝을 맺는 한국 드라마보다 훨씬 공감 간다.







* 가장 좋아하는 Harbour Green Park



* 날이 좋은 날 공원 영상을 담았는데, 기다린 로딩 시간이 아깝지 않을 영상이기를 바랍니다 :)



 


 그리고 그동안 크고 작은 일들이 많이 있었다. 밴쿠버에서 지낸 3달 동안 이사를 3번 했다. 룸메이트 문제가 외국 생활의 첫 번째 난관이었다. 그녀는 40살이 넘은 일본인이었는데, 아침 5시에 일어나 요리를 시작하곤 했다. 믹서기를 사용해 주스를 갈아 마시고, 집에서 본인이 먹는 빵을 직접 베이킹하는데 그 과정이 모두 핸드메이드이다. 예를 들어, 베이킹에 아몬드가루가 필요하면 Raw아몬드를 사서 삶고, 일일이 손으로 껍질을 벗긴 다음, 오븐에 구워 말린고, 믹서에 갈아 가루로 만들어서 쓰는 방식이다. 덕분에 좁은 주방을 하루 종일 쓰면서 냄새를 풍기고, 소음을 냈다. 그녀는 직장을 다니지도 않고, 장을 볼 때를 제외하고 밖에 나가지도 않았다. 가장 참을 수 없었던 문제는 창문 문제였는데, 내 옆자리에 있는 창문을 닫고 내가 잠이 들면 그녀는 새벽에 일어나서 꼭 창문을 열었다. 창문여는 소리에 잠이 깨고, 찬 바람에 다시 잠이 들지 않아 이 문제를 한번 이야기했는데, 자기가 더워서 죽어야 하냐는 답변에 깜짝 놀랐다. 



집을 옮길 때마다 좋았던 일이 단 한 가지 있었는데, 그건 바로 사람들이 집에 남기고 가는 물건들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워홀러들은 더 싸거나 혹은 더 좋은 집을 찾아 빈번한 이사를 하고 이사할 때 가구, 고데기, 멀티탭 등등 짐이 되는 많은 물건을 일부러 놓고 가고는 한다. 게다가 1년 워홀 기간이 끝나고 한국으로 귀국하는 사람들은 귀국짐을 줄이기 위해 온라인 사이트에 자신이 쓰던 물건들(심지어 반 정도 남은 된장 고추장 등의 조미료까지)을 올려서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 겨울옷을 하나도 챙겨 오지 않은 나는 이 사이트에서 목폴라 티 하나와, 양털이 수북한 후리스를 $17불에 샀다. 9월 말 한국으로 귀국한 내 룸메이트는 나에게 현미쌀, 바디 오일, 섬유탈취제, 주방도구 등을 기부하고 떠났다. 그녀의 크리스마스가 따뜻하길.





* 평화롭게만 보이는 이 도시에 정착하는 일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 한국에서 환전해 온 돈으로 집세, 핸드폰 요금, 식비를 내고도 기타 필요한 경비를 충당해야 했다. 한다. 해야한다.





 일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가계부 어플에 한 달 지출보다 수입이 많은 광경을 목격했다. 저축은 바라지도 않으니 쓰는 만큼만 벌면 좋겠다는 다짐이 있었는데 점점 욕심이 생긴다. 사람이란 정말 하고 싶은 게 많은 동물인 게 분명하다. 일상이 익숙해지니 여행도 하고 싶고, 취미 생활도 즐기도 싶고, 끊었던 와인도 먹고 싶어 진다. 어쩔 수 없다. 여전히 하루에 핸드폰을 몇 시간씩 붙잡고 블로그에 있는 감성 사진들을 보면서 마음을 채우고, 매거진b영혼의 노숙자들 같은 팟캐스트는 올라올 때마다 밀리지 않고 들으면서 일상을 유지한다.





 그리고 정말 이상하게도 이곳에서 한국에서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일을 하다 보면 가끔씩 멍해질 때가 있는데, '내가 지금 이 시간을 한국에서 보냈다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지금처럼 아무 고민 없이 하루하루 여유롭게 보낼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면서 무언가 '더' 하지 못했던 삶이 후회된다. 더 하고 싶은 거 많이 하고 살걸. 재거나 따지지 말고 사람들도 더 많이 만나고, 좋은 곳도 더 많이 갈걸. 좋아하는 물건도 고민하지 말고 살걸. 미래에 대해 걱정하지 말고 사소하고 소중하게 지낼걸. 친구들이랑 무리해서라도 좋은 곳으로 여행 한 번 다녀올걸. 지금 당장은 못한다고 생각하니 더 간절해지는 것들이다. 막상 한국에 있으면 쉽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3. 먹는 이야기



 잠자리에 드는 게 즐거워지는 방법 중에 하나는 매일 아침밥을 시간을 내서 보기에도 예쁘고, 맛도 좋은 브런치를 해 먹는 일이다. '얼른 자고 일어나서 내일 아침에 맛있는 거 먹어야지'라고 생각하면 침대에 눕자마자 잠이 솔솔 온다. 달콤한 버터향을 내며 구운 팬케이크와 함께 그래놀라와 과일, 그리고 씨아치드 같은 건강식품을 올린 요거트로 아침을 맞이하면 일어나자마자 기분이 좋아진다. 여유로움과 건강함 그리고 예쁜 비주얼을 마음에 담아두는 행위라고나 할까. 어렵지도 않고, 많은 비용이 들지도 않는다.




나는 '먹거리'에 정말로 관심이 많은 편이다. 영양제를 먹는 것 대신에 몸에 좋으면서 맛도 좋은 음식을 찾아서 먹고, 먹는 즐거움에 어떠한 죄책감을 가지고 싶지 않다. 외국 생활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한 가지는 먹거리 때문이다. 한국에서 그동안 보지 못한, 혹은 해외 직구로만 구할 수 있었던 먹거리가 마트에 널려있다. 좋은 재료는 비싼 게 당연하지만, 어떤 음식이 있는지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견문이 넓어지는 기분이다. 걸어가다가 처음 보는 마트가 보이면 잠깐이라도 들어가서 가공 식품의 성분 부분을 꼼꼼하게 읽어본다. 설탕을 쓰지 않은 잼이나, 밀가루 대신 퀴노아나 아몬드 가루 그리고 아가베 시럽을 사용한 쿠키, 현미로 만든 파스타면 등을 발견하면 한 가지씩 사서 먹어 본다. 직접 먹어보지 않으면 식감이나 맛을 알 수가 없다. 특히 쿠키나 스낵 같은 디저트를 끊을 수 없는 사람으로서, 이 곳의 과자들은 도전해 볼 것들 투성이다.



 





 이전에 외국에서 한 두 달씩 살 때는 장보는 날 마트에서 보이는 재료를 사서 조리해 먹는 편이었다. (요리가 아니라 조리라고 부르는 이유는 썰어서 기름에 볶는 거밖에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번 달부터는 식단을 짜는 데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일주일 중 몇 번을 빵이 아닌 밥을 먹고, 그때 하체 혈액 순환에 좋은 해조류를 같이 먹고, 그러려면 그런 반찬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네이버에 검색해본다. 검색하다가 보이는 음식 레시피 중에 도전해볼 만한 것들이 있으면 저장해놓고, 다음 주에는 단호박을 사 와서 쪄먹어 볼까 이런 고민을 한다. 찾아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식재료 중에 피로 회복이나 피부에 좋은 음식이 너무나 많다. 이런 음식으로 일주일 시간을 짜는 것도 벅차다. 식단을 짜면 그중에 장을 볼 목록을 정하고, 그 목록들을 어디 어디서 나눠서 사야지 더 저렴할지 머리를 굴린다. 1년 동안 외국 생활을 할 거라고 생각하니 장기적인 관점에서 식단 관리를 해야 아프지 않고 건강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이런 음식만을 먹는 것은 아니다. 일하는 가게의 주 메뉴가 피자다 보니 근 몇 달 동안 1년 동안 먹을 피자를 다 먹은 것 같다. 사실 피자라는 게 밀가루 빵 위에 야채, 소스, 치즈가 있는 거니 샌드위치랑 크게 다를 것도 없다. 밴쿠버는 다운타운 거리에는 샐러드 같은 건강한 음식을 파는 곳, 햄버거 피자 같은 패스트푸드 가게, 일본 라멘집, 인도 음식점, 터키 음식점, 중국 음식점, 그리스 음식점, 베트남 음식점 등 다양한 국적과 정체성의 음식점들이 공존한다. 다양한 민족의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기에 음식도 그럴 수밖에 없다. 모두 개인의 가치관과 취향에 따라 각자의 한 끼 메뉴를 선택한다. 지난주에 집 근처에 위치한 유명 홍콩 베이커리에 갔다가 '파인애플 번'과 사랑에 빠졌다. 소보루 빵과 비슷하면서도 더 포근하고 달달한 매력이 칼로리를 잊게 한다. 큰일이다.





4. 영어 이야기


 캐나다는 다민족 사회다 보니 '영어로 말을 하는 것'에 대해 굉장히 관대하다. 외국인은 당연히 영어를 완벽히 구사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오히려 이곳에 온 지 몇 달 밖에 안된 사람이랑 짧게라도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에 신기해한다. 그들은 물론 우리가 초등학교 때부터 수업 시간에 영어를 배워왔다는 사실을 모르겠지만 말이다. 


영어의 벽은 생각보다 높아서 내가 아무리 열심히 표현을 외워서 대화에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하고 싶은 말을 평생 제대로 할 수 없겠다는 회의감이 든다. 또 '말하기'만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이 우습게도, 가장 큰 문제는 '듣기'다. 아는 단어, 아는 문장이어도 외국인이 말하는 것을 내가 많이 들어보지 않은 이상 들리지가 않는다. 들리지 않으면 대화를 이어갈 수가 없다. 게다가 우리 가게만 하더라도 밴쿠버에서 태어나고 자란 직원은 단 1명뿐이고, 다른 직원들은 모두 다른 국가에서 공부 혹은 일을 하러 온 타국민들이다. 멕시코, 콜롬비아, 슬로바키아, 이탈리아, 프랑스, 일본, 중국, 터키 등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다양한 억양으로 언어를 구사한다. 시제나 인칭 별 단복수가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지만, 반대로 이곳에 온 지 오래된 타국민들은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그게 부러울 때가 너무 많다. 


한국인들이 공통적으로 얘기하는 것은, 쓸 때는 문법이 틀리지 않는 데 말할 때는 자꾸 틀리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영어 말하기의 기회가 현저하게 부족하다. 더욱이 대학 졸업을 위한 토익 시험 이후에는 영어를 접한 적이 거의 없고, 여행 다니면서 잠깐 이외에는 쓸 일도 거의 없다. 워킹홀리데이를 위해 6개월에서 1년 동안 영어 말하기 학원을 다니다가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내 생각에 한국에서 오랜 기간 동안 학원을 다니며 준비를 하고 왔더라도 처음 '벙찌는 현상'을 겪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한국에서 배우는 것과 현지에서 살면서 쓰고 배우는 것에는 비교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







 전에 나를 가르쳐주던 홍콩계 튜터 선생님이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문장을 말할 때, 책에서나 나올 것 같은 단어를 구사한다고. 너무 많은 단어를 배우고, 너무 어려운 문장의 독해를 연습하다 보니 간단하고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을 까먹은 듯한 느낌이다. 이곳에서 사귄 캐네디언 친구 중에 한국어를 좋아해서 혼자 독학한 친구가 있다. 이 친구와 함께 'Language Exchange' 비슷하게 서로 말하고 싶은 내용을 영어와 한국어 통역해주고는 하는데, 이때마다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두 언어의 차이를 깊게 느낀다. 풍부한 한국어의 표현을 영어가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말하고 싶은 내용 그대로 영어로 번역할 생각을 하면 입이 막힌다. 특히 '-라고 하더라고' 같이 제삼자의 말을 전할 때의 어감과 '어차피' 라는 개념은 영어에는 없기 때문에 이 개념을 설명해주기 위해 5개 이상의 문장이 필요했다. 정말 쉽지 않다. 발음은 또 어떤가. 한국에서는 외국어 혹은 외래어를 발음할 때 영어식으로 입술을 깨물거나 혀가 꼬이는 발음을 하면 어색한 느낌이 많이 들었다. 우리는 'Facebook'보다 '페북'이라는 발음이 친숙하지 않은가. 그래서 그 습관대로 발음하니 아무도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한 번은 'favor'라는 단어를 이야기했었는데 동료가 'paper'로 알아들은 적이 있었다. 무척 씁쓸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 밴쿠버 사진 더 보기.


INSTAGRAM 


>> 다음 글에 대해서.


 사실 밴쿠버는 지금 정말 단풍국이 됐습니다. 빨갛고 노란 거리에 매일 할로윈을 준비하며 작은 퍼레이드와 행사가 이어지다 보니 오랜만에 외국에 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납니다. 이곳에 온 목적에 따라 워홀러 모두가 다른 삶을 살고 있겠지만, 정말 '살기'위해서 온 저로서는 매일 느끼는 것이 많습니다. 그것들을 얼른 글로 쓰고 싶은데 생각들은 한 주제로 모으는 것도, 어울리는 사진을 고르는 것도 신중해지다 보니 글 한 편을 쓰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네요. 하지만 이 글을 쓰는 시간도 소중하고 감사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적어놓은 단편들을 정리해서 다음 글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매일 '한국에 있던 그 시간들이 정말 소중하다는 것을 느끼면서 살껄' 하고 생각한다.







이전 03화 밴쿠버에 온 지 한 달이 지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