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NA Jan 12. 2021

드디어 캐나다 영주권을 받았다.

코로나 영향 120% 받은 이야기


 기약 없는 기다림이 공식적으로 끝난 날은 2021년 1월 8일. 모두에게 힘들었던 2020년은 영주권을 기다리면서 더 힘들었다. 코로나로 인해 도시가 락다운되면서 영주권 진행과정이 약 7개월간 멈췄었기 때문이다.


정확한 상황은 이렇다.

2월 24일, 영주권 신청의 마지막 단계 '바이오 매트릭스'를 3월 23일까지 완료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바이오 매트릭스는 쉽게 말해 열 손가락의 지문을 따서 제출하는 과정인데, 이걸 마쳐야지만 내 서류가 심사에 들어갈 수 있다. 바로 홈페이지에 접속해 정부 센터 방문 예약을 잡으려 보니 가장 빠른 예약 가능 날짜가 3월 30일이었다. 근처에 있는 센터뿐만 아니라 차로 몇 시간 떨어진 곳에 있는 센터도 마찬가지였다. 비행기를 타고 가지 않아도 되는 곳의 모든 센터가 향후 1달 넘게 예약이 다 차있었다. 이민 지원자에 비해 담당 업무를 처리하는 기관과 직원이 현저히 적기 때문에 벌어지는 당연한 현상이었다. 결국 홈페이지 예약 현황을 캡처해서 이민국에 메시지를 보냈다. 3월 23일까지 바이오 매트릭스를 하는 건 불가능하고, 4월 초까지 완료하겠다고. 그리고 3월 20일 온 나라가 락다운 되며 센터가 문을 닫았다.   


락다운 후의 근황








 6월 중순쯤 거리두기를 조건으로 락다운이 단계별로 풀리기 시작했지만 정부 센터는 오픈 소식이 없었다. 직원들이 자택 근무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바이오매트릭스에 대한 내용은 업데이트되는 게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바이오 매트릭스를 위해서는 지원자가 센터를 방문해서 지문 채취 기계를 만지는 직접적인 터치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바이오 매트릭스에 관해서는 할 이야기가 정말 많은데, 첫 번째 나는 2019년에 비자를 바꾸기 위해 한국에 다녀오면서 바이오 매트릭스를 한 적이 있다. 2019년, 모든 비자 소지자의 바이오 매트릭스 제출이 필수화 되면서 캐나다 내부에 있던 사람들은 육로로 국경을 방문해 바이오 매트릭스를 해야 했고, 새로운 비자로 캐나다에 입국하는 사람들은 공항에서 비자 심사 후 바로 바이오 매트릭스를 했다. 그때 공항에서 나에게 바이오 매트릭스를 해주던 직원은 그 일에 익숙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고, 컴퓨터는 386처럼 느렸다. 지문을 채취하는 기계와 그것을 확인하는 컴퓨터가 잘 호환이 되지 않아 시간이 꽤 걸렸다. 제대로 된 게 맞는지 의문을 가지면서 공항에서 집으로 돌아왔는데 다음날 비자 담당 기관에서 바이오 매트릭스 정보가 안 뜬다고 연락이 왔다. 공항에서 했다고 분명히 이야기하니 업데이트가 되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고 답변을 받았다. 그리고 1년 뒤 영주권 지원을 위해 바이오 매트릭스를 다시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주공사 말로는 일처리를 하는 기관이 다른데 서로 공유하며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한번 더 해야 하고 돈도 $85를 내야 한단다. 방법이 어찌 있나 수긍하고 지불하는 수밖에. 그리고 타의 적인 상황에 의해 바이오 매트릭스를 하지 못하게 되면서 8월 12일쯤 완료될 것으로 예상되는 영주권 심사는 무기한 연장되었다. 코로나를 탓하기도 지겨웠고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한 배 가득인걸 알기에 피해의식을 품을 수도 없었다. 기약 없는 기다림의 연장이었다.   


이민국 홈페이지에 로그인하면 볼 수 있는 영주권 지원 진행과정




 2020년은 하반기 시작되었지만 어떤 계획도 세울 수가 없었다. 정말 언제 영주권을 받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6개월 넘게 바이오 매트릭스 관련 소식만을 기다렸다. 스트레스 탓인지 입맛이 짧아지고 계속 살이 빠졌다. 9월 23일, 영주권 지원자들 대상 바이오 매트릭스에 관한 업데이트가 떴다. 센터가 지원자들에게 개별 전화를 돌려 진행을 위한 방문 약속을 잡을 예정이고, 최근 10년 이내 바이오 매트릭스를 제출한 적이 있는 사람은 면제가 된다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애를 태우며 기다린 바이오 매트릭스가 면제됐다. 이 결정을 하는데 이렇게 오래 걸리다니. 속이 뒤집어지지만 그래도 좋은 소식이라며 마음을 달랬다. 하지만 여전히 심사가 언제 진행될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이민국 직원들이 지원자들의 서류를 랜덤으로 나눠가져 가서 심사를 하는데 직원 별로 심사 속도가 천차만별이고, 한 명 서류를 심사하다가 다른 사람 꺼로 넘어가기도 하기에 내 서류가 언제 심사될지 전혀 알 수가 없다고 한다. 실제로 나보다 늦게 지원한 사람들의 영주권 승인 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왔다. 10월에 전화를 받고 센터에 방문해 바이오 매트릭스를 진행한 사람의 영주권이 2주 만에 나오기도 했다. 영주권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단톡 방에서는 자기 서류를 담당하는 직원이 코로나로 죽었는데 그 사람 업무가 인계되지 않은 것 같다는 농담도 자주 들렸다. 주위에서 영주권 받았냐고 물어볼 때마다 아직 소식 없다고 말하면서 더 힘이 빠졌고, 무언가 잘못된 거 같다고 이주공사가 일처리를 잘못한 게 아니냐고 의심하는 남자 친구를 달래면서도 기분이 많이 우울해졌다. 내일이라도 나올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했다가도 내년이 되어도 안 나올 수 있다는 생각에 잠식당했다. 익히 알고 있던 외국 정부 일처리 속도에 대한 실망감과 코로나에 대한 원망이 커져만 갔다. 그리고 일을 너무 쉬고 싶었다. 영주권 신청 시 다니던 직장 경력을 포함시켰기 때문에 심사 때까지 직장을 그만 둘 수가 없었다. 심사 때 직장 근무 여부를 직접 확인할지 안 할지 또한 랜덤이지만 암묵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영주권이 나오는 날까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지 못했다. 오로지 영주권을 위해 싫은 일을 참고 버틴 게 벌써 2년이 넘었다. 코로나 때문에 악화된 근무 환경을 이제 체력이 버티지 못했고, 사람을 상대하면서 겪는 정신적 스트레스도 한계치에 다 달았다. 휴일 빼고는 하루하루가 피곤하고 불행한 나날이었다.



    


 영주권을 받으면 가장 먼저 하려고 했던 일은 한국에 다녀오는 것이었다. 입국 때마다 3시간 넘게 마음 졸이며 입국심사 인터뷰를 기다리는 일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11월이 되었고, 코로나는 끝날 기미가 없었다.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이 이민을 아예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나도 한국행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이유가 생겼다. 지병이 있으셨던 아버지가 갑자기 병원에 입원하셨기 때문이다. 어머니께서도 큰딸의 방문을 애타게 원하셨다. 마냥 기다리기만 할 수는 없었다. 11월 25일에 출발하는 한국행 비행기표를 샀다. 명분은 휴가였다. 고용계약서상 무급으로 4주의 휴가를 쓸 수 있으니, 자가격리 2주를 더해 총 6주를 한국에서 보내고, 2021년 1월 5일에 귀국하는 일정이다. 재입국이 100% 보장되는 건 아니었다. 외국인 입국 금지가 완전히 풀리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현재 가지고 있는 워크 비자로 재입국해야 하는데, 그 비자의 만료 시점이 6개월 미만이었기 때문이다. 일단은 재입국에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하면서도 마음을 내려놨다. 입국 거절당하면 그냥 한국으로 돌아가서 허리 디스크나 치료하면서, 가족&친구들과 시간을 더 보내다가 나중에 다시 영주권을 신청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미 삶의 터전은 캐나다로 바뀌었지만 몇 달 정도 한국에서 지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니 말이다. 영주권 수령은 1년 정도 생각해야 하고, 기다리는 것 밖에 답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실제로 겪어보니 어두운 터널에서 반대편에 희미하게 보이는 빛을 따라가며 넘어지고, 다치고, 불안함과 외로움을 억누르며 버티는 일이었다.  



이민국에서 안내하는 외국인노동자의 재입국 조건





 한국에 도착했다. 자가격리 해제 후 아버지 병원을 방문했다. 계속 병원 입출입을 해야 하기에 더욱더 조심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12월 중순쯤 집에서 어머니, 동생과 시간을 보내다가 이주공사에서 보낸 영주권 승인 메일을 확인했다. 별도의 추가 서류 제출 요청이나 서류 증명 확인 절차 없이 승인 결정이 난 갓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긴 크리스마스 + 새해 휴가 전에 일처리를 몰아하던 직원이 내 서류를 발견하고 '얘는 너무 오래 기다렸군' 하고 바로 도장을 찍은 것이 분명하다. 실감이 안 나 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기쁘지가 않았다. 너무 오래 기다렸다. 이민국에 전화하고, 심사 현황 리포트를 요청하고 여러 방법을 쓰면서도 진행 결과를 전혀 알 수 없는 시스템에 좌절하기가 여러 번이었다. 심지어 아직 끝난 것이 아니기에 더 감흥이 없었다. 레터에서는 굵은 글씨로 캐나다에 들어오지 말라고 하고 있었다. 레터의 유효기관을 연장해줄 테니 코로나가 잠잠해질 때까지 이동하지 말라는 것이다.  


영주권 승인 레터


 따라서 영주권을 받기 전과 마찬가지로 워크 비자로 재입국을 해야 한다. 일단 이민국에 휴가차 한국에 방문 중이고 1월 5일에 귀국한다고 업데이트했다. 이민국에서는 1월 5일이 될 때까지 내 업데이트 내역을 확인하지 않았다. 연락을 더 기다리지 않고 재입국 가이드에 따라 현재 비자 서류&고용확인서를 가지고 귀국 준비를 했다. 7일부터 공식적으로 제출해야 하는 비행기 탑승 3일 전 코로나 음성 결과 확인서(영문)도 혹시 몰라 준비했다. 입국 심사는 1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담당 직원이 내가 보여준 비자 서류를 힐끔 쳐다보고는 고용확인서나 별다른 서류는 보여달라는 요청도 하지 않고 통과시켰다. 까다롭지 않은 심사관이 걸렸다. 그 다음날 이민국에서 전화가 왔다. 직원이 이제야 나의 업데이트를 확인하고는 왜 이 시기에 캐나다밖에 나갔다 왔냐고 화를 냈다. 아버지가 입원 중이시라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고, 현재 잘 자가격리를 하고 있다고 설명을 했더니 내 영주권 서류가 다시 발행될 테니 이전 꺼는 사용하지 말라고 했다. 서류를 다시 받으면 증명사진을 찍어서 우편으로 보내 영주권 카드를 신청해야 한다. 카드를 받는 데는 신청 후 최대 6개월까지 걸린다고 한다. 어쨌든 기다리고 기다리던 것을 받기는 받았다. 워킹홀리데이로 처음 캐나다에 온 지 1277째 되는 날이다.


최종 영주권 레터








다음 글은 원래 계획했던 대로 어떻게 영주권을 받았는지에 대해서 진행 비용과 함께 세세하게 정리해보려고 한다. 자기 기록 보관용이고, 대략적인 타임라인을 공유하려는 목적으로 절대 누군가의 도전을 장려하지 않는 방향으로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