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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A Aug 07. 2020

안녕, 어떻게 지내? 2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1122일

                                        


 소란스러운 빗소리를 들으며 잠이 깼다. 굉장히 오랜만에 내리는 비다. 요 몇 주 한창 캐나다스러운 습기 없는 쨍한 날씨가 이어지던 차라 여름 비가 새삼스럽다. 엄마한테 한국은 장마가 한창이라고 들었다. 시차 16시간의 고향과 비로 연결된 느낌이다. 일정에 글쓰기는 없었지만 비도 오고, 룸메이트도 방에서 한창 컴퓨터로 일을 하고 있으니 나도 노트북을 켜서 '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에 들어와 본다. 근황을 정리하는 글을 쓰려고 한다. 역시나 오랜만이다.






1. Lock down


 설마 설마 하던 그 일은 하루아침에 벌어졌다. 1,2월 한국에서 마스크 대란이 일어나고 공적 마스크라는 개념이 등장할 때까지만 해도 코로나는 캐나다와 상관없는 일이었다. 아시아에서 시작된 일이니 멀리 떨어진 이곳은 안전할 거라고 다들 생각했던 것 같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 친구들을 걱정하면서도 나는 외국에 있으니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3월 초 고향을 방문하고 돌아온 중국인 중에서 첫 확진자가 발생했다. 그 쯔음부터 일하는 가게의 손님이 조금씩 줄어드는 게 느껴졌다. 3월 16일 월요일 'Pandemic'이 공표됐고 미국으로 연결되는 육로 국경이 봉쇄됐다. 그리고 영주권자 이상을 제외한 일반 비자 소지자의 입국이 거의 불가능해졌다. 20일 주 정부에서 레스토랑 안에서 취식을 금지했고, 나는 일자리를 잃었다.  





 뉴스와 라디오에서 장을 보는 것 이외의 외출을 아예 비 장려하는 'Stay home' 외쳐되서 밖에 나가는 일이 아예 하면 안 되는 일처럼 느껴졌다. 룸메이트와 함께 하루 종일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날들이 지속됐다. 쌀을 하나 사다 두었고, 원래 이용하고 있었던 meal kit 서비스(특정 레시피와 그에 맞는 신선한 식재료를 집으로 배달해주는 서비스)를 연장했다. 올해 초 런칭을 시작한 로컬 meal kit 서비스들의 가입자가 폭발해 신규 유저들이 첫 서비스를 이용하기까지 3주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메일을 받았다. 예상했던 대로 아마존의 주문이 폭주했고, 개발자들의 야근이 이어졌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국무총리의 기자회견과 이어지는 주정부의 확진자 수 발표를 보는 것이었다. 확진자와 사망자수가 공개됐지만 그들의 거주지나 방문했던 장소들은 비공개였다. Lock down 초반부터 실직자들을 위한 정부 보조금 이야기가 나왔지만 외국인인 나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이 있었다. 일단 갑자기 찾아온 휴가를 즐기며 Netflix를 보고 그림도 그리며 시간을 보내면서도 생존의 위협을 느낀 건 난생처음 경험하는 일이었다.






 4월 6일부터 태어난 달에 따라 요일을 나누어서 정부 보조금(CERB)을 신청할 수 있게 되었다. 보조금은 $2000씩 총 4번 받을 수 있고, 4주에 한 번씩 국세청 홈페이지에서 몇 번의 클릭만으로 신청이 완료되는 프로세스였다. 신청한 지 5일이 채 되지 않아 2번의 보조금(8주 분)이 한꺼번에 들어왔다. 작년에 캐나다에 거주했고, 세금을 냈던 근로자라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구조였다. 그때서야 마음이 한시름 놓였다. 홈 요가를 시작했다. 의지가 부족해 한 번도 해보지 못한 풀 요가 시퀀스를 집에서 혼자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자가 격리 기간을 마음 무너지지 않고 버티는 것이 관건이었다.




2. Update


 6월 초 레스토랑 실내 취식이 허용됐다. 대신 테이블마다 2M의 간격을 유지해야 하고, 6명 초과 인원은 한 테이블에 앉을 수 없다. 한 가게에 동시간에 수용할 수 있는 입장 인원도 제한이 있어 아직도 마트 줄 서기는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약국마다 품절이었던 마스크의 재입고 알림 종이가 붙기 시작했고 입장 전 마스크를 나눠주는 가게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간격 유지를 위해 뒷문으로만 승하차할 수 있고, 무료로 운행되던 버스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주정부 비상사태는 아직 유지되고 있고, 국경 봉쇄도 8월 31일까지로 연장되었다. 더불어 정부 보조금 수령 횟수가 4번에서 6번으로 연장되었고, 복직을 했더라도 코로나로 인해 이전보다 수익이 준 경우 보조금을 계속 받을 수 있도록 정책이 업데이트됐다. 사무실 출근 or 재택근무가 자발적 선택이 되어 룸메이트는 이틀에 한 번씩 출근을 한다. 나도 6월 중순부터 일을 다시 시작했다. 일하는 내내 마스크와 장갑을 껴야 한다. 시프트는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take out이 주가 된 레스토랑에서 버는 수입은 예전 같지 않다.



쉬는 동안 '작가의 서랍'에 넣어둔 글들을 조금씩 다듬고 있었다. 외국에서 먹고사는 것에 관한 글, 타향살이에서 온 우울증에 관한 글들의 초안이 있었지만 무슨 이유 때문에서인지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캐나다에 온 지 만으로 3년이 되는 지금 시기(2020년 여름)에는 이민에 관한 글을 쓰려는 계획이 있었다. 워킹홀리데이에서 이민으로 이어진 이야기를 정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정보가 부족해 혹은 운이 없어서 울었던 날들이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많은 돈을 지불하고 드디어 올해 1월 이민 신청을 완료했다. IELTS 시험 점수로 영어 성적 증빙을 했고, 전문 기관을 통해 한국 학력을 인정받고 현지 경력 제출 등을 모두 마쳤다. 이민관이 서류 심사를 하기 전 딱 한 가지 과정, 바이오 매트릭스(지문 등록)만 남겨두고 있는 상태였다. 바이오 매트릭스는 정부 기관에서만 진행이 가능한데, 이민 신청 인원에 비해 업무 담당 직원의 수가 현저히 적어 항상 일처리가 늦은 편이었다. 3월 초 바이오 매트릭스를 하라고 연락을 받았는데 가장 빠른 예약일이 4월 3일이었다. 그 날만을 기다리고 있던 3월 말 정부 기관이 문을 닫으면서 내 예약도 자동 취소되었다. 많은 규제가 완화되고 있는 지금 시점에도 담당 기관은 문을 열지 않고 있다. 일대일로 사람과 접촉해 지문을 따는 일이기에 오픈을 미루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졸업 후 지문을 등록해 워크 비자를 받기로 되어있던 많은 학생들도 비자를 받지 못하고 있다. 나도 기약 없는 기다림을 하고 있다. 자국민 외 입국이 막힌 상태기 때문에 지금 캐나다 밖을 나가면 다시 들어올 수가 없다. 코로나가 터지지 않았다면 지금쯤 영주권을 받고 한국에 가서 가족들과 친구들을 만나고 있었을 텐데. 다시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동굴 안에 들어왔다.

 



3. Post Corona


 많은 사람들이 직업을 잃었고 유망 직종이 불투명 직종으로 변했다. 홈오피스, 홈스쿨링이 앞으로의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영주권 이후 새로운 직업을 생각하고 있던 나도 그 직종에 대한 새로운 고민을 하고 있다. 책상에 가만히 앉아서 생각하면 굉장히 어두운 이야기이지만 나를 믿고 잘될 거라고 생각하면 또 굉장히 희망찬 이야기다. 이번 봄의 캐나다는 특히나 어두웠고, 여름은 또 어느 때처럼 평화롭다. 공원과 해변은 다시 사람들로 가득 찬다. 지금은 바다에서 패들보드를 타고, 블루베리 픽킹을 다녀오며 이곳에서의 삶을 즐기고 있지만 가을이 오고 언제 다시 도시가 봉쇄되더라도 슬기롭게 버텨낼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달라진 것은 마음의 변화. 3년이 지났고 여전히 신분은 외국인이지만 더 이상 마음 졸이면서 하나하나 전전긍긍하지는 않는다. 일례로 생활필수품 외 목록의 지출이 늘었다. 10불만 넘어도 고민하고 중고를 알아보던 과거와 달리 지갑이 쉽게 열린다. 한국에서 살 때의 소비 습관이 돌아오는 것 같다. 요새는 장을 보러 가면 냉동식품이나 즉석식품도 많이 산다. 외국에서 아프면 안 되니까 건강한 것만 먹고살겠다는 압박감에서도 벗어났고, 직장 생활을 하지 않으니 매끼 나를 위한 시간을 투자하겠다는 반짝거리는 마음도 놓아줬다. 코로나 시기에 찾아온 삶에 대한 무기력감일 수도 있고, 혼자 산 해가 늘어나며 터득한 절충안인 것도 같다. 이제는 어디가 어떤 물건을 저렴하게 파는지도 알고, 아프면 걱정하지 않고 병원도 간다. 다만 언제나 큰딸을 그리워하는 엄마가 걱정이다. 시기를 막론하고 한국에 있는 가족들 때문에 생기는 이 마음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나 혼자만을 위한 선택으로 외국에 나왔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가족을 외면할 수가 없다. 또 지금이야 이곳 생활이 더 익숙하지만 막상 한국에 가면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100% 적응해서 살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평생 해결되지 않는 이민자로서의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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