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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A May 07. 2018

저는 하나도 용감하지 않아요.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10개월



 마지막 업로드가 2월이었으니 약 3개월 만에 글을 올리게 되었다. 글을 아예 쓰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마음을 딱 먹고 수정에 수정을 거쳐 한 글을 완성시키는 것이 오랜만이다. 올해 목표는 한 달에 2개 이상의 글을 업로드하는 것이었는데, 바쁜 스케줄 탓에 쉽게 지켜지지 않는다. 한 번 맥이 끊기고 나니 '쓰고 업로드하는 것' 자체에도 약간의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나만의 공간 같으면서도 나'만'의 공간이 아닌 브런치는 사적이면서도 공적인 특별한 공간이다. 독자에게도, 작가에게도 너무 소중한 그런 공간.











 토요일이었던 어제, 몸이 조금 아팠다. 정신은 멀쩡한데 미열과 함께 빈혈이 느껴지고, 온몸에 하나도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가까스로 6시간 시프트를 버티고 집에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한 할아버지가 말을 걸었다.



"Do you know what is in the middle of the life?"




응? 인생에 중간에 무엇이 있냐고?

한참 고민하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If" 라고 대답을 해주셨다. 갑작스런 농담에 웃음이 나다가도 아차 싶었다. 맞다. 우리는 사는 중간중간, 항상 "만약"을 생각한다. 이러면 어떨지 저러면 어떨지 미래를 그려보기도 하고,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하기도 하고, 하지 않은 일을 후회하기도 한다.






 내가 이곳, 캐나다에 와서 하루도 빠짐없이 했던 생각이 바로 "만약(If) 내가 한국에 계속 있었다면" 이다. 29살. 계속 프리랜서로 일을 하고 있을까? 마지막에 제안받았던 회사에 들어가서 새로운 일을 하고 있을까? 남자 친구와 계속 만나고 있을까? 결혼이라는 것을 준비하고 있을까? 지금보다 행복할까?











 시차가 16시간이나 나는 곳에 살지만, 여전히 한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네이장바구니에는 사고 싶은 옷, 가방, 신발, 인테리어 소품이 가득하다. 심지어 요새 한국에서 인기 있는 카페, 유행하는 장소는 지금 한국에 있는 친구들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 나는 이곳에서 무얼 하고 있는 걸까. 솔직히 이야기하면 생각했던 것만큼 매일매일이 설레지도 좋지도 않았다. 어떤 이는 밴쿠버에서 사는 동안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것이 즐거웠다고 들었다. 오늘은 어떤 일이 벌어질까 설레는 마음에 알람 없이도 침대에서 일어났었다고. 내가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그녀와 마음 가짐이 달랐기 때문이겠지. 나에게 이 곳은 여행 혹은 공부를 위해 잠깐 머무는 곳이 아니라 어떻게든 발붙이고 살아야 하는 각박한 현실이다. 어떤 시스템도 익숙하지 않고, 식품 공산품 서비스 모든 것이 비싸고, 혼자서 헤쳐나가기에 너무도 외롭고 힘들다. 사실 가장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한국 사회에서 버티지 못하고 도망쳤다'는 생각이었다. 가족도, 친구도, 남자 친구도 버리고 혼자 행복해지기 위해 외국으로 나온 29살. 나는 나를 그런 사람으로 정의 내렸다. 그래서 캐나다는 나에게 '노동해야 하는 곳.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살아야 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오히려 나를 더 구차한 처지로 만들어 가고 있었다.  






 한국에서 하던 것들을 포기해야지. 예쁜 옷이나 귀걸이, 매니큐어 같은 것은 하나도 챙겨 오지 않았다. 2평이 조금 넘는, 창문도 없는 방에 살면서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양손 가득 무거운 장바구니를 든 채 버스를 타고 집에 와야 해도, 미용실을 가는 대신 거울을 보고 혼자서 머리를 자르면서도, 비좁은 책상에 꽃병 하나 둘 수 없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매일매일이 설레지도 좋지도 않지만 괜찮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나에게 부럽다고 했다. 회사 생활이 너무 하기 싫다고. 자기도 외국에서 살고 싶다고. 누군가는 나에게 용감하다고 했다. 자기라면 쉽게 하지 못한 선택을 했다고. 나만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멋있다고 했다. 내 일기장 어플에는 매일 내가 느끼던 슬픈 생각이 가득하다. '괜찮은 것처럼 사는 데 익숙해져서 내가 정말 괜찮은지 아닌 지 모르겠다', '나는 왜 이렇게 밖에 나가고 싶어 했을까. 나와있으면 마냥 행복하지 않을 거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전공도 고등 교육과도 관련 없는 일을 하면서, 이곳에서 사는 게 과연 맞는 일일까?'





저는 하나도 용감하지 않아요.






 이곳에서의 매일이 불안하다. 이사를 할 때마다 나쁜 집주인을 만나서 보증금을 다 날리게 될까 봐 걱정이 든다.(가끔 집세를 낸 다음날 일어나 보니 집에 모든 가구가 없어져있고 처음 보는 이가 자기가 이 집주인이라고 우기는 일이 벌어지는 상상을 한다.) 또다시 마음을 다치게 될까 봐 불안하다. 나는 이미 그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타지에서 의지할 수 있는 어떤 존재로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 사람은 나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서 나를 버릴까 봐 걱정된다. (이건 이미 벌어진 일이다.) 내가 일하는 곳에서 진행하기로 한 일이 어떤 외부의 상황에 의해 틀어지게 될까 봐 불안하다. 모든 것이 불안하다. 그래서 행복하지 않다. 이전 글에서도 썼지만, 행복해지려고 온 곳에서 행복하지 않으니 더 불행했다. 그리고 이제야 그 불행의 원인을 알았다. 나는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과거의 경험으로 현재를 보고 있었다. 그만둔 지 2년이 넘은 직장 사람들이 꿈에 나와 나를 괴롭혔고, 전 남자 친구가 생각날 때마다 잠결에 핸드폰을 찾았다. 한국에서의 인생을 돌아보고, 그중에 어떤 것들이 나를 힘들게 했는지 곱씹었다. 한국에 다시 가게 되면 어떻게 살아야 하지. 분명 다시 이런 문제가 생길 텐데.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다시 그러라는 보장은 없는데,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모든 것들이 좋지 않을 것이라는 이라는 고정된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이다. 내가 있는 곳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사고가 똑같으면 외국에 있어도 크게 달라지는 것이 없. 오랜만에 나 자신이 너무 못나서 울었다.



이렇게 예쁜 곳에서 살고 있는데.








그리고 내가 깨달은 것들,
이제부터 명심해야 할 것들.





 이제부터 내 삶에 변화를 주려고 한다. 나를 불행하게 했던 생각과 사고방식을 버리고 마음속에 새로운 다짐을 넣을것이다. 원인을 알았으니 해결방법을 실천하지 않으면 달라진 미래를 꿈꿀 수 없다.




 이제부터 나는 과거에 묶여서 어떤 것을 생각하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어떤 것이 꿈에 나오는 이유는 내가 그것을 놓아주는 과정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안 좋은 기억이 나에게서 나가려고 그것에 관련된 꿈을 꾸는 데, 내가 왜 그런 꿈을 꾸었을까 생각하면서 다시 나의 의식으로 가져오는 일은 바보 같은 짓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 기분을 좋게 만드는 생각을 하고 안 좋게 만드는 것들은 내보내려고 한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그동안 애썼다고 말해주려고 한다. 그동안 열심히 살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해주고,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가?라고 반문하는 나에게 이렇게 살아도 된다고 이야기해줄 테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애썼던 것을 정상화하는 과정에 있다고 상기시켜 줄 것이다. 마음의 여유를 갖고 조급해하지 않을 것이다. 드디어 올해는 내려놓는 해이다. 아홉수인 올해 내려놓지 않으면 평생 내려놓지 못할지도 모른다. 나의 노력으로 되는 일이 아닌 것에는 항복하고 가만히 운을 기다리는 방법을 택하려고 한다.



올해는 나를 정말로 내려놓기





 하루에 10분이라도 눈을 감고 내 기분을 좋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려고 한다.

예전처럼 초콜릿 같은 당을 먹거나 재미있는 동영상을 찾아보는 것이 아니라, 눈을 감고 기분 좋은 상상을 한다. 내가 나중에 살고 싶은 정원 딸린 집을 상상하기도 하고, 내가 카페를 차린다면 꾸미고 싶은 인테리어를 상상하기도 한다. 음악을 틀어놓고 명상을 하거나, 차를 마신다. 차를 마시는 것은 단순한 식음이라기보다 뭔가 신성한 의식 행위라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그 시간을 스스로를 사랑하는 시간으로 만들 것이다.



꽃을 보는 것은 언제나 기분을 좋게하는 일







 나를 보호하려고 만들어 놓은 가면내려놓으려고 노력한다.

노력한다고 썼지만 정말 잘 되지 않는다. 살아가면서 너무도 익숙해진 어떤 부분이 되어서 놓으려고 해도 마음처럼 되 않는다. 그리고 타인에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는 일은 두렵다. 하지만 다행인 사실 하나는 지금 나는 과거에 알던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서 살고 있으며,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앞으로 평생 볼일이 없을지도 모르는 사람들 이다.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표현하고 싶은 대로 표현하고, 좋다고 느껴지는 것들은 더 하고 지낼 것이다.   


 


 몸에 무리가 가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

매일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내 몸안에 만들어진 에너지만큼을 쓰고 그 이상의 무엇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잠이 부족해 정신이 맑지 않아도 카페인 같은 인위적인 방법으로 깨우지 않고, 할 일을 어서 끝내고 휴식을 취해야지. 잠을 많이 자고, 물을 많이 먹어야지. 그리고 코어를 만드는 운동을 해야겠다. 요가를 찾아보고 스트레칭을 병행해야지. 건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많은 것을 즐기고, 배우고, 행복하게 20대를 마무리해야지.














>> 마치는 글


 한국에 계신 독자님들 모두 잘 지내고 계신가요? 저는 CELPIP이라고 불리는 캐나다 공인 영어 시험공부를 하면서 올해 1분기를 보냈습니다. 일을 하면서 공부하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네요. 그래도 3개월간 준비한 시험이 드디어 저번 주에 끝났고, 재시험이 필요하지 않은 점수가 나와서 다음 스텝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어요. 시험이 끝나니 밀린 예능도 보고 싶고, 사놓은 잡지랑 책도 읽고 싶고, 그림도 그리고 싶은데, 날씨가 너무 좋아서 밖으로 나가야 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오랜만에 맞는 연휴 Relax면서 보내시길 바랍니다 :)                                                                                                                                                              - HANA 드림.




>> 이번 글에 도움이 된 것들


- 책 : 호오포노포노의 지혜

- 예능 : 효리네 민박 2

- 영화 : 어깨너머의 연인

- Vlog : Kalyn Nicholson




>> 캐나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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