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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A Nov 13. 2019

나의 새로운 주거환경과 반려동물.

20대 후반 홀로 외국 살이

*사진이 많아 로딩이 오래 걸릴 수 있습니다.




 74주년 광복절을 캐나다에서 맞이했다. 시차가 하루 늦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시간으로 8월 15일(캐나다 기준 8월 14일)은 대한민국 영사관 공식 휴일이었다. 한국 운전면허증을 캐나다 운전면허증으로 바꾸기 위한 서류를 받으러 왔다가, 닫힌 문 앞에서 이마를 탁 치며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지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현지 면허증을 만들려고 한다. 여행사를 통해서 혹은 다른 사람의 차를 얻어 타서 가는 여행은 그만하고, 혼자 차를 렌트해서 이곳저곳 그동안 가보지 못했던 곳을 가보려고 한다. 한국에 있을 때처럼 Car sharing 서비스를 이용해서 주말에 근교로 놀러 가는 게 목표다. 이동 제약 없이 편하게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더 즐기면서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캐나다 살이를 한지 만 2년 만이다.   











 나는 캐나다 서부 밴쿠버에 살고 있다. 대표적인 도시 토론토가 있는 동부에는 아직 가본 적이 없다. 동부와 서부는 시차가 약 4시간, 온도차가 약 20도 정도 나기도 할 정도로 거리 차이가 있다. 분명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비롯해 크고 작은 부분에서 문화 차이가 존재할 거라고 생각한다. 퀘벡 지역은 공용어가 프랑스 어니까 말이다. 대도시가 많은 동부에 비해 서부는 전체적으로 시골 느낌이 강하고, 사람들의 생활방식도 훨씬 여유롭다. 밴쿠버는 다운타운 중심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주택가이고 집들도 아파트, 콘도 건물보다 '하우스'가 더 많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 평생을 아파트에서 살아왔던 나에게 지붕이 있는 집에 살게 된 건 주거공간의 가장 큰 변화였다.   




여전히 동화속에 나오는 '집'같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신기하다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모든 집들이 모양도 색깔로 조금씩 다 다르다는 것이다. 땅콩 주택 느낌이 나는 '레인 하우스'나 3층 정도 건물의 가로로 긴 아파트로 설명이 가능한 '타운 하우스' 같은 형태를 제외하고는 똑같이 생긴 집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창문의 모양, 개수, 벽을 이루는 재료 등이 제각각이다. 이주민이 오기 전부터 이 땅에 살던 원주민들이 사는 집에는 창문에 독특한 색깔의 구조물이 있고, 중국 이민자들이 사는 집에는 빨간색과 금색으로 '복'이라는 한자가 쓰여있기도 한다. 똑같이 생긴 네모 아파트들 사이에서 동 호수가 아니면 구별하는 게 불가능한 서울의 집들과 참 대조된다. 외관 디자인을 제외하고도 모든 집들은 저마다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집은 앞마당에 정원을 꾸며놓은 집이다. 아침에 출근하는 길에 여러 꽃들이 예쁘게 관리되어 있는 집을 지나가면 기분이 정말 좋아진다. 제주도에 내려가서 봤던 수국이 색색깔로 담장을 타고 올라 만발해있는 것도 흔히 보이고, 식물원에 가야지 볼 수 있을 것 같은 희귀한 꽃도 집 앞에 아무렇지 않게 피어있기도 한다.




집 앞 마당에 정원을 꾸민 집들




 어떤 집들은 마당에 작은 농장을 만들어 가족들이 먹을 농작물을 직접 재배한다. 오이, 가지, 애호박, 비트, 가지, 컬리플라워 등 식사 재료로 요긴하게 쓰이는 것들을 많이 심는다. 봄이 되면 마트에 씨앗, 모종, 삽, 비료 포대, 화분 등 각종 'Planting'용품이 입구의 큰 매대를 가득 채운다. 그만큼 수요가 많다는 뜻이다. 우리 동네에 정말 전문적으로 농사를 짓는 집이 있는데, 이 집은 와인용 포도를 재배한다. 이렇게 포도를 직접 재배해서, 혹은 농장에서 포도만 사다가, 집에서 발효시킨 뒤 홈메이드 와인을 만들기도 한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조선시대에 집집마다 막걸리를 만들던 것과 비슷하다. 포도가 아닌 사과나 다른 과일로도 'Cider'로 불리는 발효 음료도 만든다. 간단한 도구로 손쉽게 병입과 라벨링을 하고, 혹은 전문적인 도구를 빌릴 수 있는 공방 같은 곳도 있다.




컬리플라워 / 비트 / 가지
집에서 키우는 농작물들과 와인용 포도


  


 아이가 있는 집들은 마당에 놀이터를 꾸민다. 그네나 미끄럼틀은 기본이고 트램펄린을 설치해놓은 집도 종종 보인다. 학교 끝나고 친구들과 함께 트램펄린에서 신나게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면 부럽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나는 어렸을 때 동네에 하나 있던 방방 타는데 가서 오랫동안 기다린 뒤 딱 30분 탈 수 있었는데.




개인용 놀이터





 하우스에 사는 사람들은 생활공간이 집 내부를 넘어 마당을 포함한 사유지 전체로 확장되어 있다. 놀고먹는 대부분의 활동을 집에서 즐기려고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모두가 평생에 걸쳐 집 안팎을 정성스럽게 꾸민다. 마당에 잔디가 있는 집들은 한 두 달에 한 번씩 잔디를 깎아줘야 하고, 가을에는 집 앞에 떨어지는 낙엽을 바람이 나오는 기계로 싹 모아서 버려야 한다. 겨울에는 삽으로 집 앞 도로에 쌓인 눈을 치우지 않으면 약 500만 원 정도의 벌금을 물 수 있다. 집의 외관을 관리하는 것은 자발적이기도 하고 필수적이기도 하다. 일 년 중 있는 이벤트에 맞춰 집을 꾸미는 것도 일상적인 일이다. 많은 돈을 들여 거창하게 하지 않더라도 달러 샵에서 산 작은 물건들로 분위기를 내기도 한다. 할로윈에는 할로윈 장식으로 크리스마스에는 라이트 장식으로 꾸며 놓은 집들을 보면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의 여유가 느껴진다. 평화로운 지역의 사람들은 일이 아닌 일상에 삶의 중심을 둔다. 정말 작은 집에도 여름밤 맥주캔과 보드게임을 즐길 수 있는 야외 테이블이 하나씩 있다.




 






 집에는 보통 대문이 아예 없거나, 손으로 툭 밀면 열리는 낮은 철제문으로 되어 있다. 대문의 역할은 입구의 '표시 혹은 맞이'이지 '잠금 혹은 보안'이 아니다. 그리고 창고 혹은 차고가 크게 있다. 창고에 쌓여있는 물건들을 보면 사람들의 생활을 들여다볼 수 있다. 일단 가장 큰 부피를 차지하는 것은 쓰지 않는 가구들이다. 가구를 버리는 것이 번거로운 일이기 때문에 새 가구를 구매하면 오래된 가구를 일단 집 앞에 내놓고 다른 사람이 가져가길 기다리거나, 창고에 쌓아뒀다가 'Garage sale'을 열어 헐값에 파는 편이다. 각종 수리용품도 많다. 사람을 불러서 무언가를 수리하는 것이 굉장히 비싸고 오래 걸리기 때문에 집에 보통 웬만한 수리 용품을 둔다. 목재도 있고, 페인트통들이나 각종 기계도 많다. 가족들의 자전거나 캠핑 용품, 보드와 스키 같은 겨울 스포츠 용품, BBQ용품들이 보편적이다. 바베큐는 하우스 거주자들이 가장 크게 누리는 이점 중 하나다. 여름날 저녁에는 집집마다 마당에서 고기를 굽는 연기가 올라온다. 마트에 가면 $20이 조금 넘는 이동용 그릴부터 $600이 훌쩍 넘는 숯불 머신까지 다양한 바베큐 용품이 있다. 아파트 발코니에서 바베큐를 즐기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이것을 허용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가 토론문제로 나오기도 한다.



 

집 대문 / 차고, 창고 / 현관문 (우리집, 옆집)



 내가 살고 있는 하우스는 총 3가구가 살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집 앞에 있는 현관문으로 들어가면 1층의 반, 2층 전체를 쓸 수 있는 '메인'집이 있고, 뒤로 돌아가면 1층의 나머지 반을 '뒷집' 2채가 나누어서 쓴다. 보통 집주인은 '메인'집을 쓰고 나머지 suit들은 렌트를 준다. '뒷집'인 우리 집과 옆집은 벽 하나를 두고 붙어 있어서 서로의 거실 TV 소리 나 화장실 샤워소리를 공유한다. 각자 어느 정도의 소음을 참고, 배려해서 함께 살아간다. 집의 앞마당에는 우리 강아지가 뛰어노는 잔디밭이 있고, 뒷마당에는 작은 텃밭이 있다.









 윗집 중년 커플이 주로 관리하는 이 텃밭에 내가 올해 4월 중순 방울 양배추 씨앗을 하나 심었다. 위 사진 중 왼쪽에 있는 조그만 새싹이 5개월 만에 오른쪽 사진처럼 거대하게 자라나서 지난 9월 추수감사절에 열매를 수확했다. 마트에서 파는 것처럼 커다랗게 자라지는 않았지만, 추수감사절 저녁의 포인트 음식이 되었다. 식사를 함께한 온 가족이 내 방울양배추가 어떻게 자랐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텃밭 옆에는 내가 차를 마시거나 낮잠을 자는데 쓰는 야외용 의자와 테이블이 있다. 올여름에는 저녁마다 이 테이블에 식탁보를 깔고 음식을 차려서 야외 식사를 했다. 벌이나 파리가 날아와도 개의치 않는 편이다. 마당의 여러 구석에는 거미줄이 쳐져있고 가끔씩 집 안으로 거미가 들어오기도 하는데, 하우스에 살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생쥐가 집으로 들어오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한다. 볕이 좋은 날에는 집안의 식물들을 꺼내다가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광합성을 하게 한다. 저번 주에는 남자 친구와 함께 아래 식물들의 화분 갈이를 했다. 집에서 식물을 키우고, 작물을 재배하는 일은 나이 먹고 은퇴해서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20대 후반의 일상이 되어버리니 기분이 오묘하다.







 태어난 지 올해 10개월이 된 우리 강아지 'Burro'는 식물들과 같이 햇빛을 쬐고 누워있는 것을 좋아한다. 현관문을 열기만 하면 마당이나 장난감도 가지고 나가서 놀고, 잔디밭에서 뒹구르고, 바닥에 있는 것들을 이것저것 주워 먹다가 혼나고 결국 내 무릎에서 반성의 시간을 갖는다. 지난 5월 Burro를 처음 분양받아 집에 데려왔을 때, '실외 대소변' 문제로 남자 친구와 의견 충돌이 있었다. 남자 친구는 강아지의 건강에도 좋고, 오물을 치우기도 훨씬 편한 실외 대소변만 보게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한국의 아파트에서만 강아지를 키워봤던 나는 일단 집안에 사는 집 강아지고, 집안에 사람이 없을 때 소변이 마려울 수 있으니 실내 대변 패드가 주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밖에서 소변을 보고 집으로 들어올 때마다 발을 닦아줘야 하는 것도 번거로운 일이 아닌가. 결과적으로 Burro는 매번 실외 대소변을 본다. 아침에 내가 눈을 뜨자마자 현관문을 열어줘서 앞마당 잔디에서 아침 소변을 보게 하고, 하루 중 중간중간 산책 갈 때마다 나머지 볼일을 해결한다. 어렸을 때는 출근할 때 집 안에 패드를 한두 개 깔아 두곤 했었는데, 이미 실외 대소변이 익숙해져서 패드는 소용이 없었다. 하루 종일 밖에서 일하는 문화가 아니기 때문에 어찌 됐던 강아지가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은 하루에 5시간 내외밖에 되지 않는다. 발은 산책 갔다 와서 혹은 자기 전에 침대에 올라오기 전에 한번 닦아준다. 위생과 관련된 부분을 많이 내려놓았다. 사랑의 표시로 내 얼굴을 핥아주는 입이 방금 전까지 흙을 파고, 나무 막대기 물고 다닌 입이었어도 괜찮다는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여름에는 집 앞마당에 엎드려 체온을 떨어뜨리는 우리 댕댕이





 산책은 집에서 걸어서 5분 정도 거리에 있는 커다란 공원으로 간다. 면적이 86.4-hectare 나 되는 이 공원은 육상 트랙과 축구장이 있는 스타디움은 기본이고, BBQ가 가능한 피크닉 구역, 여름에만 오픈하는 실외 수영장, 테니스와 배드민턴 코드, 피치 앤 퍼트가 가능한 아마추어 콜프 코스도 있다. 공원에 가면 곳곳의 다람쥐와 호숫가의 오리들, 산책 나온 다른 강아지들이 반겨준다. 갖갖 종류의 나무, 꽃, 풀 냄새를 맡으면서 산책을 하는 Burro는 쓰러져있는 나무 위에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뛰어다니고, 나랑 같이 덤불에 열린 블루베리도 따먹는다. 밤에 하는 산책은 코요테나 라쿤이 활동하는 공원 대신 동네에 있는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향한다. 여기서는 줄을 풀고 공 던져서 물어오기 놀이를 하면서 신나게 뛰어다니도록 해준다. 항상 4-5 마리의 다른 강아지들이 있기 때문에 퇴근하고 피곤한 내가 같이 뛰면서 놀아주지 않아도 친구들과 같이 꼬리물기도 하고 경주 달리기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공원의 운동장과 호수, 그리고 덤불에 열리는 블랙베리
나무의 기운을 받으면서 견고하게 자라는 Burro
동네 초등학교 운동장 / 산책 친구들과 인사






 캐나다에 살면서 제일 달라진 점은 주거 공간의 변화이고, 그것으로 인해 나의 반려견에게 자연친화적인 삶을 살게 해 줄 수 있도록 해 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땅에 붙어사는 매력을 처음으로 느껴본다. 베란다가 아닌 마당에서 식물을 키우고, 매일 공원으로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기쁨을 이제야 알았다. 30분을 걸어가야 중국 마트가 하나 나오는 동네면 어떠한가. 시간은 남들과 다르게 흘러가고 행복은 다른 사람의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가치인 것을.




집으로 가는 길, 대문앞에 먼저 가서 기다리는 Burro










*오랜만에 글을 쓰니 생각도, 문체도 달라진 게 많아서 다시 한 곳으로 모아 오는데, 그리고 어울리는 사진을 조합하는 데 시간이 정말 많이 걸렸습니다. '캐나다 살이'를 주제로 사회적 분위기, 집 구하기, 이민 관련 이야기까지 원고만 잡아놓은 글들이 너무 많은데 언제쯤 다 올릴 수 있을까요... 부지런히 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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