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국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었는지
이민을 목적으로 아무 연고도 없는 캐나다 밴쿠버에 온 지 2년 반이 조금 넘었다. 처음 1년은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도 벅차서 아등바등 살던 삶이, 시간이 지나니까 한국에서 살 때처럼 바뀌어가는 것을 느낀다. 인터넷 쇼핑도 하게 되고, 취미생활을 위한 클래스도 찾아서 다니게 되고, 왁싱샵도 주기적으로 가게 된다. 첫해에는 마트에서 5불이 넘어가는 제품을 살 때도 한참 동안의 고민이 필요했고, 환율 계산기로 한국돈으로 얼마인지 확인해서 소비했었다. 그때 먼저 이민 온 분들에게 들었던 얘기가 원화로 환산해서 한국 가격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사지 못한다는 얘기였다.
밴쿠버에 와서 제일 처음 당황한 부분은 생각보다 비싼 물가였다. 택시비도 핸드폰 요금도 헉 소리가 났고, 집세는 뉴욕을 따라가고 있었다. 게다가 구매해야 하는 모든 제품이 생각보다 비쌌다. 원인 중 하나는 예전 글에서도 적은 적이 있지만, 모든 구매에 별도로 붙는 PST(주 세금) 7%, GST(정부 세금) 5% 때문이다. 영수증에 나와있는 총금액은 매대에서 본 제품의 가격 혹은 메뉴판에 적혀있는 음식의 가격보다 항상 12% 더 비싸다. 게다가 '소비자 정가제'를 기본으로 패키지에 제품 가격이 명시되어 있는 우리나라와 달리 캐나다는 패키지에는 가격 정보가 아예 없어 같은 물건이라도 판매처마다 아예 다른 가격으로 팔 수 있다. 세일 유무에 관계없이, 똑같은 브랜드의 똑같은 용량의 똑같은 제품이 Whole food에서는 10불이고 Walmart에서는 5불일 수 있다. 5불인 제품의 유통기간이 짧다거나 퀄리티가 낮은 것이 아니다. 차액은 그 마트 이용료라고나 할까. 그러다 보니 장을 볼 때 한 마트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마트를 들려서 그곳에서 저렴한 것들을 골라 사야 돈을 절약할 수 있다. 문제는 마트마다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걸리는 시간과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비용을 아끼던가, 비용을 감수하고 편한 쇼핑을 하는 것 중에 선택해야 한다. 그래서 현재 나의 쇼핑 패턴은 이렇게 된다. 큰 현지 마트에서 외국 식료품 등을 사고(flour, cheese, yogurt, butter, 등), 동네에 있는 작은 중국인 마트에서 채소와 과일, 생선, 해산물 등을 사고, 드럭 스토어(London drug, Shoppers)에서 과자, 초콜릿 등의 스낵류를 구매한다. 드럭 스토어에 생각보다 많은 식료품(소스, 시럽류, 꿀, 오일 등)이 있고 세일을 자주 하기 때문에 구매에 이점이 있다. 대신 세일을 할 때와 안 할 때의 가격 차이가 크기 때문에 할 때 필요할 때마다 사는 것보다 할인할 때 쟁여둬야 한다. 중국인 마트는 품질은 보장되지 않더라도 별도 PST, GST가 붙지 않는 경우가 많다. 대신 10불 이상 구매해야 카드 결제가 되는 곳이 대부분이다. 한국 라면과 과자 등의 제품도 한인 마트보다 중국 마트에서 더 저렴하게 판매된다. 캐나다 현지 마트는 시즌 별 식료품 가격의 차이가 엄청난데, 공장에서 생산되는 제품도 여름에는 7불이었다가 겨울에는 11불이 되고, 일반 채소류도 3불 이상 가격이 달라지는 마법이 일어난다. 물가에 민감한 외국인으로서 이런 가격 차이를 눈치챌 때마다 왠지 작은 분노가 치민다. Costco 카드가 있으면 참 좋겠지만 대가족이 아닌 이상 연회비를 결제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대량 구매를 위해서는 차가 필요하다. 그래서 오늘도 뚜벅이는 바뀌 달린 장바구니를 끌고 버스에 오른다.
한 번은 Walmart 온라인 쇼핑몰에서 물건을 사서 배송시킨 적이 있다. 월마트는 식료품, 가전제품 등이 상대적으로 저렴해서 가면 좋은 쇼핑을 할 수 있는데, 집이랑 거리가 있다 보니 자주 가지 않게 된다. 배송비 무료 기준 $65을 맞추기 위해 대용량 강아지 사료, 1kg의 냉동 블루베리, 우유, 아보카도 등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마침 행사를 shipping fee 무료 조건을 충족하면 보통 $8 이상 하는 Order hadnling fee(주문 물건 구성료?)도 무료였다. 다만 제품이 담기는 플라스틱 bin의 보증금 $10를 따로 결제해야 했는데, 반납 시 돌려받을 수 있다고 명시돼있었다.(주기적으로 배송될 수 있는 건에는 종이 박스를 사용하는 기업이 많지 않다.)
한번 서비스를 이용하고 배송료 무료 행사가 끝나서 bin을 반납하기 위해 월마트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그 사이에 이사를 가게 되어 반납 '주소지 변경'을 같이 요청했다. 전화 상담원은 보통 인도분들이다. 강한 엑센트를 알아듣지 못해 통화가 길어진다. 2-3일 뒤에 픽업 오겠다는 확인을 듣고 전화를 끊는다. 3일 뒤에 픽업 기사에게 전화가 온다. 주소지에 왔는데 박스가 없다고 말한다. 기사에게 지금 어디에 있냐고 물어보면 예전 주소를 대답한다. 내가 픽업 요청할 때 바뀐 주소지를 얘기했고, 상담원이 알겠다고 했다고 하면 기사분은 내용을 전달받은 게 없다고 한다. 바뀐 주소지가 이전 주소지에서 차로 5분이 채 걸리지 않으니 와서 픽업하면 어떠냐고 물어보면 본인은 다른 스케줄이 있기 때문에 할 수 없다고 딱 잘라서 말한다. 그러면 고객 센터에 이 사실을 알리고 다른 픽업 일정을 잡아줄 수 있냐고 하면 그건 본인의 일이 아니라고 한다. 나는 다음날 다시 고객센터에 전화를 건다. 전화 연결 또한 오래 걸린다. 상담원에게 어제 픽업이 왔는데 내가 요청한 주소지가 아니라 예전 주소로 왔으니 다시 픽업 일정을 잡아 줄 수 있냐고 한다. 다시 4일 정도 후로 픽업 일정이 잡힌다. 4일을 기다린다. 또 기사분에게 전화가 온다. 해당 주소지에 박스가 없다고..... 결과적으로 기사분은 예전 주소로 3번 픽업을 오셨고, 2번은 예정 날짜에 아예 오지 않으셨다. 나는 고객 센터에 5번 전화를 걸어 매번 바뀐 주소지를 얘기해야 했고, 이 일은 처리되는데 약 한 달 반이 걸렸다. 한국이었으면 홈페이지 게시판에 컴플레인 글을 남기고, 상담원 이름을 확인해서 잘잘못이라도 따졌겠지만 이곳에서는 별로 화낼 일이 아니다. 일반적인 일처리 방식이다. 인터넷 설치같이 간단한 일도 신청한 날로부터 보통 2-4주 정도 걸리고, 정부나 공공기관의 일처리는 상상 초월로 오래 걸린다. 오래 걸려서라도 제대로 해결되면 다행이지만 잘못 처리되는 경우도 있다. 이민 서류를 심사하는 오피서가 실수해서 이민이 거절되는 사례도 있고, 은행원이 잘못해서 엄한 요금이 빠지기도 한다. 지인은 어느 날 통장 거래내역을 살펴보다가 계좌 유지비 무료 프로모션으로 만든 계좌에서 매월 $14.5의 유지비가 빠져나갔다는 사실을 알고 은행에 방문해서 그 금액을 환불받았고, 1년 뒤 같은 일이 벌어진 나는 환불금과 보상금을 조금 받았다.
그래서 필요한 물건이 있는 경우에는 일단 마트별 웹사이트에 접속해서 가격을 확인한다. 초록창에 검색하면 각종 온라인 쇼핑몰, 일반 마트, 백화점 모든 곳의 제품이 한 번에 비교되는 한국과 달리, 구글 쇼핑은 정확한 정보나 가격 비교가 쉽지 않다. 그래서 월마트, 아마존, IKEA, 알리바바, etsy 등의 사이트에 각각 들어간 뒤 제품명을 검색해서 가격을 비교해보고 구매할 곳을 정한다. 직접 가서 구매하지 않고 배송시킬 경우 배송비를 생각해 봐야 하는데, 2500-3000원으로 익숙한 배송비가 기본 $14 CAD씩 붙는다. 심지어 배송 기간도 2주 이상 소요된다. 빠른 배송을 선택하면 배송비가 $28 정도 한다. 저번에는 편하게 맬 가방을 하나 사려고 시내에 나가 거리에 있는 상점을 여러 군데 돌아다녔다. 디자인이 이상하고 재질도 좋지 않은 것들이 모두 $36 이상이라 빈손으로 집에 왔다. 구글에서 온라인 쇼핑몰들을 한참 뒤져서 예쁘고 저렴한 가방을 하나 골라 배송료를 $8 내고 결제했다. 한 달 정도 지났을까 그 가방이 필요했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때쯤 택배가 하나 도착했다. 그때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긴다. 필요한 제품은 넉넉하게 한 달 전에 구매를 준비하는 게 현명하구나. 그리고 온라인 쇼핑 시에는 항상 마지막 결제되는 금액을 확인해야 한다. 예를 들어 아마존은 배송 default 옵션을 항상 유료 배송으로 설정해 놓아서 무료 배송 금액에 맞춰서 주문을 하더라도 배송료를 지불하는 실수를 할 수 있다. 또 일반적으로 $로 표시되어 있는 인터넷 사이트의 제품 가격은 미국 달러이기 때문에 캐나다 달러로 환산하면 더 높은 금액일 수 있다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1에 약 900원인 CAD와, 약 1200원인 USD는 큰 차이가 있다. $40불인지 알고 결제했는데 통장을 보니 $51이 결제되어 있던 적이 많이 있었다.
외국 생활을 하다 보면 한국이 좋은 나라라는 사실을 실감할 때가 많이 있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말이 되는 곳에서 내가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얻었나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한국에서 그리운 것들을 꼽아 보라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음식 배달 서비스. 주문하면 30분 만에 식지 않은 음식과 술이 배달된다니 꿈만 같다. 여기서 음식 배달 서비스를 이용하면(Foodora, doordash, Uner eats, lazy meal 등) 1시간 이상 소요는 기본이고 높은 배달비와 배달원 팁까지 별도로 줘야 하기에 한 번도 이용해 본 적이 없다. 술은 당연히 배달 가능 품목이 아니다. 그동안 이 불편함 들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찾고 시도해보았다. 성공한 것들 중에 몇 가지를 공유한다.
1. Aliexpress
전 세계로 배송 가능한 중국 알리바바의 쇼핑몰이다. 한국에서 사용할 때는 개인통관 고유부호가 필요하다고 들었는데 외국에서 주문할 때는 필요하지 않다. 사이트를 한국어로 변환할 수도 있고, 할인 쿠폰도 많이 제공한다. 옷, 가전제품, 화장품 등 다양한 물건이 정말 싸고 배송비도 USD 1,2불이다. 배송비가 저렴한 제품은 선박으로 배송되기 때문에 배송에 보통 1달 이상이 소요되고 물건이 분실될 위험이 있다. 판매자와 연락할 수 있고 tracking number를 받을 수도 있지만 배송 현황은 중국, 캐나다 정도밖에 조회되지 않는다. 샀던 제품은 made in china가 좋은 Tea 잔과 거름망, 그리고 친환경 나무 칫솔. 제품을 받지 못해도 마음 아프지 않게 가격이 저렴한 제품을 골라서 믿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주문했다. 배송은 랜덤으로 진행돼서 대나무 칫솔은 1주 만에, 티잔은 1달 만에 받았다. 티 거름망은 2달을 기다렸지만 끝내 받지 못했다.
2) 캐나다쉬핑
한국 물건을 캐나다로 배송해주는 배송 대행 서비스이다. 선적 배송이기 때문에 한 달 정도 걸리지만 항공보다 가격이 월등히 저렴하고, 가구와 같이 커다란 물건도 배송시킬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이용 방법은 먼저 캐나다쉬핑 홈페이지에서 회원가입을 통해 캐나다 내 배송 가능 주소를 입력하고 배송 대행 서비스를 신청한다. 그리고 받으려는 물건을 서울 근교에 있는 캐나다쉬핑 회사 주소로 보내면 된다. 물건이 회사에 도착하면 크기와 무게에 따라 선적 가격이 측정되고 결제 완료 시 선적 스케줄이 잡힌다. 배송 대행 건마다 한국 지사 담당자분이 배정돼서 이메일로 배송 현황을 알려주시고, 캐나다 입항 후에는 캐나다 본사에 근무하시는 한국 직원분이 컨테이너 검사 진행 과정 및 수령 가능 날짜 관련 연락을 현지 번호로 해주신다. 굳이 한국에서 주문해서 받는 이유는 여기서 판매되지 않는 고품질의 제품이 한국 쇼핑몰에 더 많고, 어떤 제품들은 배송료를 감안하고서라도 가격적 이득이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분들은 원목 가구와 같이 좋은 물건을 집에 두기 위해 이용하실 수 있고, 작은 물건이라도 이제는 한국에 배송 대행을 부탁할 지인이 없는 경우에는 더 유용하다.
3) 소다기프트
외국에서 한국으로 기프티콘을 보낼 수 있는 서비스이다. '카카오톡 선물하기' 기능은 한국 밖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 이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일부러 현지 번호로 계정 인증을 하지도 않았는데 GPS가 잡혀서 그런 건지 캐나다에 도착하는 순간 #검색 기능과 #선물하기 기능이 카톡에서 사라져 버렸다. 정말 유용한 이유는 한국에 있는 지인들의 경조사를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소다 기프트를 모를 때는 한국에 있는 친동생에게 부탁해서 계좌로 돈을 부쳐줄 테니 카카오톡 선물함에서 스타벅스 키프티콘 5개만 사서 바코드 부분을 보내달라고 부탁하고는 했었다. (빠른 계좌 송금을 등록해놔서 공인인증서 확인 같은 복잡한 절차 없이 은행 어플에서 돈을 보낼 수 있는 친동생이니까 그나마 쉽게 부탁했지, 다른 사람에게 보내는 계좌 이체는 미사용 6개월 이상이라고 닫힌 지 오래다.) 기프트콘 결제 시 상품의 약 10% 수수료가 붙지만 수수료 할인 코드로 50% 할인(2019년 12월 말까지만 적용된다) 받을 수 있으니 약 5% 밖에 되지 않는다. 아메리카노 한잔 기프티콘 사는 가격은 USD로 $3.89 CAD로 $5.11이니 정말 부담 없다.
외국에 살다 보면 가장 소원해지는 게 그동안의 인간관계다. 부모님의 생일이나 지인의 결혼과 같은 큰 행사에는 집으로 선물을 배송시키는데, 일상 속 작은 이벤트는 챙겨주기가 어렵다. 만원 미만의 선물을 고르더라도 배송비를 2500원에서 3000원 내야 하니 결국에는 총비용이 부담스러워져 다음으로 미루거나 아예 하지 않게 된다. 그렇게 관계가 소원해지다가 결국 끊어져서 막상 한국에 놀러 가면 만날 사람이 별로 없다. 그래도 항상 느끼는 거지만 여기서 만나는 친구 혹은 남자 친구가 한국에서의 내 사람들을 대신할 수는 없다. 오랜 시간 동안 같은 문화적 환경에서 기쁨과 슬픔을 나눴던 사람들이 항상 그립고 힘든 일이 있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난다. 몸은 멀리 있어도 마음은 가까이 있다고 이런 방법을 통해 항상 말해주고 싶다.